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의 동문 창룡문(蒼龍門)

국도 제 43호가 지나가는데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 동쪽문 입니다. 창룡문 건너편에 연무대와 국궁체험장, 동장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원의 중요 도로인만큼 상당히 많은 교통량이 있는 곳입니다. 수원화성의 여러문 (팔달문,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 화홍문) 중에서 가장 밋밋한 모양을 하고 있는 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성곽과 거의 일자로 만들어져 있고, 주변 시야가 탁 트여서 더욱 외소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창룡문은 1794년 정조대왕의 명으로 수원화성 성곽을 만들 때 같이 만들기 시작해 1795(정조19년) 완공된 건물입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때 주변의 동북공심돈과 같이 보존을 못한 상태에서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문루와 홍예가 사라졌집니다. 문루와 홍예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거의 완파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후 1975년 동북공심돈을 비롯한 수원화성의 여러 문화재 복원 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아랫쪽의 문은 홍예문으로 불리우고 위쪽 건물은 단층문루를 세워 놓았습니다. 위에서 창룡문은 수원화성의 다른 문처럼 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문 앞에 둥글게 반달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셨을텐데, 그것을 옹성이라고 부릅니다. 창룡문의 동옹성은 높이 2.9m 둘레 17.2m로 총안이 14개가 뚫려 있습니다.

창룡문(蒼龍門) 편액은 판부사 유언호(兪彦鎬)가 썼다고 합니다. 판부사란 조선 시대 중추부의 으뜸 벼슬로써 종일품 벼슬이며, 관찰사나 병마절도사를 겸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 창룡문 정보 보러가기
창룡문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수원화성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더욱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연무대와 국궁체험장이 한눈에 보입니다. 전략적 요충지였으므로 다른 곳에 비해서 트인 시야가 장점입니다.

창룡문 앞에 있는 옹성입니다. 반원 모양으로 성문에 직접적으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일차적인 방어적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룡문을 바라보면 많은 훼손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보통 성을 쌓거나 문을 만들 때 저렇게 흠이 있는 돌을 사용하지 않고 매끈한 것을 사용하는데 성벽에 사용된 돌을 보면 총탄 자국과 같은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새로 복원하면서 흠이 생겼거나 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으로 보입니다. 흔적을 봤을 때 이곳에서 어느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창룡문 입구
이곳이 외부에서 창룡문으로 들어오는 입구 입니다. 입구는 상당히 좁은데 옛날 소 달구지가 하나 지나가면 딱 맞을 정도의 넓이 입니다. 전쟁 당시에 이런 곳으로 머턱대고 쳐들어온다면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을 듯 합니다.



창룡문 교통편
2-2, 7, 7-2, 60, 77-1, 660, 700-2, 1007
창룡문, 활터 하차.

 



    수원화성의 전략적 요충지 동장대
동북공심돈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 가장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주변에 별다른 건물이 없이 달랑 이 건물 하나만 있어서 다소 썰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수원화성에서 가장 시야가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주변으로 넓게 트여 있기 때문에 이곳을 점령한다면 수원 화성의 전체적인 윤곽이 눈에 들어오고, 최소한 성의 1/3정도는 기본적으로 점령을 하는 요충지일 것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성에 대한 보고를 받고, 각 병사들의 훈련을 체크하는 중심적인 역활을 했을 터이니, 말 그대로 수원 화성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인 건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장대 재미있게 보기
남쪽 수원화성 성곽을 따라 걷다가 보면 동북공심돈과 더불어 가장 웅장하게 보이는 건물이 바로 동장대입니다. 저 건너편 성곽에서 보면 위압감이 드는 건물입니다.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그다지 큰 느낌은 나지 않더군요. 동장대 건물을 보면 1층, 2층, 3층의 넓은 마루 계단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건물 내부 1, 2층까지는 일반 돌로 된 바닥이 나오고, 맨 상층부는 나무 마루로 되어 있어 앉아서 실무를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건물 외관만 놓고 보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건물인데 특이한 내부를 볼 수 있습니다. 3단으로 되어 있어서 재미 있는 구조를 보입니다. 먼 옛날 일반 병사들은 저 바깥에 위치하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건물 내부에서 명령을 전달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당이 기울어진 까닭은?
다소 의문이 들었던 것은 마당이 평평하지 않고 아래를 향해 비스듬하기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연회나 행사를 하려고 했다면 바닥을 평평하기 하는 어떤 장치를 따로 마련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기울어져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건물을 지은 후에 아랫쪽으로 땅이 가라 앉은 것인지 따로 알아봐야겠습니다.




