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 더공 - WIDE 1400x500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은 세종실록에 나온 세종조 회례연 배반도 한장과 그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약학궤범의 기록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고증한 작품이다. 세종조 회례연은 세종께서 왕조의 모든 역량을 총 결집시켜 9년동안 연구, 정리한 결과를 처음 선보인 연회로, 아악 / 당악/ 향악 등 당시 궁중의 음악과 무용을 선보인 연례였다.

그리고 400명 이상의 악사와 무용수가 참여하여 규모면에서도 사상 초유의 장대함을 지녔다. 세종15년에 행한 회례연은 술을 아홉번 올리는 9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회례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데, 술을 올릴 때는 물론 왕의 출입 때, 왕세자가 절할 때, 찬안을 올릴 때, 꽃을 올릴 때도 음악을 연주했다. 또한 음악만 연주하는 절차와 춤을 추는 절차가 구분되어 있다. 오늘 공연은 기존 의례 순서에서 가장 화려한 무용과 음악이 포함된 부분을 총 5부작으로 압축하여 진수를 선보인다.-팜플렛-

세종조 회례연의 역사적 배경
세종조 회례연은 세종 15년(1433)에 행한 회례연을 바탕으로 한 공연이다. 따라서 세종 15년의 회례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회례연이란 매년 1월1일과 12월25일에 왕과 신하가 정과 뜻을 나누기 위해 베푸는 잔치이다. 유교 국가에서 음악은 국가 정책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세종꼐서도 황희/맹사성/허조/정초/신상 등과 악률을 논하고 음악이론을 공부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율관 제작, 악기 제작, 악보발간, 아악 정비, 신악 창제 등 음악문화를 정비했다.-팜플렛-


세종조 회례연
Sound of the Heaven, Music of King Sejong
열심히 일하고 있던 일요일 오전. 카톡으로 "경복궁에서 세종조 회례연 하니까 빨리 가자"는 메세지를 받고 부랴부랴 경복궁으로 향했습니다. 국립국악원 주최로 열린 세종조 회례연은 세종탄신 615년 기념으로 경복궁 관람객을 대상으로 무료로 열렸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내국인 관람객과 외국인, 기자들로 발 디딜틈이 없을정도 였습니다.

악사240명, 무용수 160명이 펼치는 공연은 9가지의 의례중 가장 화려한 5부작으로 압축한 공연 형식으로 보여준 것인데 화려함은 둘째치고 어마어마했습니다. 특히 궁궐이라는 공간에서 열린것이라 그런지 더더욱 특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더불어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보기 힘든 이러한 공연을 본 외국인들은 원터풀을 연달아 외치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들었던 생각은 '님들 땡잡으신 날이십니다"였습니다.

작년에 놓쳤던 공연이라 올해는 "꼭"하고 다짐했었는데 그 소원을 풀었습니다.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것 같은 궁중음악과 무용은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특히 2011년 공연과는 달리 2012년 공연에서는 100여명이 추가로 투입되고, 완성도를 상당히 높였다고 합니다.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가장 좋은 자리에서 관람중인 세종역의 영화배우 강신일씨. 대사는 몇마디 없었지만 상당한 포스를 뿜어내더군요.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세종조 회례연

출연 : 국립국악원 (연주단 및 무용단) / 객원 : 단국대, 서울대, 이화여대, 중앙대, 추계예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 세종 : 강신일 / 집례 : 남문철 / 일무 : 국립국악고등학교 / 의물 : 한양대학교 무용과 / 내금위군 : 한국문화보호재단



세종조 회례연

올해 못보신 분들은 내년 이맘때 기억하셨다가 잊지 말고 관람하세요. 경복궁 입장료 3천원이면 이런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정보를 접하신 분들은 미리 와서 좋은 자리 잡고 관람하시더라고요. 사실, 어느곳에서 관람 하시더라도 임금이 앉은 곳을 제외하고 전체 전경을 볼 수는 없습니다.

