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공원사업소
월미도 또다른 가볼 곳.
          서부공원사업소 주변


월미공원 입구에 내려서 공원으로 올라가다 보면 월미전통공원 바로 옆에 있는 곳입니다. 이곳 입구에는 해양경찰의 배가 전시 되어 있고, 관리사무소 옆으로 두 개의 탑이 있는데 하나는 해군 2사령부 주둔 기념탑과, 또 다른 하나는 해군첩보부대 충혼탑입니다.

현재 보이는 관리사무소는 규모가 상당한데 규모도 그렇고 사업소 주변의 부지도 상당히 넓더군요. 이곳에서는 중구, 동구, 남구, 연수구의 시 조성 도시자연공원(10개소)및 근린공원(1개소)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업소의 위치는 중구 북성동 1가 월미공원 내에 있으며, 2001년 10월 13일부터 개방하게 된 월미공원을 비롯하여 문학공원, 관교공원, 청량공원 등의 서부공원사업소 관할하고 있는 사업소입니다.

사업소 바로 옆에 기념탑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탑이 세워졌다는 것은 이곳 또한 뭔가를 기념하거나 역사적인 것이 있었기 때문에 세워져 있는 것이겠죠. 전망이 어떨까 해서 올라왔는데 다른곳에 비해서 전망은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사업소 주변은 넓지 않기 때문에 간단하게 둘러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박물관인줄 알고 올라갔는데 입구에 걸린 간판을 보니 공원관리 사무소였습니다. 사무소 건물이 박물관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큰 규모더군요. 나중에 뭔가 새로운 시설이 들어오는건지...
그린비치?

월미도 문화의 거리 이름이 인천상륙작전 당시 “그린비치”로 불리웠다는 것을 이곳의 안내판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곳은 사진설명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하면 “그냥 인천 시내에 포탄이 날아들고.. 음... 적들을 초토화 시킨 다음에 상륙에 성공한 곳”으로 알고 있죠. 그런데 그 상륙작전 시작이 월미도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월미도 문화의거리에도 그린비치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 아래 작은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린비치 (Green Beach)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
1950년 9월 15일 새벽에 진행된 인천상륙작전은 국제연합(UN)군이 맥아더의 지휘아래 인천 월미도에 상륙하여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역사적인 군사작전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으로 월미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초토화되어 옛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로부터 2001년 다시 개방되기까지 반세기 동안은 월미산은 군사기지로 엄격한 통제 제한구역이 되었다. 9월 15일 새벽, 미 구축함의 첫포탄이 월미도에 작렬하였고,그후 연이은 폭격으로 미군 제5해병연대 제3대대 상륙단의 선수 공격대는 월미도 해안 그린비치에 상륙하였다.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인천지역을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이어서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하여 26일 정오에는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를 계양함으로써 작전을 끝냈다.


미국잡지『라이프(Life)』지에 실린 인천상륙작전 진행도이다.
이 한장의 사진을 통해 보더라도 월미도가 집중적인 포격의 대상이었는지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린비치에 정박한 연합군 함대의 모습과 월미도에서 인천시가를 향해 불뿜는 화기, 레드비치를 향해 질주하는 척후선들의 모습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알 수 있다.
- 안내판 발췌 -
바다로 세계로
해군 2함대 사령부 주둔 기념탑

1946년4월 월미도에 해군이 주둔하다가 1999년 11월 평택으로 이전하기까지 해군 2함대가 월미도에 주둔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 10월 만들어진 조형물입니다. 탑의 높이는 11m로 여러 기념이 될만한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해군이 함정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재현한 수평탑신, 행운의 수병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념탑 아래에는 해군2함대가 사용했던 부대약사, 지휘관 메세지등을 담은 타임캡슐이 봉인되어 저장되어 있습니다.

월미도가 전면 개방된 것은 횟수로 치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곳에 해군 사령부가 있었다는 것은 이 기념탑으로만 남겨져 있지만 그 오랜 세월동안 월미도에 주둔하며 대한민국의 서해바다를 책임졌던 장병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주둔 기념
월미도는 해군 역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한 현장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 2함대사령부가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인천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1946년4월15일 이곳에서 발족한 인천기지는 불과 수 척의 상륙용 주정으로 연안 경비를 맡다가 1949년 6월 인천경비부로 개편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아군의 전세 약화로 군산을 거쳐 목포로 주둔지를 옮겨 목포경비부에 통합되었다가.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3개월 후 다시 이 자리로 복귀하였다.