외간
장대에 세운 크고 붉은 깃대. "대흥외간"이라 함. 높이 8m. 화성에는 동장대와 서장대에 각각 한 쌍의 깃대가 있다. 일반 깃대와 달리 도르래를 이용한 것이 특징. 기를 창에 끼워 세우며, 국왕이 군사훈련 할 때는 "시열"이라는 글자를 썼다. - 안내판 -






동장대 내부 가장 높은 곳에 앉아서 내려다 보면 바깥 풍경이 이렇게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시야가 뻥 뚫려 보이지는 않지만 밖에서 무얼 하는지 정도는 볼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실제로 지휘를 하려면 앉아서 하는 것 보다는 서서 하는 편이 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면에 보이는 왼쪽 2층 건물은 국궁 체험장이고 정면에 보이는 작은 유리 건물은 수원화성 티켓을 팔고 있는 곳입니다. 저 멀리로 수원화성 성곽이 보입니다. 이곳은 성벽이 타원형으로 된 길쭉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영롱담
기와로 꽃문양을 새겨놓은 담장. 마치 구슬이 울리는 소리가 날 듯 한 꽃문양의 담이라는 뜻으로 "영롱담"이라 하였다. 전체높이 165cm. 연무대의 왕을 보호하기 위해 뒷 담장 밑부분에 무늬가 있는 문석대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영롱담을 쌓아 아름다움을 더하였다. - 안내판 -

자세히 보면 기와를 서로 엇갈려 포개 놓음으로써 하나의 벽으로 만든 담 입니다. 처음 축조할 당시에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담장 또한 근대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 놓은 듯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시멘트 재질이 눈에 띄는 곳입니다. 안내판 또한 너무 녹이 슬어 글자가 잘 안보일 정도로 상해 있었는데 얼마 하지 않는 안내판이라면 깨끗한 것으로 교체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석
성을 지키는 도구의 하나로 일명 "비석"이라 한다.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성을 지킬 때 타마다 크고 작은 돌맹이 100개씩, 10타마다 큰돌 200근(120kg) 또는 150근 짜리 (90kg) 3개씩 두도록 규정함. 투석은 준비가 쉽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성을 방어하는 무기로 오랫동안 사용됨. - 안내판 -

영롱담 윗부분에 올라가면 볼 수 있는 투석함입니다. 돌 무더기가 있어서 적에게 돌을 던져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함부로 돌 던지지 마라. 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돌은 무기입니다.


블랑기 5호
조선후기 대표적인 휴대용 화포. 몸체길이 72cm, 총구멍 9.5cm. 블랑은 프랑크라는 유럽인을 뜻하는 말로 서양에서 만든 화포를 불탕기라고 함. 몸체가 큰 1호부터 작은 5호로 구분됨. 발사 틀의 수실을 하는 모포와 실탄을 장전하여 모포에 삽입해 발사하는 자포로 이루어짐. 여러개의 자포를 이용해 연속 사격이 가능해 임진왜란 이후 육전은 물론 해전에서도 윍을 발휘함으로써 조선 제일의 화기로 평가받음. - 안내판 -

사실 화포라고 해서 엄청나게 큰 화포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작더라고요. 보통 영화를 보면 배에서 발포하는 그런 거대한 화포를 생각했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그런데 휴대용 화포라고 하기에는.. 움직이기엔 분명 간단할 것 같긴 하지만 무게가 상당할 듯 했습니다. 두명이서 움직여야 가능했을 듯.

나중에 수원 화성이 관광으로 더 발전된다면 화포 시범 같은 것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거 발사되는걸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느정도의 화력을 보이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국궁체험장
동장대 옆으로 보면 국궁장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활 쏘는 것을 이곳에서 처음 봤는데 마치 무중력 상태로 화살이 날아가더군요. 그 무중력 상태의 화살은 저 멀리 동북공심돈 바로 앞에 있는 과녁에 땅땅 거리며 맞추는 것을 보면서 정말 놀랐습니다.

국궁 체험비용은 10발을 쏘는데 2,000원 입니다. 저 멀리 있는 과녁을 향해 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과녁에 쏘는 것인데 다들 재미 있어 하더군요. 다만 10발은 너무 금방 끝나는 것 같고, 제 생각에는 15발 정도로 늘리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10발 쏘는데 10분도 안걸리는데 너무 아깝더라고요.
마침 방문한 일본 관광객들.
은근 슬쩍 끼어서 같이 관람을 할까 했는데..
가이드 설명도 일본어로 하는 바람에 패스.