내년 공연에는 한쪽에 전광판이 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형 모니터가 있으면 내용에 대한 안내와 설명도 보여줄 수 있고, 저기 위에서 공연하는 장면도 볼 수 있고, 더불어 관람객들을 앉혀서 더욱 많은 분들이 관람할 수 있게 만든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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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우
원태우 (元泰祐) 의사
1882년 3월4일 과천면 안양리 642번지(현재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642번지)에서 출생 하셨다. 원의사께서는 1905년 11월22일 이토이로부미가 수원에 사냥을 갔다가 안양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서리재고개(현재 안양육교)를 지날때 혼자의 몸으로 돌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히고 일경에 체포 구금되었다.

이 의거는 민간 항일운동의 효시가 된 거사로써 당시 대판매일신문, 대한매일신문, 동경매일신문 등의 언론은 물론이요, 일본이 제작한 일로전쟁화보와 속음청사에도 그 내용이 수록된 일대 사건이었다.

원 의사께서는 1906년 1월24일자로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루었다. 당시의 고문으로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지내신 원의사께서는 69세의 일기로 수푸루지(지금의 안양 비산동)에서 타계 (1950년)하셨다. 그 후 40년이 지난 1990년 정부에 의해 건국훈장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안양에 오래 살고 있으면서도 안양을 둘러보는데는 다소 인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양역 입구 벽면에 볼 수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몇번 안내판에 있는 글을 읽었지만 오고 가면서 봤던 것과 다르게 이렇게 앉아서 꼼꼼히 읽어보니 참으로 대단한 일을 했던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여러 안내 판에서는 의사(義士)와 지사(志士)를 혼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안양역에는 “원태우(元泰祐) 의사(義士)”로 표기되어 있고, 다른 곳에는 “원태우(元泰祐) 지사(志士)”로 나와 있는데 정확한 것은 “지사(志士)”가 맞는 말 입니다. 사실, 애국에 있어서 의사면 어떻고 지사면 어떻겠습니까. 오히려 원태우 지사님 처럼 모진 고문으로 더욱 힘들게 지내시다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더 많은데 말입니다. 그래도 명칭이 달리 사용되고 있으니 그에 맞게 수정할 부분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족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리라!!
어쨌든 '원태우 지사'께서 '이토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진 사건은 그 파장이 상당히 컸던 모양입니다. '이토히로부미'가 부상을 입어 여러 곳에 신문이 실릴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합니다. 원태우 지사는 이 일로 약 두달간 감옥에 갖혀 고문을 당하고, 남은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지냈다 합니다.


의문 1. 어떻게 달리는 기차를 향해 정확하게 던질 수 있나?
위의 내용으로 보면 이토히로부미가 탄 기차를 향해 돌을 던져서 큰 부상을 입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정확하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가 의문일텐데 1905년 당시 기차 속도는 시속 20km~30km로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볼 수 있는 속도로 열차가 달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 속도 또한 당시로써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였겠지만 그 느린 속도로 달리는 열차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앉은 의자를 향해 돌을 던졌고, 유리창이 깨지면서 큰 부상을 입은 것이지요.

의문 2. 높은 열차의 창문을 어떻게 볼 수 있었나?
돌을 던진 위치가 중요합니다. 현재 석수 IC가 있는 곳이 안양육교 입니다. 예전 말로는 서리재고개라는 말인데 아래 사진으 보시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진의 오른편은 일반 도로가 있는 곳이고, 왼편은 기찻길입니다. 기차길은 상당히 낮은 곳에 있어서 비탈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정확하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이죠.
원태우
돌 던진 곳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안양역에서 버스를 타고 안양자동차학원 맞은편까지 가봤습니다. 표지석은 원태우 지사께서 이토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진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안양자동차 학원 맞은편입니다. 바로 옆은 철도길로 철길은 아래로 움푹들어간 곳입니다. 예전 지명이 서리재고개로 이곳은 고개였으며 그 고개를 뚫고 기찻길을 만들었으니 거사를 치루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죠.