1953년 7월 정전과 더불어 인천경비부는 조직을 재정비하여 수도권 서측 해상 방위를 맡았으며, 1973년 7월 제 5해역사령부로, 1986년 2월 제 2함대사령부로 각각 증강.개편 되었다. 1999년 11월 제 2함대 사령부가 지금의 평택으로 옮겨 가기까지 월미도와 함께 한세월은 53여 년이었으며, 해군 역사가 살아 숨쉬던 한 터전이자 제2함대와 동고동락했던 해군 장병들의 마음의 고향이 이곳에 부대 주준 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조형물을 남긴다. 2004년 10월 5일 해군참모총장
- 안내판 글 직접 발췌 -
해군첩보부대충혼탑
해군첩보부대 충혼탑

해군2함대 사령부 기념비 바로 옆에는 충혼탑이 있습니다. 이 탑은 대북 첩보활동을 하다 전사, 순직을 하신 부대원 17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위의 조형물은 스테인레스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지 상당히 강력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띄이는 충혼탑입니다. 총 공사비는 약 5억7천만원에 높이 6.6m 너비 1m짜리 세개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지하에는 전시실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여행지로 소개하는 것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월미도를 구경하실 때 들러서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특별히 반공이나 그런 것을 강조한다기 보다는 바로 얼마전까지 이곳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군사기지였고, 상륙작전지였다는 것만으로도 가 볼 이유는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위치는 바로 월미전통공원 옆 입니다. 은하레일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니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월미문화의 거리 → 월미공원 전망대 → 월미전통공원을 보시고, 마지막으로 가볍게 사업소 주변도 둘러 보시면 아주 좋을 듯 합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추천좀... ^^
댓글도 어렵지 않아요~



     월미도 I 월미공원 : 월미전통공원
대한민국 전통공원을 모두 볼 수 있는 곳

월미공원입구에 있는 월미전통공원입니다. 한쪽에는 바다가 있는 항구가 있고, 한쪽에는 월미산을 등지고 있습니다. 원래 월미공원은 월미산을 포함해 이곳 전통공원이 있는 곳까지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던 곳이었습니다. 2001년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만들어진 공원은 월미산+월미전통공원까지 전면 개방되면서 많은 시민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요즘도 월미산을 둘러보다 보면 중무장한 동생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통공원은 규모로 본다면 월미도 문화의거리와 규모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 규모만큼이나 한바퀴 돌아보려면 시간도 어느정도 걸리더군요. 물론 아직 꽃이나 나무가 잎을 틔우는 시기가 아니어서 다소 썰렁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한번 쯤은 둘러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이곳도 연애하기 아주 좋은 곳 같더군요.

아직 이른 날씨라 울창한 숲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 보면 볼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국내에 있는 전통 공원과 가옥에 대해서 한군데서 다 볼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여러 궁에 있는 후원의 모습부터 초가집, 사대부가 기와집, 사당등을 볼 수 있습니다. 전통공원의 단점이라면 이동 동선이 가로로 많이 나 있습니다. 때문에 세로로 움직이려면 어쩔 수 없이 정원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더군요. 봄맞이 공사가 한창인데 관람객들의 동선도 신경을 써 주시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사람은.. 가로 본능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월미전통공원 둘러보기

월미전통공원은 총 20군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원관리소, 광장, 안내소, 아미산굴뚝, 제물포 마당, 부용지, 국담원, 소쇄원, 논밭경작지, 월미폭포, 양진당, 부진입광장, 후문관리소, 서석지, 화장실, 월휴담, 월미봉, 애련지, 궁궐마당, 월미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이곳은 정(庭)과 원(園)으로 구분 해서 따로 꾸며 놓았습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정(庭)이란 담에 둘러쌓인 곳, 원(園)이란 담이 없는 곳에 조형을 해 놓았습니다. 다소 어려운 말이긴 합니다.