가는 방법

- 하차 위치 : 창룡문. 활터. 연무대
일반버스 : 2-2, 60, 660, 7, 7-2, 700-2, 77-1, 81, 1007
- 수원역 북측광장 버스 정류장
2-2번이 가장 빠르며 나머지 노선은 북측 장안문을 거쳐 돌아갑니다.

※ 이곳은 수원화성의 다른 곳과는 달리 바로 옆에 관광 안내소와 체험장, 음료를 마실수 있는 휴게실, 화장실, 식당등이 있는 곳으로 수원 화성을 보시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이곳부터 둘러 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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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더공
화성행궁(華城行宮)
지정번호 : 사적 478호 /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6-2 / 제작시기 : 조선시대
화성행궁 (華城行宮)은 정조가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府使) 또는 유수(留守)가 집무하던 곳으로 활용되던 곳이다. 화성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행궁 중 규모면에서 가장 크며, 성곽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행궁은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아래의 산기슭을 중심으로 경사지가 펼쳐지고, 시가지가 시작되는 곳의 평지에 위치해 있다. 구조는 앞쪽으로 긴 형태의 장방형 구조이다.

정문인 신풍루 양쪽으로 남군영과 북군영이 있으며 신풍루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있는데 왼쪽으로는 서리청과 비장청, 오른쪽으로는 집사청이 위치해있다. 서리청과 비장청, 집사청을 좌우로 지나 마당을 가로지르면 좌익문이 있고, 이를 통과하면 중앙문이 나온다. 이 중앙문을 지나면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이 나타난다. 화성행궁과 따로이 떨어져 있는 화령전은 정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다음 위키백과 -

서장대에서 걸어 내려오던 중 화서문에서 폭설을 만나서 카메라를 접고,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발길을 돌린 곳은 화성행궁(華城行宮) 입니다. 잠시 눈이 그치나 싶었는데 나오니 또 이렇게 펑펑 하늘이 구멍이 뚫린듯 마구 퍼붓고 있네요. 빗자루로 눈을 쓸고 계시던 분들은 뒤돌아 보면 순식간에 다시 쌓여 있는 눈을 보시더니, 그냥 포기하고 들어가십니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경복궁(景福宮) 과 비교했을 때 작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시면 30분 정도면 돌아볼 정도지만, 꼼꼼히 관람을 하신다면 1시간은 족히 잡으셔야 합니다. 전체적인 규모는 작지만 건물 내부에 마네킹으로 세밀하게 재현된 모습을 보면 "볼거리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은 기우였음을 느끼실 겁니다.

경복궁(景福宮) 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다소 위압적인 건물 모습과는 달리 소박한 느낌도 나고, 아담하면서도 위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코스 선정에 주의
수원화성 관람은 둥근 성벽 안에 여러 볼거리가 있으니 관람 계획만 잘 짜신다면 반나절 코스로도 충분히 여러 곳을 이용할 수 있을거라 보여집니다. 즉, 화성행궁(華城行宮)을 먼저 보고 서장대에 올라가면 그날 코스는 끝이지만 팔달문 - 수원화성박물관 - 동북공심돈 - 화홍문 - 서장대 코스로 돌아보신다면 반나절 코스로 충분할 듯 합니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풍경 속에 고궁을 걷는 느낌은 혼자 여행을 왔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고즈넉하니 너무 좋더군요. 혼자 하는 여행도 좋지만 이런 눈 내리는 날은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3월 ~ 11월까지는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매주 토요일 14:00~15:00 에 줄타기, 궁중무용 같은 상설 공연이 있다고 합니다. 따뜻한 봄날에 시간 맞춰 가신다면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보실 수 있을 듯 합니다.
※ 화성행궁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수원화성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화성행궁 더공


화성행궁 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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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서장대는 노이즈가 많이 낀 것처럼 보이지만 눈이 내리고 있는 겁니다. 화성 행궁 안에서 올려다 보면 바로 서장대의 깃발과 서장대 2층 누각이 보입니다. 화성행궁을 살펴보고 감시하기에는 딱 알맞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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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화성행궁 가는 방법
화성행궁 앞에서 내리는 버스
- 수원역에서 화성행궁
수원역북측 11, 13, 13-3, 36, 39 / 수원역 건너편 60, 66, 660, 66-4, 7, 700-2, 7-2, 77-1, 82-1

