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코스
인천역 → 제1 페루 → 삼국지벽화거리 → 공자상 → 청일조계지 → 일본 제1은행 코스 입니다. 전에 왔을 때는 바로 자유공원쪽으로 올라가서 이곳을 못보고 왔었는데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관광 안내지도를 손에 꼭 쥐고 줄 그어가면서 돌아봤습니다. 사실은 이번에도 골목을 잘못 들어가서 뒷 골목으로 돌아가다가 제1은행을 발견했네요.

참 이런 건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먹먹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기분이 들 수록 더욱더 자세히 살펴 보고, 느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찾아 갔던 날은 상당히 춥고(정말 아주 많이 추웠던 날입니다.) 눈도 슬러시처럼 변하고, 카메라는 몇시간만 꺼내 놔도 금방 방전이 되어 버릴 정도의 추위였죠. 이렇게 날이 많이 풀려버린 지금 이런 글을 쓰니까 이곳을 돌아보던 그 시간이 정말 꿈결처럼 느껴집니다.


그래 이곳을 걸었지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제가 느낀 것은 "골목 골목이 정비가 잘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깨끗하고, 골목마다 보도블럭이나 다른 배수 시설도 상당히 좋아 보였습니다. 인천중구청이 바로 옆에서 있어서인지 아니면 이곳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골목 풍경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전에는 차이나타운을 혼자 걷고 있지는 않았었죠. 그때도 참 추운 겨울이었는데.. 차이나타운을 같이 걸으며 알콩달콩할 때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추운날 혼자 카메라 들고 천천히, 또는 빠른 걸음으로, 또는 찬바람 맞으며 돌아보는 기분은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네요. 특히나 날씨가 추워서 사람이 없는 차이나타운 골목을 돌아다니며 뜨거운 캔커피 하나 들고 돌아다닐 때는 마치 커피 CF의 모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커피 모델은 절대 될 수 없겠지만 말이죠.


이제는 인천 개항 박물관으로 변신
어쨌거나 일본 제1은행은 모든 자재를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와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차가운 대리석 벽돌 만큼이나 차가운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재산을 수탈해 간 그러한 곳이었는데, 2010년 5월에 인천개항 박물관으로 변신했습니다.

결국 제자리가 아닌 것들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처럼 이곳은 이제는 일본의 것이 아닌 우리의 박물관으로 변시을 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품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부터 일제강점이 시작되는 1910년 이전까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내부를 구경 좀 하려 했는데 저의 가장 큰 장점은 제가 가는 날은 문을 닫는 다는 것이죠. 맞습니다. 내부는 구경 못하고 건물 외관만 열심히 구경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금융기관은 1876년 6월 개설된 일본 제1은행 부산지점으로, 인천은 1883년 개항 후 부산지점 인천출장소로 개설되었다가 1888년 이천지점으로 승격되었다. 초기에는 해관세와 한국에서 생산되는 금괴 및 사금의 매입업무를 대행해쓰며, 점차 예금과 대출 등 은행 고유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이후 한국은행 인천지점(1909), 조선은행 인천은행(1911)으로 변경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한국은행 인천지점이 되었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축은 반원아치의 현관을 중앙에 두고 머리에 르네상스풍의 작은 돌을 올려서 좌우 대칭으로 지었으며, 외벽은 화강암으로 다듬어 쌓고 처마 부분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석조 난간을 올렸다. 전체적인 외관은 주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구성한 정충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 안내판 글 -
















- 인천광역시 중구 홈페이지

※ 지도에 사용된 이미지는 다음 지도를 이용하였습니다.
※ 지도 내부에 쓰여진 텍스트는 서울남산체 무료폰트를 사용하였습니다.
※ 참고 문헌은 인천 중구청 홈페이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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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중국 당나라의 화가 오도자가 그린 초상

공자 (孔子)

공자 이름 : 공구(孔丘) / 출생 : 기원전 551년 / 중국 노나라 곡부 창평향(昌平鄕) 추읍(郰邑) / 사망 기원전 479년 / 중국 노나라 곡부 시대 : 춘추 시대 / 지역 : 동양 철학 / 학파 : 유교의 창시자 / 연구 분야 : 윤리학, 정치학, 사회철학 / 주요 업적: 유교 / 영향을 준 분야·인물 : 증자, 자사, 맹자, 순자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는 유가철학의 비조,유교의 시조(始祖)로 떠받들어지는 고대 중국의 정치가, 사상가이다. 노나라의 무관 숙랑흘의 둘째 아들이자 서자로 태어났다.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공자의 자(子)는 경칭으로 '선생'이라는 뜻이 된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