원태우 지사 의거지 정확한 위치는 관악역에서 서울 방향으로 300미터 정도 올라오시면 안양자동차학원 맞은편에서 이 표지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열차를 전복 시켜라!!
원래 계획은 돌을 쌓아 기차를 전복시켜 이토히로부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같이 참여했던 ‘이만려’가 돌을 치워서 열차 전복 계획은 무산이 됩니다. 이에 원태우 지사는 단독으로 거사를 하게 됩니다. 다가오는 열차에 돌을 던져 유리 파편 8조각이 이토히로부미의 얼굴에 박히게 합니다. 이 의거 이후로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적극적인 독립운도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원태우
원태우 지사 의거지
이곳은 안양 출신 원태우 (1882-1950) 지사가 1905년 11월 22일 민족의 원흉 이토를 향해 정의에 돌을 던져 대한 남아의 기개를 만방에 떨친 역사의 현장이다. 일제에 의해 1905년 11월17일 강제로 외교권을 빼앗긴, 이른바 을사조약에 비분 강개하여 단신으로 거사를 강행 이토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거사후 원지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후 이듬해 1월 풀려났으나 평생을 불구로 지내다 1950년 한국전쟁때 69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다.
바로 주변에 이렇게 무궁화를 볼 수가 있습니다. 가을 날씨 같은 깔끔한 날씨에 파란하늘까지..
안양역 벽면에 있는 사람이 누굴까 해서 찾아다녀본 하루였습니다. 더불어 안양의 옛 지명까지 알게 된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안양육교는 “서리재고개”, 안양 비산동은 “수푸루지”라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름이었습니다.

역사책에만 실려 있는 유명한 의사(義士)분들 이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나라를 잃은 설움을 표출하시고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지역에는 어떤 분들이 있는지 한번 둘러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태우 지사가 이토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졌을 때가 1905년 24살이었는데 저는 24살에 뭘 하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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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헌

가장 오래된 근대건물 정관헌
정관헌
덕수궁울 둘러보다 보면 궁 바로 뒷편에 근대건축물이 나타납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아주 다른 건축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덕수궁은 석조전도 그렇고, 미술관도 그렇고 근현대 건축물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국내에 근현대 건축물이 많다해도 정관헌은 특별해 보입니다. 현재 덕수궁 내부에 있는 건축물중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인 정관헌입니다.

으리으리한 기와 건물이 즐비한 덕수궁에서 다소 생뚱맞은 건물이긴 하지만 당시에도 사용되었고, 주변에 있는 빌딩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건물입니다.

덕수궁에서 가장 위치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관헌에서 내려다보면 덕홍전이 정면으로 보이고 바로 옆에 함녕전, 그리고 석어당, 중화전등을 볼 수 있습니다. 정관헌 바로 옆에는 멋진 나무 한그루가 서 있습니다. 정면 사진에 할아버지가 서 계신곳에 서 있는 나무는 회화나무로 326년생으로 높이가 17미터 지정번호 97호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입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일어났던 온갖 격변을 다 바라봤겠죠.

이곳은 고종황제가 여러 행사와 만찬을 즐겼다는 곳이어서 그런지 마당도 넓고 시원시원합니다. 정관헌이라고 해서 약 이름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기억하기가 쉬운가 봅니다.
정관헌 정관헌
정관헌
정관헌
궁궐 후원의 언덕 위에 세운 휴식용 건물로 이름에 걸맞게 조용히 궁궐을 내려보고 있다. 학국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1900년경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A. I. Sabatin)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네크양식의 인조석 기둥을 줄지어서 내부 공간을 감쌌고, 동남서 세 방향에 베란다를 마련했다. 베란다의 기둥은 목조이며 기둥 상부에 청룡, 황룡, 박쥐, 꽃병 등 한국의 전통 문양을 새겼다. 이 한양(韓洋) 절충의 이국적 건물 안에서 고종은 커피를 마시며 외교 사절들과 연회를 즐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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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헌
문화를 아끼는 방법. 문화를 누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저곳에 앉아 계신 여러 관람객들은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자리에 앉아 수다를 하고 계십니다. 분명한건 이곳에서는 그렇게 오래 앉아 떠드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죠. 앉아서 체험을 해 보라고 놓여진 의자에 앉아 카페처럼 수다를 하는것은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수다는 짧고 가볍게, 앉아보는 것 까지만 하시면 아주 좋겠습니다.