관람 및 시간
- 관람료 : 성인 1,500원, 청소년 1,000원, 12세이하 어린이 700원
- 관람시간 : 09:00 ~ 18:00
- 휴관일 : 지정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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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수원화성 박물관 위치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수원화성 박물관 입니다. 화홍문에서 수원천을 따라 팔달문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매향여중고를 지나고 매향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화홍문에서 직선거리로 622m, 팔달문에서 670m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화성행궁에서는 370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수원 화성을 보기 전에 수원화성 박물관을 먼저 둘러 보시고 화성행궁과 수원화성을 보는 것이 관람 순서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즉, "수원 화성 박물관 ▷ 화성행궁 ▷ 창룡문 4거리 (버스이동) ▷ 수원화성 관람" 이 맞는 순서 같습니다. 버스를 타고 어디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온 것이 없더라고요. 이후 포스팅에서 다시 한번 관람 순서에 대해서 세밀하게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수원화성 박물관
2009년4월27일 개관한 수원화성 박물관은 겉 규모로 봤을 때는 상당한 규모를 생각 했었는데, 실제 전시는 2층밖에 없어서 생각보다 내부 규모는 작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수원 화성에 대한 이해의 목적이 강한 전시물이었습니다. 말로 듣거나 글자로 읽는 것 보다는 화성행궁이 세워진 이유부터 성의 축조, 그리고 어떻게 운영이 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작은 모형을 기반으로 수원화성 자료, 그리고 성을 만들 때의 모습이라든지, 잔치를 벌일 때의 모습등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려운 한자 자료가 가득한 것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한눈에 "아, 건물의 내부는 이렇게 지어졌구나", "이건 이렇게 사용 되는거구나" 하는 것을 어린 아이라도 금방 알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옛 물건을 나열해 놓고 안내 글이 가득 한 것이 아니라, 기본 모형을 기반으로한 설명이 주를 이룹니다. 박물관 1층 야외 전시에는 거대한 녹로와 거중기, 영조 태실 모형, 선정비등을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고, 건물 내부 1층에는 휴게실과  세미나와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느며 일반 전시실은 없습니다. 2층에는 화성 축성실과 화성 문화실이 있으며 실질적인 전시물은 2층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화성행궁 모형입니다. 한번 가봐서 그런지 모양이 너무 익숙합니다. 실제 건물을 봤을 때는 이렇게 넓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모형으로 만들어진 화성행궁을 보니 뮤모가 상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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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 지어진 성의 모형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냥 대충 만들어진 것 같은데 실제로 보면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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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바닥에는 창덕궁에서 출발한 행렬이 어느 곳을 통과해서 수원화성까지 행차를 했는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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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차를 했을 때에는 가져간 쌀과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주변 인물들을 보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면도 재미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당시에 사용했던 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맨 위에 있는 칼의 경우 크기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크깁니다. 게임 같은 것을 보면 자기 자신만한 칼을 양손으로 쥐고 휘두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 칼이 그런 용도로 쓰는 칼 입니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포루에서 공격을 어떻게 하는지 볼 수 있는 모형입니다. 그동안 수원화성 돌아보면서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궁금해 했었는데 내부에서는 저렇게 공격할 무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형의 규모는 상당히 커서 박물관 천장까지 꽉 찹니다. 그래도 이렇게 모형으로 볼 수 있으니 너무 좋더군요. 저 뒤 포대 뒤쪽 성벽 위에서 돌 던지려고 준비하는 병사가 보이시나요?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정조 태실 모형입니다. 이 정조의 태실은 영월 계족산에 있는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정조의 태실이 담긴 태항아리는 1929년 일제에 의해 서삼릉 경내로 옮겨져 있습니다.
수원화성 박물관 더공
수원화성 박물은 규모는 다소 작지만 수원화성에 대해서는 잘 알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수원 화성을 관람하시고자 하는 분이시라면 이곳을 먼저 꼼꼼하게 둘러 보신 후에 수원화성을 보시면 더욱더 깊이 알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원화성 박물관 가는 방법

행궁 앞에서 내리는 버스
3, 4-1, 7, 7-2, 11, 13, 13-3, 16, 16-1, 16-2, 20, 24, 25, 25-1, 26, 27, 32, 32-1, 32-5, 35, 36, 39, 45, 46, 50-2, 50-3, 50-4, 50-5, 50-6, 58, 60, 62-1, 63, 63-1, 64, 64-1, 65, 66,, 66-4, 77-1, 83, 83-1, 88, 98, 112, 650, 660, 700-2, 400
박물관 바로 앞에서 내리는 버스
2, 7, 7-2, 77-1, 60, 660, 700-2, 1007

