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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ravel

(인천) 강화 l 성공회 강화성당 - 대한민국 최초의 성당

by 더공 2010. 5. 3.


성공회 강화성당

사적 제424호/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22
본 성당은 고요한(Charl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 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 (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 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안내판 내용-
 

 <고려궁지>를 가기전 <용흥궁>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다. <용흥궁>에서 위로 통하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바로 <성공회 강화성당> 입구가 바로 나온다. 또는 큰길 가에서 <고려궁지> 가기전 초등학교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왠 사찰이 여기 있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앞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이 건물이 아주 오래된 성당임을 알 수 있었다. 절과 비슷한 사찰이라니 이런 성당이 있는지 처음 알게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날때의 흥분감이 밀려온다. 계획에 없었던 강화성당을 한번 둘러보기로한다.
 
※ 성당 외부는 사진 촬영이 언제든 가능하지만, 성당 내부는 주말 미사시간 이외에는 내부 개방이 안되어 있으므로 방문시 전화 필요하다. 031-934-6171





대문만 본다면 이 건물이 사찰인지, 어느 양반집 집인지 알 수 없다. 대문에는 커다란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다. 살짝 열려진 대문 사이로 들어가본다.



정문을 바로 지나면 대문이 없는 중문을 볼 수 있다. 중문이면서 동시에 종각이라니.. 놀랍다. 중문 왼쪽은 종루, 오른쪽은 비어 있는 공간이다.



종루에는 종이 있는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종의 윗부분에는 십자가가 보이고, 옆면에는 기도문이 적혀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 앞모습. 건물 하나에 여러가지 건축 양식이 다 들어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 전통 양식과 근대 양식의 모습이 한데 공존되어 묘한 느낌을 받는다. 대문에 그려진 태극무늬와 처마에는 단청을 입혀서 불교 사찰 모습을 하고 있다. 목재는 백두산에서 베어온 나무로 기둥을 세웠고, 돌은 강화도 현지에서 조달했다고 한다. 한식으로 지어진 최초의 성당은 이렇게 지어졌다.




당시에 어떤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 추춧돌만 남아있다. 8개에서 하나가 빠진 모양이다. 작은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어떤 자료에도 이것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내 마음대로 상상해본다.



옆면에서 바라보면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옆의 건물 칸수와 지붕을 본다면 당시로써도 상당히 큰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당 뒷편에 위치한 사제관의 모습. ㄷ자 형태의 모습으로 되어 있다.



성당 오른편에 자리한 기념비.
대영국알마슈녀긔념비(대 영국 알마 수녀 기념비)



성당 내부의 모습
외관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달리 성당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요즘에도 미사를 한다고 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역시 외부의 큰 모습과는 달리 내부의 모습은 다소 협소해 보인다. 그 안에는 2층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찾아간 날은 미사가 없는 날이어서 내부 촬영을 못했다. 그냥 밖에서 창문 틈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단체출사가 있다면 일요일 미사 시간에 맞춰서 가거나, 개방 시간에 대해서 전화를 먼저 한 후에 가는 것을 권한다. 전화번호는 위에 적어 놓았다.




성당 바깥의 모양은 교태전 뒷편의 아미산의 굴뚝과 같은 모양으로 조형을 해 놓았다.
<용흥궁>에 비해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외부의 여러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다.




ⓒ 더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