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
안양천 사진은 많은데 따로따로 기회가 된다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안양구역의 안양천은 이렇다~는 정도만 올려봅니다. 사진은 여러날에 걸쳐서 똑딱이 포함 비싼 카메라까지 동원해 찍은거라 뒤죽박죽입니다만 최대한 조작했습니다. ㅎㅎ ^^;

수도권의 여러 도시들도 자전거 길이 많이 있지만 안양천은 특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직선으로 되어 있던 강을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복개천을 없앴죠. 그리고 생활하수도 정비를 하고 강에 있는 보를 없애면서  물 스스로 생태하천으로 변화되어 가는 안양천은 강의 폭에 비해서 물이 상당히 깨끗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의왕부터 시작해서 안양천을 따라 쭉쭉 타고 가다보면 어느새 한강이 나오는 멋진 자전거 도로 입니다. 즉, 의왕-안양-서울-팔당 까지 쭉쭉 이어서 달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달렸다간 허벅지가 아름드리 나무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안양천
안양천 윗부분은 물이 상당히 깨끗합니다. 뜨거운 여름에는 애들이 나와서 물놀이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하면서 놀 정도입니다. 이렇게 큰 바위도 놓아서 물이 바로 흐러가지 않고 구불구불 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강 옆을 보면 수풀이 가득가득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양천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기는 오리입니다. 제가 짐승 이름은 잘 몰라서 그냥 저 날짐승은 "오리"입니다. 청둥오리인가?? ^^
안양천
붓꽃도 참 예쁘죠. 뒤로 자전거 두대가 오고 있네요. 안양천 의왕, 인덕원 쪽입니다. 간혹 인공적인 부분은 이렇게 꽃들이 심어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죠.
안양천
이렇게 여러 굴곡과 바위가 있어서 물은 똑바로 흐르지 않고, 휘돌고, 머물고, 수풀을 돌아 나옵니다. 물이 깨끗하겠죠? 물은 흘러야 깨끗하죠.
안양천
이제 안양천이 안양시내를 점점 벗어 납니다. 폭도 넓어지고 둑도 높아지고 바닥은 점점 평평해 집니다. 물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그런가봅니다. 그래도 물은 상당히 깨끗합니다. 투명하죠~
안양천
이제 안양을 벗어납니다. 안양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안양다리죠. 멀리 삼성산이 보입니다.
안양천
늘씬늘씬한 아파트들이 보입니다. 집 한채만 나좀 줘~~
안양 시내를 벗어납니다.
안양천
안양을 벗어났습니다. 옆에 나무도 좋고 풀도 좋고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아주 좋은 곳 입니다. 다만 이곳부터는 물이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안양천
훗..
겁나게 무겁고 저렴한 나의 애마!!!! 삼천리 자전거~~
비싼것만 자전거가 아니다!! ㅎㅎ ^^;
안양천
길이 아주 좋죠? 멋지죠?
사람도 없고 깔끔합니다~
그냥 조용히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아주 날아갈 것 같지만 제 자전거는 전혀 날지 못하더군요. 사진에 보이는 다리 왼쪽으로 가면 광명 KTX역이 나옵니다. 오른쪽은 안양 시민체육공원이 나옵니다. 야구장, 축구장, 배드민턴장 등 여러 운동 시설이 있습니다. 저곳을 넘어가면 서울입니다.
안양천
같은 곳에서 한방 더 찍었습니다. 바닥의 아스팔트는 저렇습니다. 좀 더 달려서 서울까지 가고 싶지만 오늘은 딱 요기까지만 달립니다.
안양천

ⓒ 더공


남이섬 나미나라 공화국 l 더공

KOREA l 남이섬 나미나라 공화국 l CANON 350D l 더공

남이섬은 세종 23년(1441년) 유자광의 모함으로 처형된 남이장군의 허묘가 있는 곳이다. 남이장군은 함경도 지방에서 김종서 장군을 도와 여진족을 물리친 장군이었죠. 그런데 김종서가 피살되고 함길도(함경도)지사로 유지광이라는 자가 오게된다.

그런데 남이장군이 성위에서 한편의 시를 지었는데 이 시가 문제가 되어 죽음을 당한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사내대장부가 태어나서 세상을 평정하지 못하면 사내인가"라는 글귀를 유지광이 미평국(未平國)’이란 글귀를 ‘미득국(未得國)’으로 조작한다. 즉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왜곡하여, 반역의 뜻이 있다고 모함받아 영의정 강순(康純) 등과 함께 주살(誅殺)되었다.