관람 및 시간
관람료 :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12세이하 어린이 무료
관람시간 : 09:00 ~ 18: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지정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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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화서문
어렸을 때는 눈이 오면 그렇게 좋고, 매일 매일 눈 뜨자마자 창문 열고 눈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고, 눈이 오면 아침 먹자마자 밖에 나가서 깜깜해질 때 까지 밖에서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눈이 이제는 단순하게 감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고, 항상 즐거운 기분만 드는게 아니더군요. 특히나 수원화성을 둘러 볼 때 하나 둘 떨어지던 눈은 어느새 폭설로 변해버렸고, 그나마 살짝 치워져 있던 길은 눈으로 완전 뎦혀서 어디가 길인지 구분을 하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건물조차도 눈 때문에 잘 보이질 않고, 머리에 쌓인 눈은 녹아 내려서 빗물처럼 흘러 내립니다. 더군다나 카메라에 떨어지는 눈은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녹아 내려서 더이상의 촬영이 힘들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눈 펑펑 쏟아지는 날 수원 화성을 걷는 기분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더군요. 카메라는 다 젖어버리고, 어깨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지만 그것만으로 기분은 한층 업그레이드 되더군요.

이렇게 눈 펑펑 내리는 날 수원 화성을 담은 사진을 별로 보실 수 없으실 텐데 오늘 마음껏 구경하세요. 근래 보기 드문 폭설로 한치 앞이 안보인다는 말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화서문 (華西門)
화서문(華西門)은 보물 제403호로, 수원 화성의 서문이다. 좌우 성벽에 연결되는 돌로 된 기부에 홍예문(虹霓門)을 두어 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세웠다. 문의 앞부분에는 반달형으로 된 전축(塼築) 옹성(甕城)이 있는데 높이는 안쪽이 2.62m, 바깥쪽이 3.65m, 두께는 3.25m이다. 이 옹성은 한 평이 트여 있어 문을 출입할 때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1975년 수원 화성을 중수 공사할 때 보수되었다.
- 위키백과 -

화서문을 처음 본 느낌은 그동안 역사책과 백과사전, 또는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통해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100번의 말보다는 한번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것이 낫고, 100번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것 보다는 한번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딱 실감나더군요.

성문을 감싸듯이 부드럽게 곡선을 이룬 성벽(옹성)과 한 번 꺽어서 들어가야 하는 입구, 그리고 성벽만으로도 왠지 든든했을 것만 같은 구조는 절로 감탄사가 나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전체적인 규모는 웅장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단단해 보이고,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 적당한 크기라는 말이딱 들어맞는 듯 합니다.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화서문




수원화성 여행은 쏟아지는 눈 때문에 화서문에서 멈춰야 했습니다. 수원화성 구경은 그만하고 뼈다구탕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에, 바로 화성행궁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조만간 날 좋은날 골라 다시 한번 가볼 생각입니다. 다음에는 화서문에서부터 남은 곳까지 한바퀴 전부 돌아보고 와야겠습니다.

더불어, 이렇게 눈이내리지 않았다면 평범한 화서문 사진으로 남았을텐데.. 눈이 펑펑 쏟아지던날 화서문을 봐서 그런지 기억에 아주 깊게 남아 있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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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정말 기념탑이 많습니다. 어지간한 유명한 곳이라면 다 하나씩 기념탑이 있네요. 물론 제가 사는 안양에도 "충혼탑",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등이 있습니다. 이번에 둘러본 수원화성에도 "삼일운동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갔는지 눈이 단단하게 보도블럭처럼 변해 있네요. 그런데 수원화성 관광 지도에도, 홈페이지에서도 "삼일 독립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군요.

기념비가 있는 이곳은 흙으로 되어 있었는데 2010년 보도블럭도 설치가 되고, 탑 뒷편으로 무궁화 나무도 심고 하면서 주변 정리가 되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팔달산 수원화성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냥 휙 휙 지나가시더군요. 그런데 이러한 기념비와 기념탑이 세워졌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니 꼼꼼하게 돌아봤습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는 팔달산 수원화성 서남암문에서 바라보면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뒤에는 안테나 탑이 있으니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
삼일 독립 기념탑은 단기 4302년(서기 1969년) 3월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의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광복후 중포산에 세운 적을 3.1 동지회가 1969년 10월15일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 놓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원래 중포산(中布山)에 세워진 3.1 독립 기념탑은 왜정 수원경찰서 사법계주임 노구찌(野口) 소위의 순국비를 허물은 자리에 세운 것이었다. 삼일동지회는 1969년 4월12일 창립총회 때 3.1 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3.1독립기념탑 건립과 동공원에 있는 대한독립기념비를 같은 자리에 이전하기로 결의 하였고, 수원시를 비롯한 각급 기관과 학교 및 학생들의 자율적이 협찬을 받아 건립하게 되었다.
- 안내판 내용 발췌 -


수원의 3.1 운동
일제 강점기 당시 수원면에서 처음 만세 운동이 일어난 것은 3월 1일 화홍문에 서였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정황이나 증거가 미약하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할 때, 3월 16일에 벌어진 만세 운동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날은 장날이었는데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와 창룡문쪽 연무대에서 각 각 수백 명이 만세를 부르며 종로를 향하여 행진을 했다.