월미전통공원은 월미공원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이는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즉, 월미도 입구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월미도를 오가는 버스는 모두 서는 곳이니까 찾는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습니다. 월미전통공원은 대한민국 전통 공원을 한곳에 모아 놓은 테마로 만들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옛스러움이나 멋스러움은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아무래도 공원 형식으로 만들다 보니 정형화되고 자로 잰듯한 모습에서 포근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공원이었습니다. 장점이라면 그러한 정형화된 공원이지만 넓은 평수를 자랑하고, 유모차를 끌고서도 산책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산책로는 좋아보였습니다. 물론 일부 건물은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는 턱이 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공원이었습니다.


가는 방법
지하철 1호선 인천역 -> 2, 23, 45, 720번 버스 (월미공원 or 선창산업 앞 하차)

입장료 : 없음
요 몇일동안 예약 발행이 안되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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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는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쓴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이다. 후한의 운세가 기울기 시작하던 189년부터 진나라의 사마염(司馬炎)이 천하를 통일하는 280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총 6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서(魏書) 30권(본기 4권, 열전 26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으로 구성돼 있다. (삼국지는 원래 위지, 촉지, 오지라는 표제로 구성되었는데, 송나라 이후 위서, 촉서, 오서라는 표제를 더 많이 사용해왔다.) 삼국지는 '사기(史記)', '한서(漢書)'의 체계를 따라 인물전기 위주로 짜여 졌으나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연표를 담은 표(表)나 당시의 경제·문화를 기록한 지(志 혹은 書)가 없다.

삼국지는 위나라(魏)를 정통 왕조로 보고 쓰여진 역사서이다. 진수는 황제들의 전기인 본기를 위나라의 황제들로 엮었으며 '촉'과 '오'의 황제는 열전에 편입시켰다. 제호를 붙인 것은 위나라뿐이며 촉의 유비와 유선은 각각 선주(先主)와 후주(後主)로 기술하였고, 오의 제왕들은 주(主)를 붙이거나 심지어 이름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이러한 체계는 진수가 벼슬을 하던 진나라가 위(魏)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를 비정통으로 본 데에 따른 것이다. 진수의 이러한 사관(史觀)은 훗날 습착치(習鑿齒)의 '한진춘추(漢晉春秋)'나 주희(朱憙)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촉을 정통으로 보면서 논쟁을 불러 오게 되었다.(조위/촉한정통론에 대해서는 정통론을 참조하라.)
- 위키백과 사전 -

인천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삼국지 벽화거리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오른편은 인천화교중산학교의 뒷 담입니다. 삼국지의 내용을 타일에 총 80컷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날씨만 춥지 않다면 좀 꼼꼼하게 봤을텐데 날씨도 날씨지만 도로가.. 눈이 슬러시로 바뀌었고,그 슬러시는 추운 날씨 때문에 얼어 붙어 있어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염화칼슘 좀 뿌리고 슬러시로 된 눈을 길 양쪽으로 좀 치워 놓으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차이나타운 거리가 얼마나 넓다고 그냥 방치 해 놓는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학교 뒷마당 아닙니까. 주변 가게에서 한분씩만 나와서 정리하면 30분도 안걸릴텐데.. 어쨌든 슬러시화 된 언덕을 사람도 차도 오르기 힘든 곳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다시 삼국지 이야기를 해 본다면 예전에는 만화영화로 삼국지로 많이 했었고 철들어서도 삼국지에 대해서 많이 읽었지만 기억나는 인물이라고는 조조, 유비, 장비, 관우, 여포, 조자룡.. 이 정도만 생각이 나고 별다른 기억은 나지 않네요. 분명 고우영의 삼국지를 정말 열심히 읽고 또 읽었는데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이 분명한 듯 합니다.

