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구장이라 불리워도 손색 없다!!
인천에 새로운 명물이 생겼습니다. 인천 도원역 바로 앞에 인천 유나이티드의 축구전용구장인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인천 숭의아레나)가 개장했습니다. (현재 구장의 정확한 명칭은 정해지지 않은 듯 합니다. 이후 네이밍 마케팅으로 후원사의 이름을 구장 명칭에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하철1호선 도원역에서 지상과 지하로 통하는 출구를 통해 바로 경기장 입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주차시설은 지하 3층까지 있으며 총 750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습니다. 총 관중 규모 : 20,910명의 중형 전용구장인데 실제 내부에서 경기장을 봤을 때 사각이 존재하지 않고, 골대와 관중석의 거리는 5미터 정도로 말 그대로 선수 땀방울까지 보일 정도입니다. 경기장 지붕은 원성석(화면 정면)만 지붕이 없고 나머지는 전부 2층 구조에 지붕이 거의 100% 가려집니다.

현재 바로 옆에는 주상복합아파트 3개동을 짓기위해 건설을 준비중이라 그런지 다소 어수선하지만 경기장만 본다면 국내 축구 전용 구장중 가장 적당한 규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구장은 골대 뒷편에 철망 장치가 있어서 답답한 느낌이 들었는데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은 그러한 장치 없이 뻥 뚫려 있어서 시야가 상당히 좋습니다.

첫날이라 스탭이 없어서 한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어느 곳에서든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와서 시야는 너무나 괜찮았습니다.

전광판은 화면이 나오는 대형 전광판이 구석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작은 전광판은 글자만 나옵니다. 문제는 전광판이 오히려 인천 일반관중들은 보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즉 응원석, 원정석에서도 전광판 화면이 잘 보이지만 정작 일반석에서는 고개를 우측으로 확!! 꺽어야 전광판을 볼 수 있습니다.


좌측 일반석입니다. 다소 비싼 좌석이며 층 사이에 룸으로 꾸며진 특별석이 있으며 2층에 기자석과 함께 선수 입장하는 출구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인 전광판
전광판 자체로 놓고 본다면 상당히 좋습니다. 화질도 좋고, 크기도 좋고요. 문제는 가장 많은 관중이 앉는 E석에서는 이 전광판을 보려면 목을 돌려야 하는데 목을 돌려도 화면이 안보입니다. 오히려 원정석에서 잘보이는 시스템입니다. 전광판 하나를 더 설치하던가 아니면 위치를 바꾸던가 해야 할 듯 합니다.
 
응원석 출입구
오히려 원정석 출입구가 전철역과 더 가까워서 불편합니다. 더군다나 개장 첫날이라 그런지 다들 우왕좌왕. 나중에는 응원석이든 일반석이든 사람들 전부 이동. 게이트를 너무 적게 열어놔서 들어가면서도 줄서서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 운영의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테이블석
나름 비싼 테이블석. 3만원이나 하는 좌석인데 별도의 팬스가 없어서...
경기장 내부 매점 골목.
그나마 햇살이 살짝 들어와서 좋았는데도 너무나 추운 날씨. 더군다나 쥐포 굽는 냄새와 담배피우는 사람들, 술판 벌리고 있는 노친님들 때문에 오래 있기 괴로웠던 곳. 아마 제가 모든 축구장 다녀봤지만 가장 기분 상했던 곳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육개장 사발면 작은거 하나에 1,500원. -_-
하프타임 공연 준비중인 에이핑크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데... 공연 전까지 추워하는 기색이 그대로 보였는데 공연하니까 언제 그랬냐는듯 달라지더군요.
경기장 지붕은 원정석을 제외하고 모든 좌석을 덮을 정도입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원정석을 제외하고 관중석은 편안한 관람이 될 듯 합니다.
인천유나이티드의 대형 걸개.
경기가 있는날에 오시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원정석 뒷편에는 작은 어린이용 축구장이 있습니다.
유소년 전용 축구장인지 모르겠는데 아기자기한게 아주 귀엽더군요.
원정석에서 바라본 홈 응원석
처음에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날씨가 너무 춥다보니 전부 태양이 내리쬐는 좌측 일반석으로 전부 이동.
진짜 장난아니게 춥더군요. 바다가 가까워서인지 도심에서 부는 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차가운 바람.
사진이고 축구 경기고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사실 저는 이쪽으로는 올 수 없는 티켓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천 응원석.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제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구역인데 왼편의 E석을 지나고, 화면에 안보이는 가족석을 지나고, 원정팀 구역을 지나고 W석 까지 가는데 아무도 막지 않더군요. 빠른 시일내에 구역을 나눌 수 있는 팬스 설치가 시급해 보였습니다. 특히 원정석을 분리하는 것은 최우선시 되야 할 듯 합니다.
밖에 나와보니 상당히 멋진 구조물이 있습니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이곳에 올라서 경기장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아찔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장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는 전망대와 숭의아레나가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
이후에 좌측으로 주상복합 아파트가 지어진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못보겠죠.
개장 첫날 운영상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노출했지만 경기장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적당한 규모의 경기장, 전철역과 바로 연계된 경기장, 선수들의 땀방울까지 볼 수 있는 경기장입니다. 도원역에서도 보이는 경기장이죠. 경기가 열리지 않는 날에도 경기장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인천에서 새로운 명소로 불리울 듯 합니다. "인천 축구전용 경기장"의 위치는 인천 도원역입니다.







“오~ 이런 음식도 있었나?

     인천의 명물. 송림2동 “닭알탕”

어렸을때 시골에서 가끔 암탉을 잡으면 뱃속에 계란이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암닭이 알을 낳을 준비를 하는데 그때 잡으면 얼떨결에 맛있는 계란을 먹을 수 있는 것이죠. 닭먹고 알먹고~

재미있는건 그 알은 노른자처럼 되어 있는데, 맛은 계란을 삶으면 흰자부분의 맛과 비슷합니다. 어쨌든 그 암탉의 알은 어른들 몫이었고, 얘들은 아주 가끔 하나씩 주는 걸 먹을 수나 있었습니다. 이번에 인천에 갔다가 그 닭알을 가지고 만든 요리가 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인천에 왔으니 특별한걸 먹여주마!!” 하고 “닭알탕”을 추천하며 인천 송림2동 현대시장 맞은편으로 옮겨갔습니다. 닭알탕 첫 맛은 뭐랄까, 얼큰하지만 맵지 않으면서 걸죽한 국물맛이라고 해야하나? 안주로는 딱 좋더라고요. 날 더운데 뜨거운거 먹으면 힘들지 않을까 할텐데 에어컨+선풍기 제대로 나오니 좋더라고요. 속은 뜨끈하고 몸은 시원하고..

※ 급 번개로 얼떨결에 인천에 가서 폰카로 급하게 찍은거라 화질은 그리 좋지 않지만 대충 분위기는 보실 수 있을거에요. 제가 음식점 소개하는게 다 이렇게 얼렁뚱땅입니다. 뭐 어차피 입맛은 다 제각각이라서 저처럼 이런 음식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테고, 싫어하시는 분은 싫어하실테고.. ^^;
인천 닭알탕
비주얼은 이렇습니다. 대(大)자 시켜서 네명이 먹었습니다. 무진장 큰 세숫대야 같은 크기에 가득담겨 나옵니다. 양이 많다 싶은데 먹다보면 금방 줄어듭니다.

인천 닭알탕 인천 닭알탕
인천 닭알탕
이게 바로 "알"입니다. 인천분들이 처음먹어보는 제게 닭알탕이라며 직접 “알”을 들어 줍니다.
노른자 같아 보이는데 맛은 흰자. 뻑뻑하지 않고 씹히는 질감도 탱글탱글 좋더라고요. 닭알 이외는 야채와 닭내장으로 탕을 만든 것인데 닭 내장은 생각보다 질감이 좋습니다. 맛도 상당히 고소합니다.

인천 닭알탕
딱 보면 완전 노른자인데 흰자가 단단한 그런 느낌입니다. 쫄깃쫄깃한 느낌입니다. 국물은 맵지 않으면서 얼큰한 맛입니다. 국물에 어떤걸 넣어도 바로 탕이 될 것 같더라고요. 탱탱한 흰자. 개인적으로는 괜찮았습니다. 저거 하나에 이슬이 한잔~ ^^

인천 닭알탕
얼추 먹으면 라면사리 시킵니다. 그러면 새로운 육수와 라면을 넣고 팍팍 끓입니다.
라면도 상당히 맛있더군요.