그후 3월 23일에는 수원역 근처 서호에서 약 7백명이 시위를 벌였고, 3월 25일에도 25명의 청년학생들 과 노동자들이 시장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3월 25일에 있었던 시위 주동자의 검거에 대한 항의 표시로 3월 27일에는 인근 상인들이 상점 문을 닫는 철시(撤市) 투쟁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 때 약 40%에 달하는 상점이 문을 닫았 다고 한다.

3월 28일에도 3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불렀고, 3월 29일에는 수원 기생 조합의 기생 약 30명이 자혜 병원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날 밤에는 상인과 노동자들까지 합세하여 독립 만세를 불렀고, 일본인 상점에 돌을 던지는 등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 수원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홈페이지보러가기)-



대한독립기념비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단기 4281년(서기 1948년) 8월15일 수원 시민이 세운 기념비이다. 이 비는 수원시민과 학생일동이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원 동공원에 건립하였던 것인데, 1969년 수원 시민의 날인 10월15일 3.1 독립 기념탑과 함께 3.1 동지회가 이곳 수원시 팔달산 중턱으로 이전설치 하였다. 높이는 4m이다. - 안내판 내용 -





보통 기념비는 앞면에 비의 이름을 쓰고, 뒷면에는 내용을 쓰는데 이 기념비는 앞면과 뒷면 모두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옆면에는 단기 4281년 8월15일 이라는 건립 년도가 나옵니다.

위에 안내판의 내용을 보자면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가 1948년에 먼저 건립이 되었고, 그 이후에 "삼일 독립 기념탑"이 1969년에 세워졌습니다. 3.1운동 기념탑을 세우면서 수원 동공원(수원 팔달구 화서동)에 세워져 있던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도 같이 옮겨와서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된 것입니다.






노구찌(野口)는 1919년 3월19일 만세 운동중인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자 성난 군중들이 노구찌를 돌로 쳐 죽입니다. 이후 일제는 노구찌의 죽음에 "순국"이라는 이름으로 "순국비(기념비)"를 세웁니다.


이 기념비는 위의 내용에서도 있듯이 수원경찰서 사법계 "노구찌(野口)"의 순국비를 1945년 광복이 되자마자 수원 시민들이 몰려가서 허물어 버리고, 1948년 그 자리에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요즘에도 비석이나 기념비 하나 세우려면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힘들죠. 그 어렵던 시절에 수원 군내 학생과 읍민 일동, 유근홍, 이상훈 등이 주축이 되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다하니 일제에 의해 강점 당했던 그 시절의 분노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보이는 비석의 바로 아랫 기단은 노구찌 기념비를 세웠던 기단을 그대로 썼다고 합니다. 노구찌 기념비는 산산조각내 버리고 그 아랫 기단은 더 큰 기념비로 눌러버렸으니 "대한독립기념비"가 세워질 당시의 수원 시민들의 기쁨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안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동공원에 이 기념비가 세워졌던 곳이 궁금하더군요. 지도를 보면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습니다. 동공원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중포산으로 불리우는 작은 언덕이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 언덕에 공원을 만들고 중포산이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동공원"으로 불리워서 지금까지 이어졌다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동공원에도 한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그냥 우연히 스치듯 지나치는 작은 것들, 이러한 기념비 하나하나에도 커다란 역사가 숨어 있는 것을 알 때의 느낌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쁩니다. 전에 부산에서 민주공원을 둘러보며 "아.. 여기에서도 치열한 삶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한 느낌을 수원화성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양과는 가까운 곳이라 별다른 생각을 못했었는데 수원 또한 일제 강점기에 삼일운동을 했었고, 수원의 역사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원화성 운영재단에 연락해 본 결과 홍보 전단지는 2011년 이미 인쇄가 완료되어 수정이 어렵겠지만, 수원화성 홈페이지에는 조만간 기념비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올리겠다는 말씀을 하시네요. 잘 알지도 못하는 블로거가 건 한통의 전화로 홈페이지를 수정하시겠다는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 일부 자료에서의 통일된 문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은 "운동"과 "독립"이라는 말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탑의 이름이 "독립"으로 쓰이고 있으니 모든 홍보 안내문구는 "삼일독립기념탑"으로 바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자료 : 수원시청 홈페이지, 수원화성 홈페이지, 3.1운동 기념탑 안내판,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안내판, 수원화성 운영재단 관계자. 수원 박물관 한동민 학예팀장님 감사합니다.

