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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ravel

월미도에서 잠깐 둘러볼 수 있는 곳. 서부공원사업소 주변

by 더공 2011. 4. 4.
서부공원사업소
월미도 또다른 가볼 곳.
          서부공원사업소 주변


월미공원 입구에 내려서 공원으로 올라가다 보면 월미전통공원 바로 옆에 있는 곳입니다. 이곳 입구에는 해양경찰의 배가 전시 되어 있고, 관리사무소 옆으로 두 개의 탑이 있는데 하나는 해군 2사령부 주둔 기념탑과, 또 다른 하나는 해군첩보부대 충혼탑입니다.

현재 보이는 관리사무소는 규모가 상당한데 규모도 그렇고 사업소 주변의 부지도 상당히 넓더군요. 이곳에서는 중구, 동구, 남구, 연수구의 시 조성 도시자연공원(10개소)및 근린공원(1개소)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업소의 위치는 중구 북성동 1가 월미공원 내에 있으며, 2001년 10월 13일부터 개방하게 된 월미공원을 비롯하여 문학공원, 관교공원, 청량공원 등의 서부공원사업소 관할하고 있는 사업소입니다.

사업소 바로 옆에 기념탑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탑이 세워졌다는 것은 이곳 또한 뭔가를 기념하거나 역사적인 것이 있었기 때문에 세워져 있는 것이겠죠. 전망이 어떨까 해서 올라왔는데 다른곳에 비해서 전망은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사업소 주변은 넓지 않기 때문에 간단하게 둘러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박물관인줄 알고 올라갔는데 입구에 걸린 간판을 보니 공원관리 사무소였습니다. 사무소 건물이 박물관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큰 규모더군요. 나중에 뭔가 새로운 시설이 들어오는건지...
그린비치?

월미도 문화의 거리 이름이 인천상륙작전 당시 “그린비치”로 불리웠다는 것을 이곳의 안내판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곳은 사진설명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하면 “그냥 인천 시내에 포탄이 날아들고.. 음... 적들을 초토화 시킨 다음에 상륙에 성공한 곳”으로 알고 있죠. 그런데 그 상륙작전 시작이 월미도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월미도 문화의거리에도 그린비치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 아래 작은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린비치 (Green Beach)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
1950년 9월 15일 새벽에 진행된 인천상륙작전은 국제연합(UN)군이 맥아더의 지휘아래 인천 월미도에 상륙하여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역사적인 군사작전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으로 월미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초토화되어 옛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로부터 2001년 다시 개방되기까지 반세기 동안은 월미산은 군사기지로 엄격한 통제 제한구역이 되었다. 9월 15일 새벽, 미 구축함의 첫포탄이 월미도에 작렬하였고,그후 연이은 폭격으로 미군 제5해병연대 제3대대 상륙단의 선수 공격대는 월미도 해안 그린비치에 상륙하였다.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인천지역을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이어서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하여 26일 정오에는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계양함으로써 작전을 끝냈다.


미국잡지『라이프(Life)』지에 실린 인천상륙작전 진행도이다.
이 한장의 사진을 통해 보더라도 월미도가 집중적인 포격의 대상이었는지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린비치에 정박한 연합군 함대의 모습과 월미도에서 인천시가를 향해 불뿜는 화기, 레드비치를 향해 질주하는 척후선들의 모습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알 수 있다.
- 안내판 발췌 -
바다로 세계로
해군 2함대 사령부 주둔 기념탑

1946년4월 월미도에 해군이 주둔하다가 1999년 11월 평택으로 이전하기까지 해군 2함대가 월미도에 주둔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 10월 만들어진 조형물입니다. 탑의 높이는 11m로 여러 기념이 될만한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해군이 함정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재현한 수평탑신, 행운의 수병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념탑 아래에는 해군2함대가 사용했던 부대약사, 지휘관 메세지등을 담은 타임캡슐이 봉인되어 저장되어 있습니다.

월미도가 전면 개방된 것은 횟수로 치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곳에 해군 사령부가 있었다는 것은 이 기념탑으로만 남겨져 있지만 그 오랜 세월동안 월미도에 주둔하며 대한민국의 서해바다를 책임졌던 장병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주둔 기념
월미도는 해군 역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한 현장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 2함대사령부가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인천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1946년4월15일 이곳에서 발족한 인천기지는 불과 수 척의 상륙용 주정으로 연안 경비를 맡다가 1949년 6월 인천경비부로 개편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아군의 전세 약화로 군산을 거쳐 목포로 주둔지를 옮겨 목포경비부에 통합되었다가.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3개월 후 다시 이 자리로 복귀하였다.

1953년 7월 정전과 더불어 인천경비부는 조직을 재정비하여 수도권 서측 해상 방위를 맡았으며, 1973년 7월 제 5해역사령부로, 1986년 2월 제 2함대사령부로 각각 증강.개편 되었다. 1999년 11월 제 2함대 사령부가 지금의 평택으로 옮겨 가기까지 월미도와 함께 한세월은 53여 년이었으며, 해군 역사가 살아 숨쉬던 한 터전이자 제2함대와 동고동락했던 해군 장병들의 마음의 고향이 이곳에 부대 주준 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조형물을 남긴다. 2004년 10월 5일 해군참모총장
- 안내판 글 직접 발췌 -
해군첩보부대충혼탑
해군첩보부대 충혼탑

해군2함대 사령부 기념비 바로 옆에는 충혼탑이 있습니다. 이 탑은 대북 첩보활동을 하다 전사, 순직을 하신 부대원 17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위의 조형물은 스테인레스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지 상당히 강력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띄이는 충혼탑입니다. 총 공사비는 약 5억7천만원에 높이 6.6m 너비 1m짜리 세개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지하에는 전시실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여행지로 소개하는 것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월미도를 구경하실 때 들러서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특별히 반공이나 그런 것을 강조한다기 보다는 바로 얼마전까지 이곳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군사기지였고, 상륙작전지였다는 것만으로도 가 볼 이유는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위치는 바로 월미전통공원 옆 입니다. 은하레일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니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월미문화의 거리 → 월미공원 전망대 → 월미전통공원을 보시고, 마지막으로 가볍게 사업소 주변도 둘러 보시면 아주 좋을 듯 합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추천좀... ^^
댓글도 어렵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