인천 차이나타운 삼국지 벽화 거리를 지나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사거리에서 인천 바다쪽으로 내려다 보면 공자상이 있는 "청일조계지와 공자상"이 있는 곳이 나옵니다. 전에 들렀을 때는 인천자유공원에서 바로 차이나타운 페루쪽으로 내려가서 이곳을 건너 뛰었는데 이번에는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지도에 있는 대로 따라 움직이다 보니 바로 나옵니다.

실제 공자의 초상화는 다르게 조각상은 미남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얼추 비슷해 보입니다. 강인한 얼굴형과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모습은 초상화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얼마전에 개봉했던 "공자"라는 영화에서의 주윤발의 분장한 모습과 왠지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공자와 유교는?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면서 어떻게 보면 가장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 "공자"라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 없이 봐 왔고, 그리고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많이 듣고, 공부하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그게 뭐냐" 라고 물어보면 마땅히 대답하기가 힘든 인물이 공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막상 "공자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유교"라는 대답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교는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요? 막상 떠오르는 대답이 없네요. 어려워요~ 제게도 평천하(
平天下)라는 두꺼운 책이 있지만 아직 1/3도 읽지 못한체 책꽂이에 있습니다. 그나마 기억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더 이상 이갸기를 썼다간 제 얕은 지식의 끝을 보이게 될 것 같아 그만 써야 겠습니다.정말 열심히 읽고 봤는데 막상 풀어 쓰려니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럴줄 알았으면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EBS 강의라도 한번 더 볼껄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아이들과 같이 갔을 때 공자상을 보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옛날 중국 사람이고, 유교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라고 대답을 해 줘야할지.. 정말 공부좀 해야겠네요.


우리 땅에 세워진 청일조계지
이곳은 "청일조계지"로 나라가 어렵고 힘이 없을 때, 그들끼리 우리땅에서 선 긋고 땅따먹기 하던 곳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바로 앞에 항구가 있는 전략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아주 좋은 위치였습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왼편은 일본이, 오른편은 청국이 관리를 하던 곳입니다.

1883년 일본이 먼저 이 일대를 조차지(租借地)로 설정하자 청국도 바로 그 옆에 선을 긋습니다. 그로 인해 겹치는 부분에 대해서 서로가 구분을 하기 위해 조계지를 형성합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때에는 많은 수탈이 이뤄졌던 창구이기도 했던 곳이죠. 가볍게 관광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힘이 없었던 우리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조차지(租借地, Leased territory)는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일시적으로 빌린 영토의 일부를 가리킨다.
조계(租界)는 청나라(이후의 중화민국)에 있었던 외국인이 행정자치권이나 치외법권을 가지고 거주한 조차지를 말한다.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유교는 시조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교(孔敎)라고도 하는데, 그 내용은 신분의 존비와 가까운 데보다 먼 곳에 미치는 인애(仁愛)를 근본으로 하면서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길을 가르치는 일종의 정치학·윤리학이다. 따라서 유학이라고도 한다. 공자는 자기의 교학(敎學)이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성덕(聖德)을 갖춘 옛 성왕(聖王, 선왕)의 도(道)에 합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 위키백과 유교에 대해 더 알아보기 ▶ -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청일조계지"의 모습입니다. 실제로 현재 자리에서 왼쪽으로는 일본식 건물이 많고, 오른편으로는 중국풍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부터는 우리 구역이니까 조심해라"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왼편골목으로 들어가면 "일본 제1은행" 건물을 볼 수 있고 오른편으로 가면 "중산학교"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오른편의 중국식 석등의 모습과 왼쪽의 일본식 석등의 모습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공간 안에 두 세력이 각각 나눠서 조계지를 형성한 것은 특이한 모습이지만 우리의 땅 안에서 서로 나눠서 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던 것을 기억 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역사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1883년 일본이 현 중구청 일대를 중심으로 7천 평을 조차지로 설정하자 다음해 청국도 일본조계지를 경계로 하여 현 차이나타운 일대를 조계지로 설정한다. 지금 한중문화관 옆길에서 자유공원으로 100여 미터를 오르다 보면 중간에 돌계단이 시작되는데 이곳이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다. 길 양쪽으로 설치된 석등도 중국식과 일본식으로 구별되고 중국 청도시 정부에서 기증한 공자상은 계단 중앙을 기준으로 중국 측에 세워져 있다.
- 차이나 타운 홈페이지 발췌 -
차이나타운 공자상 청일조계지