인천 닭알탕
     전부 다 TV에 나온 집!!
밖에 나와보니 이곳이 전부 이렇게 알탕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네요. 재미 있는 것은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다 한번씩 TV에 출연을 했네요. 앞에 계신분들은 전혀~ 모르는 분들입니다. 누구신데 제 사진에.. 처음 먹어본 인천의 명물 닭알탕. 허름하고 그렇게 깔끔하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둘러 앉아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닭알탕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 현대주점, 영월주점, 창석주점,등 5군데나 있습니다. 그냥 아무곳이나 들어가셔도 맛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날 첫번째집 현대주점에서 먹었습니다. 오래전 막걸리 한잔에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삶을 논했던 젊은시절의 자주 다녔던 목로주점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왁자지껄 이야기하며 즐길 수 있는 곳. 인천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다면 꼭 한번 들러 보세요.


※ 현대주점 : 인천 동구 송림2동 55번지. 현대시장 맞은편입니다. 032-766-8921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Sudoguksan Museum of Housing and Living

이름이 너무 좋은 박물관이었습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라니..
여행이 목적이든 관람이 목적이든 이곳은 이름부터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곳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인천에 대해서 좀 더 밝게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습니다. 다소 늦은 방문이었지만 제 기억에 아주 오랫동안 남을 소중한 박물관 이었습니다.



     달동네에 대한 기억

ⓒ 더공

어렸을 때 신림동에 친구와 놀러갔었습니다. 얼굴 시커먼 애들 둘이 버스타고 전철타고 버스 또 타고 신림까지 어찌어찌 가게 됐죠. 그러나 언덕을 올라가면서 부터 서울에 대한 환상은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서울의 모습은 세련된 말투, 남자 아이들도 여자처럼 뽀얗던 모습, 모두가 멋진 집, 좋은 음식만 먹고 사는 줄 알았던 서울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서 본 자취방은 시골의 집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방은 그렇다 쳐도,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꽉차는 부엌. 그리고 가장 충격이었던 공용화장실은 말 그대로 여기가 서울인지 시골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습니다. 그 화장실을 표현하자면 나무로 만든 문틈으로는 서울의 풍경이 보였고, 문고리는 꽉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 문고리 옆에는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있는 노끈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나무판마저도 구멍이 뻥 뚫려 있어서, 밤이면 불빛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무언가로 막아 놓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 구멍으로 내려다 보는 서울은 기존에 알고 있던 서울과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미 서울은 장미색깔이 아니었습니다.

그 작은 방에서 칼잠을 자고, 다음날 바로 집으로 내려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도시라고 해서 다 잘 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었죠.



     추천 1순위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공용 화장실 모형

인천에 이러한 박물관이 있다해서 정말 한달음에 달려간 곳입니다. 동인천역에서 4번출구로나와 푯말을 따라 1km정도 언덕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매일 다니시는 분들이야 가까운 거리겠지만, 마을버스라도 한 대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개발로 한쪽에는 고층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운동삼아 박물관이 있는 공원을 돌고 계셨습니다. 언덕위에 있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마치 거대한 배가 올라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실제로 재개발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집과 생활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었습니다.

어두컴컴한 내부에서는 극장에 들어가는 것 처럼 어둠에 대한 적응 시간을 좀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깜깜한 밤에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사이에 이발소에서는 오래된 음악이 흘러 나오고 좁은 부엌에서는 음식 준비로 한창인 아줌마, 작은 집 위에 걸려 있는 빨래까지 정말 우리의 소박하고 담이 없던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가끔 웃지 못할 헤프닝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가짜로 만들어 놓은 화장실에 실제로 들어가서 일을 보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화장실에는 안내 문구가 추가 되었습니다. 용변금지!!

※ 그동안 박물관을 많이 봐 왔지만 이곳은 꼭 한번 가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박물관 견학이라면 저는 무조건 이곳을 추천합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수도국산은 인천 동구의 동인천역 뒤에 위치한 산으로, 일제강점기인 1909년 산꼭대기에 있던 수도국에서 유래되었다. 옛 이름은 소나무가 많다하여 송림산 혹은 만수산이라 하였다.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이 중구 전동 지역에 살게 되자 그곳에 살던 조선인들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수도국산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어 한국전쟁때에는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자리를 잡았고, 1960~1970년대에는 산업화의 바람으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지방 사람들로 붐볐다. 181500㎡ (55,000평) 규모의 산꼭대기까지 3천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하면서 이곳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현재 이곳은 아파트 단지와 공원으로 변모하여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인천 동구청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수도국산달동네의 삶을 되살리고자 달동네터에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했지만 자취나마 간직함으로써 부지런히 일하고 더불어 살아온 달동네 사람들의 미덕을 오늘과 내일까지 지키고 싶다.
- 팜플렛 안내 중 -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현재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서는 "그날 이후"라는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6.25 이후의 인천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과 물건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인천의 오래전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특히 가장 눈길을 끌었던 사진은 댕기머리를 하고 사탕 같은 것을 팔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더군요. 지금쯤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셨을텐데...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문 하나, 창문 하나, 그 위의 지붕.. 그리고 아련한 기억의 골목길까지 소중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빨간 전등이 달려 있는 공동 화장실부터 이발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오래전에 달동네에 살아본 기억이 있으신 분은 "옛 기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 같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달동네는 현재 사라져가는 진행형입니다. 마냥 어렵게 사는 모습을 박물관이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이웃간에 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이 박물관이 더욱더 의미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것과 비교한다면 이웃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달동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천 여행을 계획하시고 계시다면 꼭 한번 들러보세요.

PS. 박물관은 교통편이 다소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평균 500명 이상이 찾아 오신다고 합니다. 주말에 방문을 하시려면 오전시간을 이용해서 관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많이 찾는 날에는 시장보다 더 복잡하다고 하네요. 주차 시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대중교통으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가는 법
지하철 : 1호선 동인천역 하차. 4번출구 도보 10분
시내버스 : 복음병원 하차 도보 7분 (2, 3,-1B, 10, 12, 17, 41, 46, 62, 62-1)
미림극장 하차 도보 7분 (12, 16, 17, 17-1, 41, 62, 62-1, 901(좌석), 908(좌석)

위치 :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9길 100 (송현동 163)
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icdonggu.go.kr/museum
문의전화 : 032) 770-6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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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는 1883년 개항 이후 건립된 건축문화재 및 1930~4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잘 보존된 구역으로 당시의 근대건축기술 및 역사적 기록을 지니고 있어 건축조형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곳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舊일본우선주식회사(등록문화재 제248호)를 비롯한 근대 개항기 건물 및 1930~40년대에 건설된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창작스튜디오, 공방, 자료관, 교육관, 전시장, 공연장 등 총 13개 동의 규모로 조성되었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이러한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최대한 살려 문화적으로 재활용하자는 시민들의 뜻과 인천시의 의지가 합쳐져 탄생하였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을 중심으로 이곳 개항장 일대는 거대한 스트리트 뮤지엄으로 확장되어나갈 예정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되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일 것입니다. - 인천 아트 플랫폼 -


사진에 보이는 곳으로 왼쪽은 인천차이나타운. 즉, 청일조계지에서 청국쪽이고 왼쪽은 일본의 조계지입니다. 왼쪽 청국쪽은 차이나타운 거리로 여러 중국 음식점, 박물관, 학교 등이 있는데 오른쪽 일본 구역에서는 아직까지 장사를 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현대 건축물에 일본식 모양을 내서 일본풍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전부 입니다.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일본 사람은 없지만 오래전에 지어 놓은 건물은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건물이 현재는 각종 전시장, 교육관, 아카이브 등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문화공간, 문화거리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인천 아트 플랫폼"입니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이곳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네요. 저 또한 차이나타운을 방문해서 둘러보다가 알게 되어서 어떤 전시를 하는지, 어떤 교육을 하는지는 홈페이지를 이용해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구역 자체가 좀 더 발전하려면 이러한 문화 공간이 더욱 홍보가 되고,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드림하이 야외 촬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생겼네요.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아트플렛폼

인천아트플렛폼 약도 - 홈페이지

-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

PS. 얼마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곳이 드림하이 기린예고 야외 촬영장이라고 하네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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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분 한분의 추천이 큰 힘이 됩니다. ^^ ----------------
《삼국지》(三國志)는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쓴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이다. 후한의 운세가 기울기 시작하던 189년부터 진나라의 사마염(司馬炎)이 천하를 통일하는 280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총 6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서(魏書) 30권(본기 4권, 열전 26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으로 구성돼 있다. (삼국지는 원래 위지, 촉지, 오지라는 표제로 구성되었는데, 송나라 이후 위서, 촉서, 오서라는 표제를 더 많이 사용해왔다.) 삼국지는 '사기(史記)', '한서(漢書)'의 체계를 따라 인물전기 위주로 짜여 졌으나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연표를 담은 표(表)나 당시의 경제·문화를 기록한 지(志 혹은 書)가 없다.