※ 정관헌에서 회의 가능
현재 이곳은 한시적으로 일반인들에 대해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대관을 한다고 합니다. 기간은 2011년 8월 ~ 2011년10월 까지이며, 사용하기 5일전에 '문화재청 고객지원센터(http://www.e-minwon.go.kr/법정민원신청)'에 신청을 해야 하며, 신청후 궁궐 담당자와 협의를 거쳐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간단한 다과와 전기기자재 등의 사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한시간 사용료는 36만원이라고 합니다.
정관헌
정관헌 정관헌
러시아에서 가져온 100년 넘은 타일
타일정관헌과 바닥에 깔린 타일입니다. 이 타일을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은 이 타일이 처음 깔렸던 그 타일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색상이 더 진하고, 라인도 분명했겠지만 현재는 100여년이 지나면서 색상도 많이 빠지고, 깨진 곳도 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정관헌에 가신다면 가벼이 넘길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건축 당시부터 깔려 있는 타일이므로 바닥을 걸을 때 지팡이로 콕콕 찔러본다거나, 우산대 같은 것으로 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정관헌
정관헌 정관헌
정관헌
정관헌 입구 지붕 처마 아래를 바라보면 청룡과 황룡 두마리의 용이 있습니다. 건축양식은 서양식으로 지어졌지만 이렇게 곳곳에 한국적이며 섬세한 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기둥을 받치는 부분에는 꽃병모양으로 만들여져 있고 박쥐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정관헌에서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 입니다.
정관헌
INFO
덕수궁 교통정보
지하철1호선, 시청역2호선, 시청역5호선, 광화문역2호선, 을지로입구역1호선
버스노선
간선 : 101, 150, 402, 402(심야), 405, 501, 506 / 지선 : 1711, 7016, 고궁순환 / 광역 : 9409 / 순환 : 90S투어, 91S투어 / 좌석 : 1002 / 공항 : 6005, 서울시청(호텔경유) / 마을 : 종로09, 종로11 / 직행 : 8600

덕수궁 입장요금 : 성인 1000원, 소인 500원
덕수궁 홈페이지 : http://www.deoksugung.go.kr/
덕수궁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58 (우 100-120)
전화번호 : 02)771-9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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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화성의 동문 창룡문(蒼龍門)

국도 제 43호가 지나가는데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 동쪽문 입니다. 창룡문 건너편에 연무대와 국궁체험장, 동장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원의 중요 도로인만큼 상당히 많은 교통량이 있는 곳입니다. 수원화성의 여러문 (팔달문,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 화홍문) 중에서 가장 밋밋한 모양을 하고 있는 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성곽과 거의 일자로 만들어져 있고, 주변 시야가 탁 트여서 더욱 외소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창룡문은 1794년 정조대왕의 명으로 수원화성 성곽을 만들 때 같이 만들기 시작해 1795(정조19년) 완공된 건물입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때 주변의 동북공심돈과 같이 보존을 못한 상태에서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문루와 홍예가 사라졌집니다. 문루와 홍예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거의 완파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후 1975년 동북공심돈을 비롯한 수원화성의 여러 문화재 복원 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아랫쪽의 문은 홍예문으로 불리우고 위쪽 건물은 단층문루를 세워 놓았습니다. 위에서 창룡문은 수원화성의 다른 문처럼 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문 앞에 둥글게 반달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셨을텐데, 그것을 옹성이라고 부릅니다. 창룡문의 동옹성은 높이 2.9m 둘레 17.2m로 총안이 14개가 뚫려 있습니다.