- 내용중 틀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이나 방명록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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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Prolog]
수원화성. 가까운 안양에 살면서도 처음으로 가본곳. 사실 많은 분들의 블로그 소개를 볼 때마다 꼭 한번 가보겠노라고 생각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몇번이나 수원을 들락거리면서도 쉽게 가보질 못한 곳이었는데 어느 아주 많이 추운 겨울날 가보게 되었네요. 우선 수원역에서 팔달문 가는 버스를 타고 수원 팔달문에서 내립니다.

수원 팔달문에서 내려 길은 건너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바로 이런 장면이 펼쳐집니다. 계단을 보면서 순간 "헉" 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긴 계단이 저기 꼭대기까지 이어집니다. 그동안 수원화성을 봐 오면서도 이런 계단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길더라고요.

저기 보이는 곳 까지 눈이 치워져 있고 그 위에는 눈이 덜 치워져서 사진 찍다가 눈 위에서 한바탕 굴러야 했습니다. 나중에 이곳에 가셔서 낯선 수컷의 향기가 나는 것 같으면 제 향기인줄 아시면 됩니다.

바로 전 포스팅에서도 밝혔듯이 이런 계단쯤은 숨 한번에 오를 정도의 체력이 필요합니다.


     코스 선정에 주의
수원화성에 대한 느낌은 첫번째로 상당히 많이 걸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접한 수원화성에 대한 느낌 보다 직접 가서 봤을 때 그 넓이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넓었습니다. 처음 계단을 올라갈 때만해도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열차나 시티투어 버스를 타지 않으신다면 잠깐 동안의 방문으로 전부 다 보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성곽 둘레만 5.7km에 달하며 사진까지 찍으면서 둘러 보신다면 반나절은 훌쩍 지나갑니다. 거기다가 화성행궁까지 보신다면 더욱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팔달문을 시작으로 계단위의 서남각루(화양루)를 시작으로 효원의문 - 서장대 - 화서문 까지 가서 화성행궁까지 보는 것도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하루에 다 보시려면 엄청난 허벅다리 힘으로 성곽을 돌며 사진을 찍고, 화성행궁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화령전을 보시고 나와서 화홍문의 야경까지 찍어야 합니다. 힘들죠.


     안내 데스크를 적극 이용
수원역 앞의 안내소에 들어가서 물어보시거나 곳곳에 위치한 안내소에 들어가서 "오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고, 어디어디를 보고 싶다"고 말씀을 하시면 코스를 잡아 주실 겁니다. 초행길이라면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도 헷갈릴텐데 그런한 것까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국말이 서투신 분이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입장 요금도 있습니다
이것도 처음 알게된 사실입니다. 수원 화성은 입장요금이 있습니다. 팔달문에서 서남각루(화양대)까지 올라가는 것은 요금을 받지 않지만 서포루 앞 효원의 종 부터 서장대까지 가시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수원화성(성곽)만 둘러보는 비용은 성인 1천원입니다. 통합권을 사시게 되면 화성행궁과 박물관등을 보실 수 있는 비용이 조금 절약 되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일정이 잘 짜여지지 않았다면 통합권 사시고 박물관은 못보고 오실 수 있습니다.

수원 시민(주민등록증 지참)은 무료라고 하네요. 얼마나 부럽던지..



서남각루(화양루) 계단을 오르기 전에 요금 안내표가 있습니다. 서남각루까지는 그냥 올라가셔도 됩니다. 이곳에서는 수원화성에 대한 간략한 안내지도와 설명을 듣고 올라가시면 좋습니다.


수원 팔달문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전봇대에 살짝 가려진 곳이 팔달문입니다. 현재는 보수 공사중으로 차양막이 쳐져 있어서 지붕만 살짝 보이는 상태입니다.


계단의 중간쯤 올라가면 화성열차 타는 곳이 어느쪽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날씨가 흐린날이나 기상 상태가 안 좋은날은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운행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안내데스크에서 물어보시면 편합니다. 저는 튼튼한 허벅지만 믿고 올라갑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눈이 녹기도 전에 내리고 추워지고..


이곳부터는 눈이 잘 안치워져 있습니다. 우측의 계단을 통해서 계속 올라가야 됩니다.