삼국지는 위나라(魏)를 정통 왕조로 보고 쓰여진 역사서이다. 진수는 황제들의 전기인 본기를 위나라의 황제들로 엮었으며 '촉'과 '오'의 황제는 열전에 편입시켰다. 제호를 붙인 것은 위나라뿐이며 촉의 유비와 유선은 각각 선주(先主)와 후주(後主)로 기술하였고, 오의 제왕들은 주(主)를 붙이거나 심지어 이름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이러한 체계는 진수가 벼슬을 하던 진나라가 위(魏)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를 비정통으로 본 데에 따른 것이다. 진수의 이러한 사관(史觀)은 훗날 습착치(習鑿齒)의 '한진춘추(漢晉春秋)'나 주희(朱憙)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촉을 정통으로 보면서 논쟁을 불러 오게 되었다.(조위/촉한정통론에 대해서는 정통론을 참조하라.)
- 위키백과 사전 -

인천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삼국지 벽화거리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오른편은 인천화교중산학교의 뒷 담입니다. 삼국지의 내용을 타일에 총 80컷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날씨만 춥지 않다면 좀 꼼꼼하게 봤을텐데 날씨도 날씨지만 도로가.. 눈이 슬러시로 바뀌었고,그 슬러시는 추운 날씨 때문에 얼어 붙어 있어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염화칼슘 좀 뿌리고 슬러시로 된 눈을 길 양쪽으로 좀 치워 놓으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차이나타운 거리가 얼마나 넓다고 그냥 방치 해 놓는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학교 뒷마당 아닙니까. 주변 가게에서 한분씩만 나와서 정리하면 30분도 안걸릴텐데.. 어쨌든 슬러시화 된 언덕을 사람도 차도 오르기 힘든 곳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다시 삼국지 이야기를 해 본다면 예전에는 만화영화로 삼국지로 많이 했었고 철들어서도 삼국지에 대해서 많이 읽었지만 기억나는 인물이라고는 조조, 유비, 장비, 관우, 여포, 조자룡.. 이 정도만 생각이 나고 별다른 기억은 나지 않네요. 분명 고우영의 삼국지를 정말 열심히 읽고 또 읽었는데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이 분명한 듯 합니다.

삼국지 거리에서 삼국지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그냥 "이런 거리도 있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이 인도가 없는 일반 소방도로라서 양쪽에서 차가 지나갈 경우에 벽에 바짝 붙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습니다. 또한 벽에 그려진 그림 이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삼국지라는 내용을 좀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꼼꼼하게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이곳을 일방통행로로 바꾸고, 벽 양쪽으로 사람이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만들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삼국지에 관련된 책은 많으니 아직 읽어보질 못하신 분이라면 추운 겨울날 한번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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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체험공간 투모로우시티

투모로우시티는 송도 인천대입구역 (인천지하철1호선)에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이쑤시개 같은 건물이 아니고,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이 투모로우시티 빌딩입니다. 이곳은 이번에 알게 된 빌딩인데 생각보다 다양한 기능을 하진 복합건물입니다. 환승센터도 있고, 광장도 있고, U-CITY 비전센터(전시장), 유-몰(쇼핑, 먹거리)등이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가지 행사나 전시회등을 이곳에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더군다나 환승센터까지 겸하고 있어서 교통의 편리함도 추가됩니다. 이후에 송도 신도시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찾아 갔던 날은 인천대교를 보기 위해서 그냥 겉만 둘러보는 수준이었는데 이후에 행사가 있으면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지금도 유명하겠지만 송도 신도시가 활성화되면 더욱 더 유명한 빌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찾는 방법은 이상한 깔대기 모양의 지붕을 찾으시면 됩니다. 사실, 전철역과 연결되어 있어서 찾는 방법은 한글만 읽을 줄 알만 됩니다.

※ 현재 내부 사정으로 U-City 비젼센터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인천대입구역에 내리면 이렇게 수평 에스컬레이터가 있습니다. 입구까지 얼마나 길기에 이런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어 놨나 생각했는데 전체적인 길이는 100미터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시설 하나는 최고입니다.


























환승센터 내부에는 이렇게 간이 휴게소가 있습니다. 대기하면서 물도 마실 수 있고, 찬바람을 막아줄 수 있게끔 작은 방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버스 대기 고객들은 바깥 바람을 쐴 일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환승센터 내부의 각종 버스 노선도입니다.
대부분의 공항 리무진 버스가 이곳을 통과 합니다. 말 그대로 송도에서도 전국으로 갈 수 있는 고속버스와 리무진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정말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인터페이스라든지, 메인에서 사용자가 궁금해 할만한 것들을 바로 찾아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투모로우시티에 대해서 따로 소개하는 것 보다는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는 것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투모로우시티 홈페이지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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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엠블럼을 한국관광공사에서 받았네요. 히힛.. ^^
※ 추천 출첵.. 아니, 꿈과 희망을 주는 추천, 댓글 부탁해요~ ^^*

Part2. 투모로우시티(인천대입구역)에서 버스타기

국제업무지구역에서 인천대교를 보는 것은 포기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좋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인천공항쪽으로 가다 보면 좋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우선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마침 뭔가를 하기 위해 나온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인천대입구역"쪽으로 가면 버스도 많고 이래저래 볼거리가 있다 합니다.

인천대입구는 국제업무지구역에서 두정거장 전에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천지하철을 이용해서 움직일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인지 전철역의 시설이 상당히 좋습니다.

바로 인천대입구역으로 왔습니다. 투모로우시티 쪽으로 나가면 되는 듯 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도 소개하겠지만 투모로우시티는 앞으로 송도 신도시가 어느정도 정착이 되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항에서 바로 이곳으로 와서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전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도 다 이곳에서 정차를 하더군요.

마치 아주 작은 공항 같아보였습니다.






인천대입구역 4번 출구를 통해 나오면 바로 보이는 풍경입니다. 투모로우시티 입구쪽의 모습입니다. 삐까번쩍 빌딩이 쭉쭉 올라가고 있네요.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목 부러질 듯 합니다. 사진 우측 하단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는 인천공항 가는 버스가 서질 않습니다. 주로 인천시내와 송도를 오고 가는 버스가 서는 곳입니다. 괜히 저곳에서 10여분을 서 있다가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인천공항 가는 303번 버스를 타려면 이곳으로 가야 합니다. 거대한 깔대기 같은 지붕 아래로 지나가보면 아래와 같은 곳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303번을 타고 인천공항을 가기로 했는지 지금도 미스테리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머리가 얼어버렸나 봅니다.
이곳에서 공항가는 리무진 버스와, 전국으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티켓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버스 터미널입니다. 지금은 아주~~ 한가합니다.
환승센터 내부의 모습입니다. 썰렁하죠? 버스를 타려면 저 맞은편 출구로 나가야 됩니다.
인천공항가는 303번 버스는 이곳에서 타면 됩니다. 일반 좌석버스기 때문에 별다른 티켓을 끊지 않아도 교통카드면 가능합니다. 인천투모로우센터에서 인천공항까지 303번을 이용하면 요금은 1300원+100원 이 나옵니다. 즉, 1,400원 입니다. 저도 드디어 인천대교를 볼 수 있는가 봅니다!!!인천 시내쪽으로 나가도 인천대교를 볼 수 있는데 굳이 인천공항을 왜 가는지..
드디어 버스 탑승. 일반 좌석버스와 똑같습니다. 안양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간다면 약 4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요금은 12,000원으로 상당히 비싸죠. 그렇게만 본다면 고속버스(2,100원)+전철(1,100원) +좌석버스(1,400원) = 인천공항 (4,600원) 으로 공항에 갈 수 있네요. 물론 가격이 싼 만큼 시간은 두 배 정도 더 걸립니다.
송도 시내 모습입니다. 인천대교를 건너가기 위해 살짝 송도 시내를 지나는데, 창문의 상태가 심각합니다. 최대한 줌으로 땡겨서 먼지가 안보이게 했지만 바깥 풍경을 찍는 것은 포기해야 할 듯 합니다.
오로지 인천대교를 보기 위해 303번 좌석 버스에 무작정 탑승. 분명 인천대교를 건너고 있는것 같은데 바깥이 잘 안보여서 어디가 어딘지 잘 구분이 안됩니다.
눈이 많이 왔구나. -_-
이래뵈도 지금 인천대교 꼭대기임!!!
지금 뭐하는 건지...