       
공자에 대한 책은 많으니 심심할 때 한번 씩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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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는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쓴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이다. 후한의 운세가 기울기 시작하던 189년부터 진나라의 사마염(司馬炎)이 천하를 통일하는 280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총 6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서(魏書) 30권(본기 4권, 열전 26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으로 구성돼 있다. (삼국지는 원래 위지, 촉지, 오지라는 표제로 구성되었는데, 송나라 이후 위서, 촉서, 오서라는 표제를 더 많이 사용해왔다.) 삼국지는 '사기(史記)', '한서(漢書)'의 체계를 따라 인물전기 위주로 짜여 졌으나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연표를 담은 표(表)나 당시의 경제·문화를 기록한 지(志 혹은 書)가 없다.

삼국지는 위나라(魏)를 정통 왕조로 보고 쓰여진 역사서이다. 진수는 황제들의 전기인 본기를 위나라의 황제들로 엮었으며 '촉'과 '오'의 황제는 열전에 편입시켰다. 제호를 붙인 것은 위나라뿐이며 촉의 유비와 유선은 각각 선주(先主)와 후주(後主)로 기술하였고, 오의 제왕들은 주(主)를 붙이거나 심지어 이름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이러한 체계는 진수가 벼슬을 하던 진나라가 위(魏)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를 비정통으로 본 데에 따른 것이다. 진수의 이러한 사관(史觀)은 훗날 습착치(習鑿齒)의 '한진춘추(漢晉春秋)'나 주희(朱憙)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촉을 정통으로 보면서 논쟁을 불러 오게 되었다.(조위/촉한정통론에 대해서는 정통론을 참조하라.)
- 위키백과 사전 -

인천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삼국지 벽화거리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오른편은 인천화교중산학교의 뒷 담입니다. 삼국지의 내용을 타일에 총 80컷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날씨만 춥지 않다면 좀 꼼꼼하게 봤을텐데 날씨도 날씨지만 도로가.. 눈이 슬러시로 바뀌었고,그 슬러시는 추운 날씨 때문에 얼어 붙어 있어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염화칼슘 좀 뿌리고 슬러시로 된 눈을 길 양쪽으로 좀 치워 놓으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차이나타운 거리가 얼마나 넓다고 그냥 방치 해 놓는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학교 뒷마당 아닙니까. 주변 가게에서 한분씩만 나와서 정리하면 30분도 안걸릴텐데.. 어쨌든 슬러시화 된 언덕을 사람도 차도 오르기 힘든 곳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다시 삼국지 이야기를 해 본다면 예전에는 만화영화로 삼국지로 많이 했었고 철들어서도 삼국지에 대해서 많이 읽었지만 기억나는 인물이라고는 조조, 유비, 장비, 관우, 여포, 조자룡.. 이 정도만 생각이 나고 별다른 기억은 나지 않네요. 분명 고우영의 삼국지를 정말 열심히 읽고 또 읽었는데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이 분명한 듯 합니다.