<연려실기술>의 국조기사에 수록된 남이의 혼인설화를 통해 남이가 지닌 신통력과 범상하지 않음을 살펴볼 수 있다.

“남이가 어릴 때 큰길에 나가 놀고 있었는데 하인이 보자기에 무엇을 싸서 지고 가는데 그 위에 귀신 하나가 올라앉아 있었다. 따라가 보니 하인은 권람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곧 집안에 곡성이 나서 물어 보니 권대감의 딸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다. 남이는 자신이 죽은 딸을 살리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재상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남이가 들어가 보니 처녀의 가슴 위에 아까 본 귀신이 앉아있는데, 남이를 보자 곧 도망을 가고 죽었던 처녀가 살아났다. 그러나 남이가 방을 나오자 처녀는 또 숨을 거두고 그가 들어가면 다시 살아나곤 했다. 남이가 귀신의 이야기를 권재상에게 하고 나쁜 사귀를 완전히 쫓아버린 후 죽었던 처녀를 살려냈다. 딸을 살려준 은혜를 고맙게 여긴 권람은 남이를 사위로 삼았는데, 권부인은 그가 화를 당하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나미라라공화국은 패키지 여행에 들어 있었습니다. 삼척을 지나 대관령을 지나서 남이나라공화국까지 들어오게 됐습니다. 한겨울이고 혼자 사진기 들고 다녀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따뜻함 보다는 쓸쓸한 느낌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하지만 사진 안에는 모두가 커플과 단체 가족여행객들이 가득가득 하더군요. 역시 이런 곳은 연인 사이에 와야만 기억에도 오래 남는 곳인가 봅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2006년3월1일 남이섬의 이름을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실제로 나미나라에 들어가보면 "엽서, 여권, 화폐. 우표, 전화카드" 등 따로 쓸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한 국방장관, 외교부장, 환경청장등 내각도 있고, 국회의장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미나라를 하나의 관광 섬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보여집니다.

실제로 2006년 관광객은 200만명을 넘었고 외국인의 방문 숫자는 제주도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로 많은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이제 그 "나미나라공화국"안으로 들어가봅니다. 입구에서부터 출국 심사대와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 놓아서 색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여권이라봐야 배표 구입이 전부지만 평생이용 가능한 여권도 만들어 주니까 필요에 따라서 발급받도록하면 됩니다. 나미나라에 들어가는 배편은 계속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오랜시간 줄서서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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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배용준 최지우 l 더공

남이섬 배용준 최지우 l 더공




ⓒ 더공

2002년 4월 26일에 한강의 여의도 아래 양화대교가 지나가는 선유도에 선유도 공원 이 개장을 하였다. 선유도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신선이 유람한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두 곳의 마을에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었으나 일제 강점시대에 여의도 비행장 건설을 위한 골재채취와 1965년 정수장 건설로 완전히 해체되어 오랜 기간 정수장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선유도에서 살던 일부 동네 사람들은 그 곳의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정수장의 시설이 노후화 되어 호텔부지로 매각이 검토(큰일날 뻔했다.)되다가 2000년 위원회에서 시민공원으로의 개발이 결정되어 2년여의 공사과정을 거쳐 월드컵에 맞추어서 문을 연 것이다. - 생태적 관점에서 본 선유도 “안상기” 글 중에서..

선유도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선유교의 모습입니다. 밤에는 조명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낮에는 시원한 한강을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선유도는 낮시간에도 데이트와 현장학습을 하기위해 온 학생들, 그리고 할 일 없이 그냥 시간 떼우러 온 사람들까지 항상 사람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공간입니다.

안양에서 자전거를 타고 허벅지가 살짝 피곤해질 쯤이면 한강이 나옵니다. 조금 더 한강변을 따라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선유교. 사무실이 홍대에 있을 때는 무려 7년동안 매일같이 보며 지나갔었는데 출사를 나갔던 경험은 단 세번 밖에 안되네요. 가까이 있는 만큼 더욱더 안가게 된다는 말이 딱 맞는 말 같습니다.

오히려 홍대로 출퇴근을 안할 때 선유도에 더욱 많이 가본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하고, 일부러 사진 찍기 위해 가기도 하고요. 선유공원이 처음 생겼을 때는 살짝 오래된 물냄새도 나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러한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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