삼국지 거리에서 삼국지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그냥 "이런 거리도 있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이 인도가 없는 일반 소방도로라서 양쪽에서 차가 지나갈 경우에 벽에 바짝 붙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습니다. 또한 벽에 그려진 그림 이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삼국지라는 내용을 좀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꼼꼼하게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이곳을 일방통행로로 바꾸고, 벽 양쪽으로 사람이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만들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삼국지에 관련된 책은 많으니 아직 읽어보질 못하신 분이라면 추운 겨울날 한번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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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중산학교
1884년 인천에 조계지를 설치한 청국의 영사관이 있던 현재의 자리에 1934년 건립된 2층 조적조 건축물이다. 지금도 지역 내 화교들을 교육하고 있는 인천 유일의 대만 교육기관으로 목조트러스의 모임지붕과 중앙포치(Poach), 아치형 창호 및 지붕 층의 출창 형태가 특징이다. 현재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 붐을 타고 한국 학생들도 많이 다니고 있다. - 인천 차이나타운 홈페이지 발췌 -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중산학교 仁川華僑中山中學校
전에 인천 차이나 타운에 왔을 때 한번 봤으면 했는데 깜빡 잊고 가보질 못했는데 이번에 가보게 됐습니다. 위에 안내 글에도 있듯이 1934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근현대 건물이 거의 없는 실정에서 정말 오래전 건물입니다. 학교의 역사가 어떻게 되나 하고 들어가 보려 했는데.. 방학중이라 문 닫혔더군요. 꼭 가는 날마다 문을 닫습니다. ㅡ.ㅜ

인터넷 자료를 살펴보니 인천 차이나타운 안에 있던 학교는 정식학교로 인가 받은 것은 1999년에는 화교 소학교(1901년 건립)와 중산학교(1957년 건립)학교가 정식학교로 인가됐을 정도로 대한민국 안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역사가 있더군요. 학교는 소학교(초등)와 중학교가 같은 운동장을 쓰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직도 규제가 많아 인천 차이나타운의 화교 숫자는 2만명을 약간 웃도는 숫자가 유지된다고 합니다. 글을 가만 읽어 보면 중국어 공부를 위한 한국 학생들도 다수 있다고 하네요. 한국 초, 중학교와 다른점이라면 운동장이 일반 모래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로 되어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뛰어 놀거나 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인터넷 자료만으로 보면 연대가 다소 헷갈리게 나와 있습니다.
즉 "1884년 청국 영사관 (淸國領事館) - 1901년 소학교 설립 - 1934년 소학교 건축 - 1957년 중산학교 건립 - 1999년 정식 학교 인가" 이런 순서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청국영사관이 철수 하고, 그 건물에서 소학교로 등록을 하고 지내다가 1934년 소학교를 현재의 2층 건물로 지었다는 것이 됩니다. 영사관이 몇년까지 이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내용을 찾기가 어렵네요. 나중에 정확한 내용을 발견한다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입구에 있는 사자상

자금성

학교 정문에는 사자 두 마리가 양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문을 바라보고 왼쪽에 보이는 사자는 입을 다문 모양으로 앉아 있고, 오른쪽에 있는 사자는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 사자상과는 다소 다른 모양입니다. 자금성에 있는 사자상과 비교를 해 보시면 똑같은 사자인데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천중산학교 앞에 있는 사자는 일반 사자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보통 입구에 두 마리의 사자상을 세우는 것은 똑같은데, 한쪽은 암사자를 한쪽은 숫사자를 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천중산학교는 그냥 숫사자 두 마리입니다. 학교 관계자를 만났으면 학교 앞 사자상에 대해서 좀 물어봤을텐데....

화교 중산학교


화교 중산학교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1934년에 지어진 소학교(초등학교) 건물입니다. 오른쪽 건물은 중등, 고등 과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화교 중산학교


화교 중산학교


화교 중산학교
학교 바로 앞에는 복래춘(復來春) 이라는 상점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과자 전문점이라고 하는데 공갈빵 하나 사서 드셔보세요. 아주 맛이 좋습니다. 공갈빵은 봉지 안에서 부숴서 조각을 하나씩 꺼내 먹는게 제 맛이죠~
화교 중산학교


화교 중산학교


화교 중산학교
禮儀廉恥(예의염치)라는 네 글자가 정면에 보입니다. 겨울방학이라 역시 썰렁해 보입니다.
화교 중산학교
인천 화교중산학교는 자장면 거리를 죽 내려오다가 풍미(음식점), 해안 천주교 건물이 보이면 왼쪽으로 꺽어서 언넉을 살짝 올라가면 정문이 보입니다. 정문이 넓은 곳에 있지 않고 다소 좁은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골목으로 들어가면 학교 담장이 보이니까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화교 중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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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3패루(선린문) 자유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입니다. 1패루는 인천역 앞에 설치되어 있고, 2패루는 중부경찰서와 월미주유소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3패루는 자유공원 입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패루란 화교가 모여 사는 곳의 대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자유공원을 지나면 차이나타운을 만날 수 있습니다. TV나 영화에서 봐 오던 다른 나라의 차이나 타운과 비교를 한다면 다소 실망할만한 규모였습니다. 보통 다른 나라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한눈에 중국풍의 건물과 거리 조성으로 많은 볼거리가 있는 반면에 인천 차이나타운은 규모도 소박하고, 건물도 특색없는 일반 건물이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차이나타운이 형성된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정도의 발전이라면 어느정도 기틀은 마련이 되었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오래전 "왜 한국에는 차이나타운이 없는 것일까?" 에 대해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화교가 모이는 곳은 어김없이 차이나타운이 형성될 정도로 그들의 생존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차이나타운만 그 형성이 더디고 발전이 잘 안되고 있죠. 미국, 일본 심지어 저 멀리 브라질까지 차이나타운이 있죠.