삼국지 거리에서 삼국지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그냥 "이런 거리도 있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이 인도가 없는 일반 소방도로라서 양쪽에서 차가 지나갈 경우에 벽에 바짝 붙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습니다. 또한 벽에 그려진 그림 이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삼국지라는 내용을 좀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꼼꼼하게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이곳을 일방통행로로 바꾸고, 벽 양쪽으로 사람이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만들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삼국지에 관련된 책은 많으니 아직 읽어보질 못하신 분이라면 추운 겨울날 한번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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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3패루(선린문) 자유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입니다. 1패루는 인천역 앞에 설치되어 있고, 2패루는 중부경찰서와 월미주유소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3패루는 자유공원 입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패루란 화교가 모여 사는 곳의 대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자유공원을 지나면 차이나타운을 만날 수 있습니다. TV나 영화에서 봐 오던 다른 나라의 차이나 타운과 비교를 한다면 다소 실망할만한 규모였습니다. 보통 다른 나라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한눈에 중국풍의 건물과 거리 조성으로 많은 볼거리가 있는 반면에 인천 차이나타운은 규모도 소박하고, 건물도 특색없는 일반 건물이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차이나타운이 형성된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정도의 발전이라면 어느정도 기틀은 마련이 되었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오래전 "왜 한국에는 차이나타운이 없는 것일까?" 에 대해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화교가 모이는 곳은 어김없이 차이나타운이 형성될 정도로 그들의 생존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차이나타운만 그 형성이 더디고 발전이 잘 안되고 있죠. 미국, 일본 심지어 저 멀리 브라질까지 차이나타운이 있죠.

한국은 1998년 김영삼 전대통령때 IMF를 맞이 하면서 외국 자본 유치와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차이나타운을 조성하지만 본격적으로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시기는 2000년 이후부터입니다. 화교가 들어와 정착한 세월을 봤을 때 거의 20세기 끝무렵에나 동네를 세우고, 하나 둘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국인 자본도 무섭고, 바로 옆에 살면서 우리땅에 그들의 동네를 만들어 준다는게 맘에 안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것이 정작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니까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둘러 본 경우라 하겠습니다. IMF를 몰고온 김영삼 대통령이 남겨준 선물이랄까요.

인천 차이나타운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현재는 딱히 그렇다할 특징을 나타내질 못하는 듯 합니다. 중국 여행을 다녀본 분이시라면 다소 어설퍼 보이는 모습에 실망을 하실테고, 중국 여행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파는 물건이 시중에서 많이 봐 오던 저가 중국산 제품 때문에 실망을 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물건도 좀 다양하고, 품질 좋은 고가의 중국산 제품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매년 10월경에 차이나타운에서 "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자유공원에서 차이나타운으로 내려가는 길에 만나는 3패루(선린문) 입니다.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위치에서 좌우측으로 벚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봄에 벚꽃놀이 하기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산책하기에도 좋습니다. 차이나타운을 다 둘러보시거나 그냥 자유공원에 계시고 싶으신 분들은 그냥 슬슬 산책 하시면 되겠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안에 가장 화려한 건물이랄 수 있는 건물입니다. 3패루로 올라가는 계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1패루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건물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1길(자장면거리)에서 중저가상품 거리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차량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면 훨씬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자장면거리 풍경입니다. 뭐 자장면 거리라고 여러 음식점들이 있긴 하지만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이곳의 짜장면이나 짬뽕이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냐에 대해서 여러 의견을 내 놓고 있는데, 다 비슷비슷합니다. 다소 다른점이라면 수타면을 하는 곳도 여러 곳이 있고, 한국식 짜장면이 아닌 중국식 짜장면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가장 맛있다는 리뷰를 읽고 가서 짬뽕을 시켜 먹었는데... 솔직히 우리 동네 짬뽕이 더 맛있더라고요. 이놈의 싼 입맛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네요. ^^;;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다소 위안이 되는 풍경이라면 이런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는 것이죠. 저만 그런지 몰라도 건물에 담쟁이덩쿨이나 여러 식물이 덮여 있는 건물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왠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면서 삭막한 도시의 색깔을 없애주기 때문이랄까요.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3길의 모습입니다. 쭉 나가면 3패루를 만날 수 있으며 (구)일본 제1은행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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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끝쪽에서 자장면거리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길 바닥에 "학교앞 천천히'라는 글이 보입니다. 실제 중간부분 차량이 나오는 우측 부분으로 "화교 중산학교"가 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중홍상점으로 특산품을 파는 상점입니다. 여러 도자기류가 많습니다. 가격이나 그런 부분은 제가 접시나 도자기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아기자기한 제품은 많더군요.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아직은 작은 마을이고, 다소 정리가 안된 듯한 느낌을 받지만 점점 발전하는 차이나타운이 되길 바랍니다.

※촬영 : 2010년 12월5일 1박2일 은지원


여러 필요한 정보는 아래에서 얻으시길 바랍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홈페이지
인천 차이나타운 볼거리 안내도
인천 차이나타운 먹거리 안내도
인천 차이나타운 살거리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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