인천대교 보자고 안양에서 인천까지 와서..
국제업무구역 허허벌판의 눈밭에서 찬 바람 맞고,
무작정 올라탄 303번의 좌석 버스는 인천대교를 건너는구나...

더군다나.....
인천공항에는 왜 가는건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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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3패루(선린문) 자유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입니다. 1패루는 인천역 앞에 설치되어 있고, 2패루는 중부경찰서와 월미주유소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3패루는 자유공원 입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패루란 화교가 모여 사는 곳의 대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자유공원을 지나면 차이나타운을 만날 수 있습니다. TV나 영화에서 봐 오던 다른 나라의 차이나 타운과 비교를 한다면 다소 실망할만한 규모였습니다. 보통 다른 나라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한눈에 중국풍의 건물과 거리 조성으로 많은 볼거리가 있는 반면에 인천 차이나타운은 규모도 소박하고, 건물도 특색없는 일반 건물이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차이나타운이 형성된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정도의 발전이라면 어느정도 기틀은 마련이 되었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오래전 "왜 한국에는 차이나타운이 없는 것일까?" 에 대해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화교가 모이는 곳은 어김없이 차이나타운이 형성될 정도로 그들의 생존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차이나타운만 그 형성이 더디고 발전이 잘 안되고 있죠. 미국, 일본 심지어 저 멀리 브라질까지 차이나타운이 있죠.

한국은 1998년 김영삼 전대통령때 IMF를 맞이 하면서 외국 자본 유치와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차이나타운을 조성하지만 본격적으로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시기는 2000년 이후부터입니다. 화교가 들어와 정착한 세월을 봤을 때 거의 20세기 끝무렵에나 동네를 세우고, 하나 둘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국인 자본도 무섭고, 바로 옆에 살면서 우리땅에 그들의 동네를 만들어 준다는게 맘에 안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것이 정작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니까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둘러 본 경우라 하겠습니다. IMF를 몰고온 김영삼 대통령이 남겨준 선물이랄까요.

인천 차이나타운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현재는 딱히 그렇다할 특징을 나타내질 못하는 듯 합니다. 중국 여행을 다녀본 분이시라면 다소 어설퍼 보이는 모습에 실망을 하실테고, 중국 여행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파는 물건이 시중에서 많이 봐 오던 저가 중국산 제품 때문에 실망을 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물건도 좀 다양하고, 품질 좋은 고가의 중국산 제품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매년 10월경에 차이나타운에서 "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자유공원에서 차이나타운으로 내려가는 길에 만나는 3패루(선린문) 입니다.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위치에서 좌우측으로 벚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봄에 벚꽃놀이 하기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산책하기에도 좋습니다. 차이나타운을 다 둘러보시거나 그냥 자유공원에 계시고 싶으신 분들은 그냥 슬슬 산책 하시면 되겠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안에 가장 화려한 건물이랄 수 있는 건물입니다. 3패루로 올라가는 계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1패루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건물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1길(자장면거리)에서 중저가상품 거리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차량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면 훨씬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자장면거리 풍경입니다. 뭐 자장면 거리라고 여러 음식점들이 있긴 하지만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이곳의 짜장면이나 짬뽕이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냐에 대해서 여러 의견을 내 놓고 있는데, 다 비슷비슷합니다. 다소 다른점이라면 수타면을 하는 곳도 여러 곳이 있고, 한국식 짜장면이 아닌 중국식 짜장면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가장 맛있다는 리뷰를 읽고 가서 짬뽕을 시켜 먹었는데... 솔직히 우리 동네 짬뽕이 더 맛있더라고요. 이놈의 싼 입맛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네요. ^^;;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다소 위안이 되는 풍경이라면 이런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는 것이죠. 저만 그런지 몰라도 건물에 담쟁이덩쿨이나 여러 식물이 덮여 있는 건물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왠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면서 삭막한 도시의 색깔을 없애주기 때문이랄까요.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3길의 모습입니다. 쭉 나가면 3패루를 만날 수 있으며 (구)일본 제1은행을 볼 수 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차이나타운 끝쪽에서 자장면거리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길 바닥에 "학교앞 천천히'라는 글이 보입니다. 실제 중간부분 차량이 나오는 우측 부분으로 "화교 중산학교"가 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중홍상점으로 특산품을 파는 상점입니다. 여러 도자기류가 많습니다. 가격이나 그런 부분은 제가 접시나 도자기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아기자기한 제품은 많더군요.
인천 차이나타운 더공
아직은 작은 마을이고, 다소 정리가 안된 듯한 느낌을 받지만 점점 발전하는 차이나타운이 되길 바랍니다.

※촬영 : 2010년 12월5일 1박2일 은지원


여러 필요한 정보는 아래에서 얻으시길 바랍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홈페이지
인천 차이나타운 볼거리 안내도
인천 차이나타운 먹거리 안내도
인천 차이나타운 살거리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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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더공
처음 자유공원에 갔던 기억은 상당히 오래전 일이라 까마득합니다. 아마도 영종도를 들어가기 위해 배 타러 갔다가 잠깐 들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한 여름에 책에서나 봐 오던 <맥아더 장군> 동상을 보고 무척이나 신기했었죠.

물론 그 당시 배 타고 들어갔던 영종도에서는 때아닌 폭우로 비에 홀딱 젖어 싸가지고 갔던 캠핑 장비며, 요리 재료가 전부 비에 젖어 생쌀을 씹어 먹었습니다. 텐트 안에서 쫄쫄 굶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1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묶음으로 기억이 나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영종도가 이제는 아시아의 대표 공항으로 변하고 차량으로도 쉽게 갈 수가 있으니, 많이 먹지 않은 나이가 쉽지 않은 나이처럼 느껴집니다.

# 자유공원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더공
어쨌든 이야기가 잠시 밖으로 샜지만 오랫만에 다시 찾은 자유공원은 그 옛날의 기억을 다시금 꺼낼 수 있었습니다. 1호선 인천역이나 동인천역에서 내려 안내 팻말을 따라 올라가면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도보 코스로는 동인천역에서 내려 자유공원을 지나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코스가 좋습니다.


가깝기로는 1호선 종점인 인천역이 가깝지만 차이나 타운을 지나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 코스입니다. 동인천역 2번 출구로 나와서 10분정도 올라가면 금방 자유공원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높이는 해발 69미터로 부담없는 정도라 숨이 차거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 둘러보기
잠시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맥아더 장군> 동상입니다. 1957년 9월15일에 완공 했다고 하니 상당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동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관리가 잘 되어서 그런지 만든지는 얼마 안되어 보입니다. 한손에는 망원경을 들고 있고, 한손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모습입니다. 딱 봐도 관리자의 전형적인 자세입니다.

이곳은 얼마전 보수와 진보 사이에 많은 충돌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한쪽에서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한쪽에서는 노근리 양민 학살등의 전범이라는 이유에서죠. 개인적인 견해로는 결과가 어떻든간에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는게 생각입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철거는 반대합니다. 요즘 한창 전쟁 드라마가 인기를 몰고 있는데 다시금 한국전쟁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유공원 안에는 꼭 봐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있는데 바로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비입니다. 사실 안내판의 글을 읽기 전에는 <기념비>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나의 조형물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1982년에 한국과 미국의 통상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라고 합니다. 길죽한 삼각형이 날카롭게 모여 있는 형국입니다. 마치 수퍼맨 북국 집의 모습입니다.

