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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ravel

왕의 기운이 서렸다는 경희궁

by 더공 2011. 5. 17.

경희궁

경희궁
사적 271호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이었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1617년(광해군 9) 인경궁(仁慶宮)·자수궁(慈壽宮)과 함께 건축을 시작하여 162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처음에는 경덕궁(慶德宮)이라 하였으나,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고쳤다. 경희궁 자리는 원래 인조(仁祖)의 생부인 정원군(定遠君:뒤에 元宗으로 추존)의 잠저(潛邸)였는데, 여기에 왕기(王氣)가 서렸다고 하여 광해군(光海君)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숭정전(崇政殿)·융복전(隆福殿)·집경당(集慶堂)·흥정당(興政堂)·회상전(會祥殿)·흥화문(與化門) 등의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1829년(순조 29)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燒失)되었으나, 1831년에 중건하였다. 그후 국권피탈 때에는 숭정전·회상전·흥정당·흥화문·황학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본인들이 들어와 숭정전은 1926년 동국대학교 구내로 이전되고, 2년 후에 흥정당은 광운사(光雲寺)로 이건하였으며, 흥화문은 1832년에 박문사(博文寺)의 산문(山門)으로 이축되었다가 장충동 영빈관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황학정은 1922년 사직단(社稷壇) 뒤 등과정(登科亭) 터로 이건하였다.

1988년 경희궁 복원작업에 착수하여 흥화문은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이건하고, 숭정전은 새 건물을 지어 복원하였다.
- 백과사전


경희궁
경희궁은 세종로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쭉~ 600미터 가다보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정동사거리 바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덕수궁, 경복궁은 많이 관람을 하는 반면에 경희궁은 교통편이라든지, 여러 건물에 둘러쌓여 있어서 그냥 지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도 내부까지 들어가서 꼼꼼하게 본 것은 처음입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리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주변에 넓게 공원등으로 꾸며져 있는 것을 봤을 때 예전 경희궁의 권역이 어느정도였는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많은 규모 중에서 상당부분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몇동 없는 것을 봤을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떨 수 없습니다. 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서울이 올라선 것이니..

“어?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어쨌든 다른 곳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찾는 분들이 많지 않더군요. 단체관람객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거의 대부분이 소규모 가이드를 겸해서 찾는 분들이나 개인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입장료도 없고, 안내 하시는 분도 없더군요. 오히려 사람이 없어서 천천히 관람하기에는 더없이 편했습니다.

건물의 규모는 겉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내부에 들어서서 보면 엄청난 크기에 깜짝 놀랍니다. 특징이라면 경사진 곳에 세워져 있어서 건물들이 층층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궁에 비해서 계단 형식으로 지어진 경희궁은 그동안 정형화되어 있는 궁궐 때문에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끼셨던 분들에게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듯 합니다.

특히 태령전 (영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음) 뒷편의 서암과 용천을 본다면 "이게 궁궐이 맞나?" 할 정도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경희궁 안에서도 태령전은 발길이 뜸한데 이유는 태령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건물 사이로 들어가야 하는데 급하게 구경오셨던 분들은 그 뒷편까지 가보지 않고 바로 나가기 때문인듯 합니다. 경희궁을 추천하는 이유는 무료관람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규모에 비해서 다른 궁궐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인왕산과 서울 성곽길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경희궁

경희궁

경희궁

경희궁

경희궁

경희궁의 특징은 산을 깍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활용해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모든 건물은 이와 같이 층층 계단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시면 반하실 겁니다. 사진찍기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추천합니다.

경희궁
문화재 관람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작은 종이 하나까지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데 그런 문화재에 구멍내고 찢고... 더불어 이렇게 방치되어 있으면 '나도 한번 구멍 내 볼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으니 빠른 시간에 창호지를 다시 발랐으면 좋겠습니다.

경희궁
태령전 내부입니다. 정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어진각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터만 남아 있던 상태에서 1998년 복원 공사가 끝난 이후에 어진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어진을 보관하는 것은 아니죠. 태령전이라면 그냥 태령전. 어진을 보관하려면 어진각으로 만들었어야 합니다. 수원화성 화성행궁에 있는 어진각을 본다면 이건 말도 안되는 복원입니다. 분명 정조가 그 이전에 태령전을 어진을 봉안할 수 있도록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부 또한 어진을 보관할 수 있는 봉안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봉안각 없이 달랑 유리 상자 안에 복제된 어진을 걸어 놓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문화재 복원으로써도 다소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경희궁
다른 궁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바위가 바로 궁 뒤에 있습니다. 서암으로 불리우며 신기하게도 물이 계속 나오고 있더군요. 저 바위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용천으로 물리우며 바위게 물길을 만들어 물이 흐르도록 하였습니다.

경희궁

경희궁
사적 271호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이었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다. 경희궁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이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하였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로 인하여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서울시에서는 1987년부터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다. - 서울 역사박물관 경희궁 안내 발췌 : 홈페이지 http://museum.seoul.kr/kor/gyeung/1173415_698.jsp -

경희궁
경희궁은 상당히 매력적인 곳입니다. 면적은 작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건물 규모. 그리고 지형을 변화시키지 않고 만들어진 건축물들. 층층이 건물이 올라서 있고, 대문과 대문 사이로 보이는 앞의 건물과 계단들을 보면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종로 여행중 경복궁, 덕수궁을 보셨다면 살짝 발걸음을 돌려 경희궁도 꼭 보시기 바랍니다.


관람시간
  - 평 일 : 09:00 ~ 18:00 / 공휴일 : 10:00 ~ 18:00
  - 휴관일 : 1월1일 , 매주 월요일

관람요금 : 무료
문의 : 02-724-02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