한국은 1998년 김영삼 전대통령때 IMF를 맞이 하면서 외국 자본 유치와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차이나타운을 조성하지만 본격적으로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시기는 2000년 이후부터입니다. 화교가 들어와 정착한 세월을 봤을 때 거의 20세기 끝무렵에나 동네를 세우고, 하나 둘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국인 자본도 무섭고, 바로 옆에 살면서 우리땅에 그들의 동네를 만들어 준다는게 맘에 안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것이 정작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니까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둘러 본 경우라 하겠습니다. IMF를 몰고온 김영삼 대통령이 남겨준 선물이랄까요.

인천 차이나타운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현재는 딱히 그렇다할 특징을 나타내질 못하는 듯 합니다. 중국 여행을 다녀본 분이시라면 다소 어설퍼 보이는 모습에 실망을 하실테고, 중국 여행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파는 물건이 시중에서 많이 봐 오던 저가 중국산 제품 때문에 실망을 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물건도 좀 다양하고, 품질 좋은 고가의 중국산 제품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매년 10월경에 차이나타운에서 "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자유공원에서 차이나타운으로 내려가는 길에 만나는 3패루(선린문) 입니다.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위치에서 좌우측으로 벚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봄에 벚꽃놀이 하기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산책하기에도 좋습니다. 차이나타운을 다 둘러보시거나 그냥 자유공원에 계시고 싶으신 분들은 그냥 슬슬 산책 하시면 되겠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안에 가장 화려한 건물이랄 수 있는 건물입니다. 3패루로 올라가는 계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1패루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건물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1길(자장면거리)에서 중저가상품 거리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차량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면 훨씬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자장면거리 풍경입니다. 뭐 자장면 거리라고 여러 음식점들이 있긴 하지만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이곳의 짜장면이나 짬뽕이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냐에 대해서 여러 의견을 내 놓고 있는데, 다 비슷비슷합니다. 다소 다른점이라면 수타면을 하는 곳도 여러 곳이 있고, 한국식 짜장면이 아닌 중국식 짜장면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가장 맛있다는 리뷰를 읽고 가서 짬뽕을 시켜 먹었는데... 솔직히 우리 동네 짬뽕이 더 맛있더라고요. 이놈의 싼 입맛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네요. ^^;;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다소 위안이 되는 풍경이라면 이런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는 것이죠. 저만 그런지 몰라도 건물에 담쟁이덩쿨이나 여러 식물이 덮여 있는 건물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왠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면서 삭막한 도시의 색깔을 없애주기 때문이랄까요.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3길의 모습입니다. 쭉 나가면 3패루를 만날 수 있으며 (구)일본 제1은행을 볼 수 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끝쪽에서 자장면거리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길 바닥에 "학교앞 천천히'라는 글이 보입니다. 실제 중간부분 차량이 나오는 우측 부분으로 "화교 중산학교"가 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중홍상점으로 특산품을 파는 상점입니다. 여러 도자기류가 많습니다. 가격이나 그런 부분은 제가 접시나 도자기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아기자기한 제품은 많더군요.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아직은 작은 마을이고, 다소 정리가 안된 듯한 느낌을 받지만 점점 발전하는 차이나타운이 되길 바랍니다.

※촬영 : 2010년 12월5일 1박2일 은지원


여러 필요한 정보는 아래에서 얻으시길 바랍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홈페이지
인천 차이나타운 볼거리 안내도
인천 차이나타운 먹거리 안내도
인천 차이나타운 살거리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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