# 역사
1888년 응봉산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탑골공원(1879)보다 9년 먼저 생겨난 공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투어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더공
구름한점 없는 파란 하늘과 맥아더장군 동상. 1957년에 조성된 것으로 안보이는 모습입니다. 관리가 상당히 잘 되고 있으며, 상당히 깨끗합니다.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더공
많은 분들이 사시사철 이곳에 와서 추모를 한다고 합니다. 매년 행사도 치뤄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인천 자유공원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더공
<맥아더장군>동상을 지나 내려오면 바로 이러한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 입구가 보입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 봐서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비가 오거나 낙옆이 있을 경우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조심하세요)
인천 자유공원 더공
1982 년에 세워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입니다.
인천 자유공원 더공
그 안에는 이런 조형물도 있습니다. 두개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조형물입니다.
인천 자유공원 더공
조용히 쉴 수 있는 이런 공간도 있고 상당히 잘 만들어 놓은 것 같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조형물을 만들면 그 주변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데 전체적으로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천 자유공원 더공
바로 아래에는 간단한 운동과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망이 상당히 좋더군요. 바로 앞에 서해바다가 보이고 멀리 영종도도 보입니다.
인천 자유공원 더공
좀 땡겨보니 영종도가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이 주변에 살면 매일같이 올라와서 산책을 할텐데.. 이러한 공원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참 복받으신 분들입니다. 저 같은 여행객은 십수년만에 한번씩 찾아와야 되는 곳인데말입니다.
인천 자유공원 더공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수퍼맨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북극에서 수퍼맨의 집이 생성되는 모습을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인천 자유공원 더공
바로 옆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수령이 몇년쯤이나 되었을라나. 높이가 엄청나더라고요.
인천 자유공원 더공
중앙에 작은 인물 둘이 보이죠? 조형물이 상당히 거대합니다.
인천 자유공원 더공
살짝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미국에도 과연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죠. 이리저리 웹 서치를 해 봤는데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는 한국에만 있는 반쪽짜리 기념비 같습니다.
인천 자유공원 더공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좋은 것은 "있어야 할 것이 그 자리에 있는것"을 볼 때입니다. 말 많은 맥아더 장군 동상이 그 자리에 있어서 좋았고, 그 예전 기억을 되살려 준 것이 좋았고, 바다를 볼 수 있어 좋았고, 다음에 가도 그 자리에 똑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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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시화호에서 바라본 오이도와 송도 신도시. 꿈의 신도시가 될지 절망의 신도시가 될지... 스모그가 끼어서 누렇게 보이고 자글자글 노이즈도 많아 보이네요. 같은날 찍은 영흥도와 차이가 심하게 납니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던 얼마전 친구들과 모임을 어디서 할까 하다가 가까운 영흥도에서 팬션을 한다는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물론 그 팬션은 그 친구 것이 아니고 아버지 것이지요. 자가용으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생각보다 복잡하더군요.

가는 차편이 마땅치 않아 대중교통을 알아보니 <인천>-<오이도>-<대부도>-<선재도>-<영흥도>로 들어가는 교통편이 있더군요. 혹시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실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도, 선재도를 거쳐서 들어갑니다.

790번 버스 옹진군청 - 숭의로터리 - 제물포역 - 주안사거리 - 석바위 - 시청후문 - 만수동(BYC) - 건설교육원 - 남동구청 - 소래포구 입구 - 월곶신도시 - 오이도역 - 모아/영남/동보@ - 방아머리 선착장 - 북동삼거리 - 대부종고 - 종현동 - 선재도 - 영흥도


즉,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에 무조건 오이도 역(4호선)으로 갑니다. 오이도 역에서 내려 길을 건너 버스를 타면 영흥도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1시간 10분 ~ 1시간30분 정도면 도착하실 수 있습니다.

대부도는 여러번 가봤는데 영흥도 안까지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인듯 싶습니다. 시화호를 지나 대부도를 가로 질러 서해로 서해로 계속 가다보니 어느새 영흥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섬 구경좀 해보자 해서 차로 한바퀴 도는데 섬이 작아서 그런지 얼마 안걸리더군요.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영흥도와 선재도를 잇는 영흥대교.

길이 1,250m, 너비 9.5m, 왕복 2차선으로 1997년 8월 착공하여 2001년 11월 준공하였다. 국내기술로 건설된 최초의 해상 사장교로 한국남동발전(주)이 영흥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함께 놓았다. 상부공은 대블럭 가설공법을 사용하였으며, 3경간 강사장교 형식으로 유선형 강상판형, A형 강재주탑과 PSC(Parallel Strand Cable)로 이루어져 있다. 하부공은 현장타설말뚝과 우물통기초로 시공되었다. 이 다리로 인해 그 동안 인천과 영흥도를 오가던 1시간 거리의 뱃길이 육로로 바뀌었고, 이미 2000년 11월 완공된 선재대교로 이어진 인천-대부도-선재도에 영흥도가 추가되어 모두 육지와 연결되었다. 서울과의 근접성으로 새로운 관광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 다음 백과 -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2001년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들어섰다는 영흥대교입니다. 위에 설명을 해 놓았지만 웅장함 보다는 아담하고 일몰이 멋져서 사진 출사를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 건너 선재도에서 일볼 시간에 맞춰 사진을 찍으면 아주 좋은 장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영흥대교 바로 뒤에는 영흥수협도 있고, 그 뒤에는 직판장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회 한접시와 매운탕을 먹고 영흥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한시간에 한번씩 운행하는 유람선도 탈 수 있습니다. 어른 10,000원 어린이 5,000원 입니다.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 걸리고 화력발전소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코스입니다. 저는 바로 갈 곳이 있어서 유람선은 패스~

지금은 물이 빠진 시간이라 앞에 보이는 거대한 성벽 같아 보이지만 물이 들어차면 밝은 부분까지 물이 찰랑대더라고요.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팬션에 짐도 안 놓고 바로 장경리 해수욕장으로 달려 왔습니다. 여느 해수욕장처럼 음식점이 있고, 모래가 깔려 있고 수퍼가 있고, 모터 바이크도 있고 합니다. 본격 피서철을 대비해서 여러 시설물 공사와 도로 정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태양이 뜨겁게 내리 쬐던 장경리 해수욕장의 모습입니다. 학생들의 MT로 북적였습니다.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물 시간을 잘못 잡은 듯 싶습니다. 물놀이는 고사하고 바닷물 볼라믄 저~~~기 까지 걸어 나가야 하는 황당한 시추에이션~
오늘 물이 들어오는 시간은 밤이라고 합니다.

진짜 문제는 영흥도의 여러 해수욕장은 모래가 끊임없이 유실된다는데 있습니다. 마침 찾아갔던 날도 모래를 끊임없이 부어대고 있었는데 앞에 있는 방파제 때문인지,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곳의 모래는 이곳에 있는 모래가 아닙니다. 실제 이곳의 매력은 갯벌 체험 입니다.

물이 지금처럼 빠지고 나면 뻘이 나오는데 그 뻘속에 있는 조개며, 여러 해양 생물들을 직접 잡을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밤에 나와보니 많은 분들이 랜턴을 들고 멀리까지 나가서 뭔가를 잡고 계시더라고요.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오랫만에 짠물에 몸 좀 담가볼라 했는데 물 건너간 듯 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섬은 무의도입니다. 인천공항을 지나 배타고 살짝 들어가면 날 수 있는 섬입니다. 이렇게 가깝게 보이다니 다소 놀랍습니다. 실제로 왼편에 살짝 보이는 부분으로 가면 인천 공항으로 비행기가 내리고 뜨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바다를 가로질러 바라보는 인천공항의 불빛은 참 잊지 못할 광경이었습니다.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장경리 해수욕장에는 물놀이 인파보다는 MT, 자전거 동호인등 레크레이션을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낮시간에는 자전거, 모터바이크 등을 타며 시간을 보내더군요.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바닷가에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ATV(사발이)로 불리우는 4륜 오토바이.
시끄럽고!! 위험하고!!! 기름냄새 심하게 나고!!!
그래도 제 친구놈들은 신나게 타더군요. 참 비싼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가 봅니다. 아마도 이거 싫어하는 사람은 저 뿐인듯..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십리포 해수욕장의 모습입니다. 역시나 모래 준설 작업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저렇게 쓸려 나가는 모래를 다시 퍼다 붓는다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닐테고... 관광객 자원이 크긴 하지만 밑빠진 독에 모래붓기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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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모터보트는.. 관광객이 사람이 없네요. 저걸 언제 한번 타봐야 할텐데.. ^^
인천 l 옹진군 l 장경리 해수욕장 l 더공
하룻밤 묵었던 영흥도 산내들 팬션입니다. 해변과는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한적하게 조용히 별도 바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친구놈이 가장 아낀다는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한컷 찍었습니다. 제일 비싸게 주고 사온 나무라고 그 아래서 고기도 못 구어먹게 하더라고요. 짜식.. 친구놈이 돌맹이 하나, 나무 한그루 한그루 직접 가져다 놓고 심었다니 정성이 갸륵합니다. 팬션에 바람이 얼마나 잘들어오는지 시설은 BEST는 아니었지만 한적하고 조용하게 고기 구어 먹고, 시원하게 자고 온 듯 싶습니다.