창룡문(蒼龍門) 편액은 판부사 유언호(兪彦鎬)가 썼다고 합니다. 판부사란 조선 시대 중추부의 으뜸 벼슬로써 종일품 벼슬이며, 관찰사나 병마절도사를 겸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 창룡문 정보 보러가기
창룡문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수원화성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더욱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연무대와 국궁체험장이 한눈에 보입니다. 전략적 요충지였으므로 다른 곳에 비해서 트인 시야가 장점입니다.

창룡문 앞에 있는 옹성입니다. 반원 모양으로 성문에 직접적으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일차적인 방어적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룡문을 바라보면 많은 훼손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보통 성을 쌓거나 문을 만들 때 저렇게 흠이 있는 돌을 사용하지 않고 매끈한 것을 사용하는데 성벽에 사용된 돌을 보면 총탄 자국과 같은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새로 복원하면서 흠이 생겼거나 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으로 보입니다. 흔적을 봤을 때 이곳에서 어느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창룡문 입구
이곳이 외부에서 창룡문으로 들어오는 입구 입니다. 입구는 상당히 좁은데 옛날 소 달구지가 하나 지나가면 딱 맞을 정도의 넓이 입니다. 전쟁 당시에 이런 곳으로 머턱대고 쳐들어온다면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을 듯 합니다.



창룡문 교통편
2-2, 7, 7-2, 60, 77-1, 660, 700-2, 1007
창룡문, 활터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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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궁궐 산책 - 창덕궁 이야기

     부용지(芙蓉池), 부용정

창덕궁 후원 부용지
조선의 궁궐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에 의해서 조성되었다. 부용지도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다. 연못의 동남쪽 모퉁이 돌에는 뛰어 오르는 형상의 물고기 한마리가 새겨져 있다. 부용정(1792년 건립)은 + 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 홈페이지 발췌 -


     발길을 붙잡는 부용지

오래전 대장금에서 잠깐 나왔던 창덕궁의 후원. 그리고 2002년 개봉했던 취화선의 촬영지이기도 한 부용정은 알려진 만큼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곳입니다.

이렇게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보면 창덕궁에 대해서 많이 소개가 되었지만, 실제로 많은 분들이 구경도 못해본 분이 많으실 듯 합니다. 저도 수도권에만 대부분을 살면서도 몇번 가보질 못한 곳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창덕궁 관람 도중 옥류천보다 더욱 오랫동안 발길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입구에서 이리저리 올라가다 언덕을 살짝 넘자마자 눈 앞에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이랄까..

부용지는 경복궁의 경회루 지역처럼 양쪽 옆이 담으로 둘러쳐져 있었으나 현재는 담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곳은 주변의 풍경처럼 나랏일을 직접적으로 관리하기 보다는 휴식과 인재를 발굴하는데 중점을 두었던 곳이라는 느낌이 보는 순간 물씬 풍겨 나옵니다. 부용지를 중심으로 특이한 부용정이 있고,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등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주합루가 있으며, 영화당이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

     부용정 부용정의 모습은 + 자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며 한쪽은 연못 위에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정조가 화성행궁 후 돌아와 이곳에 걸터 앉아 신하들과 낚시 내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입니다. 역사적인 고증으로는 이곳에서 공부하는 유생들과 더불어 부용정을 중심으로 각 귀퉁이에 자리를 하고 낚시를 하며 흥을 돋구었다고 합니다.