홍난파 노래비
고향의 봄을 남긴 홍난파의 노래비가 있네요. 홍난파는 당시 경기도 화성군 수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노래비가 세워진 듯 합니다. 홍난파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링크를 따라가 확인하세요.


이제는 성곽을 따라서 올라갑니다. 잠깐 동안 올라온 것 같은데 어느새 수원 시내가 점점 발 아래로 보입니다.


남포루
왼쪽에 왠 지붕이 보입니다. 성곽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남포루입니다.
수원 화성에는 총 다섯개의 포루가 있으며 지대 위에 대포 발사를 위해 뚫어 놓은 혈석이 있습니다. 직접 봤을 때는 거의 틈이 없는 건물로써 적의 화살이나 조총 같은 것으로도 공략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포루의 성곽쪽 모습입니다. 벽돌로 지붕까지 쌓아 올렸으며 안에서 포를 쏘기에 적당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특히 보시면 알겠지만 벽의 두께가 상당히 뚜꺼워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함을 보여줍니다.


굳게 닫혀 있는 문.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기에 발걸음을 돌립니다.






드디어 서남암문에 왔습니다. 이런 계단쯤이야 너무 쉽죠. 튼튼한 허벅지만 있으면 됩니다.








올라온 계단을 보니.. 끝이 안보이는군요. 하루에 두번씩 왕복 한다면 상당한 운동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곳이 바로 옆에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서장대"쪽으로 바라본 풍경입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얼마나 멀지 알 수 없습니다. 나무에 가려져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서남암문(西南暗門)
서남암문입니다. 입구의 폭은 작지만 상당히 견고해 보입니다. 성곽 안쪽의 모습이며 밖으로 통하는 길은 외부의 길이 아니라 성곽의 윗부분입니다. 암문이라 하여 수컷 암컷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암(暗)의 한자어를 볼 때 숨기는 기능의 뜻으로 쓰입니다.

서남암문(西南暗門)은 서남각루(화양루)로 이어지는 용도가 시작되는 곳으로, 암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때문에 다른 곳과는 달리 위에 누각이 있다.

암문은 바깥으로 난 비밀통로로 성곽의 굽은 부분이나 후미진 곳, 수목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곳 등에 설치하였다. 이곳으로 적에게 보이지 않고 사람이 드나들고, 가축, 양식, 무기 등을 공급하였다. 문의 크기도 겨우 말 한 필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고 문 위는 보통 성곽과 같게 축조하였다.

전쟁시에는 주변에 쌓아둔 돌과 흙으로 암문을 메워 적군이 들어 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암문에는 일반적으로 위에 건물을 세우지 않지만 서남암문에는 포사를 세웠다. 포사는 공격 시설이 없고, 적을 감시하고 신호를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이곳은 팔달산 서남쪽의 높은 곳이어서 서남방향으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적을 감시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한 것이다. 서남암문 위에 지어지 일종의 경비초소라 할 수 있다.

- 안내 팜플렛 발췌-



서남암문 천장에 그려진 그림. 컬러가 상당히 돋보이는 그림입니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용도(甬道)
처음에는 길 인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성곽의 윗부분으로써 "서남각루"로 가는 성곽길 입니다.
눈으로 바닥이 단단하게 굳어 있어서 걷기에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용도는 양쪽에 담을 쌓은 길이란 뜻으로, 팔단산 남쪽 능선에 성벽에서 대롱처럼 길게 나와 있다. 팔달산 남쪽 능선에 오르면 팔달문을 비롯하여 창룡문과 화홍문 일대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만약 적군이 이곳을 점령하면 화성 안의 동정을 환히 알게 된다. 때문에 팔달산 남쪽 능선까지 성곽을 연장하여 용도를 만들어 방어력을 높인 것이다. - 안내 팜플렛 발췌 -



뒤돌아 바라본 "서남암문"의 모습입니다. 각루를 넘어 온다 하더라도 적이 이곳을 통과하기란 목숨을 내 놓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의 위용입니다. 성벽 위의 성벽입니다. 저 엄청나게 큰 바윗돌로 벽을 쌓고 그 위에 다시 단단한 벽돌로 쌓아 올린 건축물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이어 터뜨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왕의 남자를 촬영한 곳이기도 한 곳입니다.


이제 계단 하나 올라왔을 뿐인데... 미끄러운 길을 무거운 어안랜즈 장착한 상태로 넘어지지 않으려 올라와서 그런지 팔에 힘줄이 불끈불끈 솟아나네요. 분명 넓은 화각인데 사진이 작아서 그런지 별로 효과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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