영흥도는 둘러본 곳도 많은데 특별히 기억나는 곳은 없는 듯 합니다. 특히 해변가의 대형 숙박 시설 주변은 너무너무 시끌벅적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더군요. 술 취해 갯벌을 내달리던 대학생들이 생각 나고, 고기 굽는 연기가 안개처럼 뻘을 뒤덮던 것이 생각나고, 시끌벅적하던 해변가가 생각 납니다. 학생 여러분~ 젊었을 때 술 적당히 드셔야 나이 들어서 고생 안합니다~


아이들과 같이 가실 경우 영흥도는 물 때를 잘 맞춰야 합니다. 낮 시간에 물이 차고 저녁부터 물이 빠지는 시기가 제일 좋을듯 합니다. 낮에는 물놀이 하고, 저녁에는 랜턴 하나 들고 갯벌에 나가 갯벌 체험을 하면 아주 좋은 하루를 보낼 듯 싶습니다.

※ 가족단위라면 해안가 숙박은 될 수 있으면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단체 모임이 많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 아이들이 있다면 화력발전소 옆에 에너지파크에 필히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어른들 보다는 얘들은 정말 좋아하더군요.


HTTP://REDTOP.TISTORY.COM   ⓒ 더공  


용흥궁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20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
조선 철종(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하였던 잠저(潛邸)로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1854)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하였다. 좁은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낭채를 두고 있어 창덕궁 낙선재와 같이 소박한 부위기를 풍긴다. 궁 안에는 철종 잠저임을 기록한 비석과 비각이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내전1동, 외전 1동, 별전 1동 등이다.



<고려궁지>에 가는 도중에 보니 곳곳에 문화재가 숨어 있다. 말 그대로 "숨어 있다"가 맞는 말 입니다. 지도만 보고 가다가 제대로 된 안내 표지판도 없는데 <용흥궁>이 주택가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큰 길가에서 <용흥궁>이라는 글자만 보고 들어가면 그 다음은 숨바꼭질 하듯이 <용흥궁>을 찾아가야 됩니다.

큰 길에서 60m정도 들어가다가 골목에서 위쪽(왼쪽)으로 보면 <용흥궁>의 입구를 볼 수 있습니다. 별다른 생각없이 들어가다간 골목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입구에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위로 올라가면 그 당시의 골목을 볼 수 있다.
<용흥궁> 외부 입구의 모습이다. 멀리 사람이 지나가고 있는데 실제로 앞만 보고 걷다보면 <용흥궁>을 지나칠 수 있다.
가까이서 보니 비석 하나는 주차 실수로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비뚤게 세워져 있다. 인천시에서는 저런 작은 비석 하나도 똑바로 세울 돈이 없는 것일까.
내부에 들어서 보면 사랑채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고, 그 아래에는 자전거가 있다.
<사랑채> 작은 규모와 아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아래에는 관리인의 것으로 보이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사랑채> 뒤에는 생뚱맞게 공용 화장실이 있다.
내려다 본 <용흥궁>의 전경. <용흥궁> 주변으로 많은 주택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예전에도 저렇게 <용흥궁>을 둘러싸고 많은 집들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용흥궁>주변으로 점점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점점 높아져 가는데 <용흥궁>만 너무 늦게 보존되어 가는 것처럼 보여진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 "이곳은 왜 이런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주변 정리도 좀 하고, 자전거나 오토바이, 차량에 의해서 비석이 훼손되지 않게 보존했으면 좋겠다.


ⓒ 더공



성공회 강화성당

사적 제424호/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22
본 성당은 고요한(Charl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 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 (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 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안내판 내용-
 

 <고려궁지>를 가기전 <용흥궁>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다. <용흥궁>에서 위로 통하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바로 <성공회 강화성당> 입구가 바로 나온다. 또는 큰길 가에서 <고려궁지> 가기전 초등학교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왠 사찰이 여기 있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앞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이 건물이 아주 오래된 성당임을 알 수 있었다. 절과 비슷한 사찰이라니 이런 성당이 있는지 처음 알게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날때의 흥분감이 밀려온다. 계획에 없었던 강화성당을 한번 둘러보기로한다.
 
※ 성당 외부는 사진 촬영이 언제든 가능하지만, 성당 내부는 주말 미사시간 이외에는 내부 개방이 안되어 있으므로 방문시 전화 필요하다. 031-934-6171





대문만 본다면 이 건물이 사찰인지, 어느 양반집 집인지 알 수 없다. 대문에는 커다란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다. 살짝 열려진 대문 사이로 들어가본다.



정문을 바로 지나면 대문이 없는 중문을 볼 수 있다. 중문이면서 동시에 종각이라니.. 놀랍다. 중문 왼쪽은 종루, 오른쪽은 비어 있는 공간이다.



종루에는 종이 있는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종의 윗부분에는 십자가가 보이고, 옆면에는 기도문이 적혀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 앞모습. 건물 하나에 여러가지 건축 양식이 다 들어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 전통 양식과 근대 양식의 모습이 한데 공존되어 묘한 느낌을 받는다. 대문에 그려진 태극무늬와 처마에는 단청을 입혀서 불교 사찰 모습을 하고 있다. 목재는 백두산에서 베어온 나무로 기둥을 세웠고, 돌은 강화도 현지에서 조달했다고 한다. 한식으로 지어진 최초의 성당은 이렇게 지어졌다.




당시에 어떤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 추춧돌만 남아있다. 8개에서 하나가 빠진 모양이다. 작은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어떤 자료에도 이것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내 마음대로 상상해본다.



옆면에서 바라보면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옆의 건물 칸수와 지붕을 본다면 당시로써도 상당히 큰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당 뒷편에 위치한 사제관의 모습. ㄷ자 형태의 모습으로 되어 있다.



성당 오른편에 자리한 기념비.
대영국알마슈녀긔념비(대 영국 알마 수녀 기념비)



성당 내부의 모습
외관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달리 성당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요즘에도 미사를 한다고 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역시 외부의 큰 모습과는 달리 내부의 모습은 다소 협소해 보인다. 그 안에는 2층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찾아간 날은 미사가 없는 날이어서 내부 촬영을 못했다. 그냥 밖에서 창문 틈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단체출사가 있다면 일요일 미사 시간에 맞춰서 가거나, 개방 시간에 대해서 전화를 먼저 한 후에 가는 것을 권한다. 전화번호는 위에 적어 놓았다.




성당 바깥의 모양은 교태전 뒷편의 아미산의 굴뚝과 같은 모양으로 조형을 해 놓았다.
<용흥궁>에 비해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외부의 여러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다.




ⓒ 더공



고려궁지

석모도에 갔다가 다시 강화도로 들어온 후에 시간이 남았다. 늦은 점심을 주변에서 먹고, 식당 주인에게 가까운 곳에 가볼만한 곳이 있냐고 묻자 <고려궁지>를 추천해 주십니다. 하시는 말씀은 "그래도 고려때 왕이 살았던 곳(?)이라는데 한번 가 보세요" 하신다.


강화시내버스 터미널과 가까운 곳에 있는 <강화고려궁지>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터미널과 거리는 약 1.4km정도 거리가 됩니다. 버스를 타기엔 애매하고, 걷자니 시간이 아깝지만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걸으면서 강화읍내도 둘러보면서 천천히 걷다보니 많은 등산복 차림의 여행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착해서 꼼꼼히 살펴 보니 이곳은 고려때 왕이 살았던 곳이라는 것 보다는 프랑스인들이 우리의 소중한 외규장각 도서를 빼앗아 간 곳으로 기억을 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현재는 대여 형식으로 조금씩 들어와 있지만 역시나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 외규장각을 돌려 받는 것이 시급할 것입니다.




문화재와 도시발전


강화는 문화재가 아주 많다. 조금만 걷다보면 유적지가 나온다. 유적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겠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강화도는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연계되어서 도시 인프라와 더불어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개발과 문화재 보호 사이에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문화관광을 위해서 연계되는 버스나 공공 시설이 너무나 없다는 것이겠다.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버스 노선도 없고, 제대로 된 안내 홍보물도 없다. <고려궁지> 또한 안내도에 조그맣게 <고려궁지>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스스로 찾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놀고 먹을 수 있는 해수욕장 주변 안내나, 특산품 안내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관광 인프라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강화도는 두가지를 모두 갖춘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발전의 균형이 다소 아쉽다.





강화고려궁지 (江華高麗宮址) 

사적 제 133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정리 743-1. 

고려시대 궁권이 있던 곳이다.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1232년 (고려 고종 19)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하여 환도(1270)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왕이 행차 시 머무는 행궁을 건립하였고,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정, 만녕전 등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1964년 이곳은 사적 제 133호 <고려궁지>로 지정되었고,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 강화동종 등만 남아 있다. - 안내판 참조 - 


This place is site of the royal palace where the Goryeo people had resisted vigorously against Mongolian invasion for 39 years. On account of strong recommendation of generals, King Gojong moved his capital to Ganghwado with the advantage of natural and strategical point of view. Upon withdrawal of Mongolian forces, the capital was moved back to Gaeseong after the peace treaty with the Mongol concluded. Ganghwado castle was once conquered by the force of Ch'ing dynasty of China during Byeongja-Horan war in 1637.


In the Joseon dynasty, king's court constructed the consolidated palace including many subsidiaries such as Waegyujanggak national library, Haenggung king's family's residence and etc. on the very site of previously existed Goryeo palace. These building were burnt down by the French navy during Byeongin yangyo conflict in 1866. Nowadays, there remains only Dongheon Main office and Ibangcheong Administration office.


This place and building were restored to its origin and became Korean people's historical remembrance where people are reminded of the historical lessons in terms of resistance and patriotism against foreign aggression. - http://english.ganghwa.incheon.kr -



강화 유수부 동헌

유형문화재 제 25호.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다. 1638년(인조 16) 유수 김신국이 수리하였고, 1769년 영조 45)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이라 하였다. 명위헌(明威觀) 이라는 현판은 영조 대 명필인 백하 윤순(尹淳)이 쓴 것이다.

건물 구조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익공계 팔작지붕 겹처마 단층집으로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 사업으로 정비되었다. 오늘날의 군청과 같은 관아 건물이다.

다소 웃긴 인형들이 서 있다. 모양을 보면 저런 식으로 앉고 서고 하면서 업무를 봤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몸에 맞지 않은 의상을 걸친 마네킹의 무표정한 모습은 웃음이 절로 난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는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갔다.

프랑스인들은 당시 191종 297권을 가져갔다고 현재 전해지고 있으나, 몇 권을 더 가져갔는지는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훔쳐간 것을 제외하고 외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던 1024종 6130권의 책과 부속 건물 등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1993년 고속철도 사업을 따내기 위해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 1권을 들고와서는 "돌려 줄 수도 있다"고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다. 결국 고속철도 사업은 프랑스에 넘어갔지만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서기가 반대한다는 이상한 이유를 들어 들고 왔던 외규장각 도서 이외에는 단 한권도 반환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프랑스에서 120년간이나 보관한 프랑스 국민의 재산이므로 돌려 줄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만 우리에게 "영구 임대" 할 수 없기 때문에 임대의 댓가로 이에 상응하는 문화재를 프랑스에 제공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것을 우리가 달라는데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바라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영국 같이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의 특징이 그 나라의 문화재를 가져다가 마치 자기들것인양 전시하고 자신들 것처럼 자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문화재 반환 요구를 계속해야 한다. 독일은 프랑스 침략시 약탈했던 문화재를 거의 다 돌려 주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우리가 훔쳐온 것은 맞지만 오랫동안 보관한 것이니까 우리것이다. 이걸 가지려면 다른걸 가져와라"라는 다소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문화재는 기어코 찾아 오면서 자신들이 약탈해온 물건은 돌려주지 않는 프랑스.

우리꺼 내놔라 이놈들아!!

Oegyujanggak (Royal Library)

After a series ol wars. Korea recognized the need to safeguard its treasures, as well as valuable information about ils kingdoms and royal families. As a result. Oegyujanggak was built in 1782. the sixth year of King Jeongjo's reign. The rayal family used it to store records of major events. as well as precious items.

Unfortunately. Oegyujanggak and other buildings were destroyed during the French Disturbance of 1866. when France attacked Korea. Many valuable artifacts and records were stolen. and these remain in France's possession.

Following excavation work that lasted from 1995 to 2001. Oegyujanggak was finally restored in 2003. The Korean government continues to pressure France to return the stolen historicaI manuscripts.







강화동종

강화유수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그 후 1711년(숙종 37) 유수 민진원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것이다. 높이 198cm 입지름 138cm로 조선후기 동종으로는 큰 규모이다. 몸퉁 중앙에는 굵은 줄이 둘러있고, 그 아래에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물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는데 사용되었다.

종각은 당시의 강화산성 남문 주변인 김상용 순절비 자리에 있었던 것을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 때 고려궁지로 이전되었다. 1999년 10월 종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타종하지 못하게 되자 강화동종을 복제하여 설치하고 원래의 종은 강화 역사관으로 옮겨 보관 전시하고 있다.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유수부의 행정 실무자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1654년 (효종5) 유수 정세규가 세웠고, 1783년 (정조7) 유수 김노진이 내부를 수리하였다. 1915년 이후 등기소로 사용되다가 1972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 으로 정비되었다. 구조는 <ㄷ>자형 단층 기와집으로 방이 8칸, 마루가 12칸. 부엌이 1칸으로 모두 21칸 규모이다.

Ganghwa Yusubu Ibangcheong (Old Government Building)

This building was for lower - ranking administrative officials in Ganghwa. Ganghwa governor Jeong se - gyu oversaw its construction in 1634. the th year of King Hyniong's reign and his successor Kim No-jin had the interior remodeled in 1783. the 7th year of King Jungjo's reign.

The single-story and tile- roofed building consists of a main room. a large reception area and a small kitchen. ·ln total. the building covers 21kan in width with the main room measuring s kan·the reception area l 2kan and the kitchen 1 kan. (A kan is a traditional unit of measurement that refers to the space between two columes.)

Ibangcheong Wrved as a registration office circa 1915. and in 1977 it was restored as one of he most important historic buildings in Ganghwa-gun. It was designated a Tan gible cultural property in 1972.



















다른 이야기

강화도 영문 홈페이지를 보면 한글 홈페이지만큼 상세하게 적혀있지 않다. 시설물이나 문화재에 대해서 찾아가 보기도 힘들다. 온통 플레시로 도배되어 있어서 제대로 읽기도 힘들다. 사용자 접근을 쉽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뭐 외국인이 얼마나 볼지는 몰라도 단 한명이 들어와서 보더라도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이곳은 참으로 난해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고려궁지는 39년간 왕과 그에 따른 신하들, 백성들이 살던 곳이었다. 지금의 담장 저 밖까지 모두 궁궐 터였던 것이다. 1270년 스스로 파괴할 때 까지 무려 39년간 사용된 곳이다. 그런 곳이 지금은 건물 몇 채 밖에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니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다시 시간이 흘러 조선시대에 행궁, 전각, 강화유수부, 규장각 등을 세웠지만 또다시 모두 허물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모두 알고 있는 외규장각 책은 이곳에서 프랑스인들이 수많은 조선인을 죽이고 약탈해간 것도 모자라 모두 불태워져버린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아직도 외규장각 반환을 하지 않고 있다. 약탈된 우리 역사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 것이다.

참고자료
- 강화고려궁지 안내판
- 백과사전
- 강화군 홈페이지 (영문홈페이지)


http://redtop.tistory.com ⓒ 더공



<보문사> 옆에는 눈썹바위 바로 아래에 있는 <마애관음좌상/마애석불좌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계단 수는 409개인데 얼마전부터 시작한 운동 덕분인지 한번도 안쉬고 올라갈 수 있었다. <보문사>에 오기전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에는 "허벅지가 터질듯한 고통", "공포의 계단"이니 뭐니 하는 말이 왜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계단 숫자도 적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가 않았다.

무릎이 안좋아 시작한 걷기 운동이 빛을 발하는구나. 어쨌든 계단 올라갈 때는 빨리 올라간다고 다 해결되는게 아니다. 그냥 천천히 리듬을 타면서 자신의 속도대로만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끝에 다다를 수 있다. 속으로 계단을 세면서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다 보면 아무 생각도 안나고 힘든 것도 줄어든다.

올라가면서 바라본 서해는 정말 장관이다. 석모도에서도 가장 좋은 곳에 <마애관음좌상>을 모셔놨구나. 이런 곳에 있으면 종교가 있든 없든 저절로 마음이 정화 될 것 같다. 마음 같아서 그냥 텐트 치고 몇 일 있다가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다시 내려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계단을 오르며 바라본 보문사 석실과 삼선각의 모습이다. 주변에 있는 나무를 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함이 아니라 얼마전에 있었던 <낙산사> 화재를 교훈 삼아 주변 정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문사 주변의 나무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만 남겨 놓고, 작은 나무와 오밀 조밀하게 모여 있던 나무를 솎아내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라기 위해서 올라가고, 구경을 하기 위해서 올라가고, 기타 다른것들을 위해서 올라가지만 결국 내려 올 수 밖에 없는 계단. 아무리 빌고 또 바란다 하더라도 올라갔으면 내려올 길을 걱정하고 준비해야 하는게 사람 사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보문사 아래에서 팔던 수건에 쓰여 있던 글이 생각난다.

< 말 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해서는 안될 때 말하지 말라.
말해야 할 때 침묵해도 안되고, 말해서는 안될 때 말해서도 안된다.
입아, 입아 그렇게만 하여라.>




땀도 안났는데 눈썹바위에 벌써 다 왔다. 눈썹바위 아래 작은 휴게소도 보이고, 파란 하늘도 나를 반겨준다. 정말 아주 파란 물감을 하늘에다 풀어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색깔이다. 위에 있는 휴게소에서는 먹는 것을 파는게 아니라 기도에 사용되는 것을 팔고 있다. 휴게소 바로 아래에 자판기 설치되어 있어서 음료를 먹을 수 있다.



계단이 많긴한데 정말 쉽게 올라온 것처럼 느껴진다. 내 허벅지가 튼튼해졌나??







마애관음좌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전팬스가 설치된 좁은 바윗길로 가야된다. 까불고 놀지만 않는다면 전혀 위험한 길은 아니다.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스님과 더불어 이곳에 새긴것이라고 한다.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m에 달한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9호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 이렇게 되어 있다. 5m정도 된다. 그냥 조심조심 걸으면 전혀 문제될 만한 길이 아니다. 무서우면 옆에 있는 끈을 잡으면 된다. 사실 어른걸음으로 몇걸음 걸으면 되는 거리라 그냥 슝~




화엄회상필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
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
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

뭔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



※ <마애석불좌상> 과 <마애관음좌상> 두 가지 명칭으로 쓰이는데 현재로서는 두 가지 전부 맞는 표현이다. 안내판이나 인천 광역시에서는 <마애석불좌상>이라고 쓰고 있다. 한가지로 통일해서 불렀으면 좋겠다.






<보문사> 경내 모습. 저 멀리 버스터미널의 지붕이 보이고, 작은 음식점도 보인다. 그 뒤로 논과 밭이 보인다. 정말 한적하고 조용한 서해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래에서 보면 아늑한 공간인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아슬아슬 걸쳐 있는 바위가 신기하기도 하고 긴장감도 느껴지게 만든다.



휴게실에서 만난 고양이. 나한테 똥 싸다 걸린 후로 한참을 앞에서 앉아서 뭔가를 요구하는 듯이 앉아 있었다. "나 똥싸는거 봤어?" 이런 표정으로 앉아 있던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안양에서 강화 석모도 보문사 가기.

안양 왕궁예식장(킹덤) 건너편에서 3번 강화행 첫차 (6시)를 타고 한참을 달린 후에 도착한 곳은 <강화 버스터미널>. 좀 일찍 도착하면 "일출을 찍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정말 꼬박 두 시간을 달린 후에야 <강화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에서 약간의 짬을 이용해 아침을 먹은 후, <외포리>행 시내 버스를 타고 다시 시골길을 30분을 더 갔다. 시골길이라지만 오밀조밀한 높이의 산들과 논과 밭 사이로 난 도로를 지납니다.

<외포리>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9시 30분 배가 있네요. 건너가는 시간은 15분 정도 걸리는데 아침 찬 바람이 거셉니다. <석모도>에 도착하니 <보문사>까지 가는 버스는 10시15분에 있어서 한참을 추위에 떨어야했습니다. 어디 가게에 들어가서 있기도 어색한 시간이고.. <석모도> 선착장에서 <보문사>까지는 20분을 더 들어가야 합니다.

대충 시간은 "오래 걸릴 것 같다."라고 생각 했지만 막상 와보니 시간이 만만치 않급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보문사>까지 무려 4시간30분이 걸렸습니다. 부산까지 가는 시간이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오고 싶지만 걸린 시간을 보면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하는 먼 거리라서.. 포스팅을 하는 지금 이 순간 그곳에 갔다 온 하루가 꿈결같이 느껴집니다.

안양에서 석모도 <보문사>까지 가는 시간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안양 왕궁 예식장 거너편 3번 버스
06시00분 - 안양 출발
08시00분 - 강화도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
08시35분 - 외포리행 버스 탑승
09시00분 - 외포리 도착
09시30분 - 석모도행 배 탑승
09시45분 - 석모도 도착
10시15분 - 보문사 버스 탑승
10시35분 - 보문사 도착
<외포리> 선착장. 앞에 보이는 곳이 <석모도>의 모습. 생각보다 큰 섬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하긴 버스로도 20분을 달려야 한다니 대충 크기는 예상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 큰 섬이었습니다. 
역시 배에서는 새우깡 주기. 개인적으로 사람이 먹는 음식을 짐승에게 그냥 주는게 마땅치 않지만 구경하는 건 좋아합니다. 갈매기도 물고기 잡아 먹는 것 보다는 새우깡 받아 먹는데 더 큰 재주가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차가운 바닷바람을 피해 들어온 배 안. 딱 저 자리가 따끈따끈하니 좋습니다.
<보문사>행 시내버스.
아직 출발 시간이 안됐다고 시동 끄고, 문 활짝 열어 놓고 나가시는 기사님 센스 짱. -_-;;
<석모도> 선착장의 본래 이름이 <석포리>. 보문사행 버스 시간이 적혀 있습니다. 한시간에 1대가 운행됩니다. 시간에 맞춰 딱 출발하는게 아니고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서 출발하기 때문에 10분~15분. 이렇게 시간이 적혀 있습니다.

갈매기 사진은 원 없이 찍었습니다. ⓒ 더공



ⓒ 더공



소래포구 : 인천 남동구 논현동(論峴洞)에 있는 어항.
소래 포구 / 인천 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111번지.


서울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 찾는 당일 코스 관광지로 정착하였다. 이곳 어시장에서는 그날그날 어획한 선도(鮮度)가 높은 생선을 공급하고 있다. 어종은 새우 ·꽃게 ·민어 ·홍어 ·농어 ·광어 ·낙지 등 다양하다. 서해안고속도로 ·인천시 외곽순환도로 등이 연결된다. 옛 정취를 자아내던 수인선(水仁線) 협궤철도는 철거되었다.

안양 왕궁예식장(킹덤예식장)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소래포구까지는 한번에 갈 수가 있다. 32번 버스를 타면 종점인 소래포구 앞까지 데려다 준다. 자가용 이용이라면 네비게이션 찍고 가는 것이 편하고 버스를 이용할 것이라면 알아서 찾아가기 바란다. 소래포구 찾아가는 방법은 인천시나 남동구청 홈페이지 들어가 보아도 제대로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오후 두 시. 32번 시내버스를 타고 소래포구를 향해 갔다. 버스 안에는 아주머니 세분이 나와 같은 곳으로 가고 있었는데 각자 저마다 큰 통을 하나씩 앞에 놓고 가신다. 영락없는 시골 버스 풍경이다. 대화하시는 걸 살짝 엿들으니 소래포구에 새우 사러 가신다면서 수다를 하신다. 정확하게 한시간 후에 도착한 곳은 소래포구. 목감을 지나고서도 한참을 달린 후였다.

월곶에 도착하자마자 바다 내음이 버스안을 휘감더니 소래포구에 도착하자 버스는 순식간에 바닷가 특유의 냄사가 가득해진다. 바다가 가깝고 어시장이 바로 옆에 있다는 증거다. 버스에서 내리자 엄청난 인파가 저쪽에서 울렁울렁거린다. 새우젓 철이라 그런지 아주 많은 사람이 소래포구를 찾아와서 장을 보고 있었다.

소래포구 옛 공터에는 현재 작은 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오랫동안 녹슨 철문이 자리 하고 있었는데 그 문 건너편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물론 예전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주변에 엄청난 아파트 단지가 생겨났기 때문에 오히려 도심속의 낡은 재래시장 같은 느낌을 풍긴다. 소래 시장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큰 해산물 시장을 생각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지만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는 규모가 큰 해산물 시장이고 지리적 여건이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해산물이 필요한 사람은 장을 보러 오면 되고, 사진기 하나 들고 구경오는 사람들이라면 소래포구에서 사진 찍고, 식사하고, 주변에 옛 염전과 넓은 억새밭이 장관인 해양생태공원, 빨간 등대와 낙조가 인상적인 오이도까지 한바퀴 둘러본다면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다.

ⓒ 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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