부용정은 직접 보면 규모가 작은 듯 느껴지면서도 그 구조가 정말 특이합니다. 흙을 밟고 보면 연못 가장자리에 있는 듯 보여지면서도 연못 가장자리에서 보면 시원스럽게 발을 내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

창덕궁 후원 부용지

창덕궁 후원 부용지

창덕궁 후원 부용지

창덕궁 후원 부용지

창덕궁 후원 부용지

창덕궁 후원 부용지
※ 사진을 클릭하시면 와이드로 보실 수 있습니다.

부용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 가더라도 특별한 매력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우리의 궁궐여행을 한번 해 보세요.
마음에 쏙~ 드실겁니다.



홈페이지 : http://www.cdg.go.kr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전화번호 : 02) 762-8261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관람요금
일반관람 / 어른 : 3,000원 청소년 1,500원
특별관람 (후원) / 어른 5,000원, 청소년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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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수류정에 대해 알아보니 현재 (2010년 12월23일) 서북공심돈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예고됐다고 합니다. 지정예고란 6개월 이내에 문화재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정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화서문과 팔달문에 이어서 수원화성에서만 네개의 보물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가치로도 보물이죠.

PS. 2011년 3월2일 : 문화재청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사적 3호 화성(華城) 중에서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과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을 각각 보물 1709호와 1710호로 지정했다.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방화수류정
수원 화성의 건물 중 가장 특이한 건물이 동북공심돈이었다면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건축물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동북각루(방화수류정)"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화홍문이 야경이 멋진 곳이라 한다면 방화수류정은 보는 순간 한순간에 반할 정도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처음 방문시에는 화홍문이 목적이었는데 어느새 방화수류정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습니다.

전체적인 규모는 작지만 상당히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지붕은 ㄱ자로 껵여 있지만 중앙의 팔작 지붕은 열십(+)자 형태를 띕니다. 맨 상층부에는 절병통을 얹어 장식을 했습니다. 2층 누각은 벽이 없는 대신에 ㄱ자로 꺽인 마루는 앉아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건축물이 이리저리 꺽인 모습과 계단을 올라서 다시 계단을 올라야 누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 또한 너무나 독특합니다.


    스님의 목공 기술로 만들어진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의 나무를 다듬는 작업은 굉흡(宏洽)스님이 만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굉흡 스님은 강원도 금화에서 올라와 144일간 수원화성에 머물며 장안문, 방화수류정, 북서포루의 서까래며 기둥을 다듬는 일을 했다 합니다. 스님의 신분으로 이러한 건축물을 만들어 낸 것을 본다면 실력이 대단했을 듯 합니다.

예상보다 많은 건축비가 들어가 담당자가 정조에게 불려갔지만 너무나 잘 만들어 내어 완공후 도편수 굉흡스님은 포상을 받았다 합니다. 수원화성의 많은 토목공사에 많은 스님들이 동원되었는데, 이는 불교 건축에서 스님들의 역할이 단순한 수행자가 아닌 일꾼으로써의 역할도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 정자는 바로 앞의 용지(龍地)쪽으로 성벽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성벽의 구멍은 방화수류정 아래 있는 문으로 들어가 쳐들어오는 적을 향해 공격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행으로써의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촬영하기엔 좋은 장소
만약 야경 촬영을 한다면 화홍문과 더불어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일듯 합니다. 각루에서 바로 도심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벽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을 찍기에 가장 좋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곳과는 달리 성벽의 높이가 다소 낮기 때문에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더더욱 좋습니다. 또한 화홍문과 동북각루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동북각루에서 바라본 모습

교통편의 불편함
이곳은 수원화성이면서 교통편이 다소 불편합니다. 다른 동북공심돈이나 장안문, 팔달문 같이 바로 주변을 통하는 버스편이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 300미터 떨어진 것을 본다면 일정부분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또는 수원화성을 전부 둘러 보는 중에 잠깐 둘러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곳과는 달리 주변의 낡은 건물들을 볼 때 개발이 덜 되어 있는 듯 보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주변 먹거리도 어려웠고, 수원화성 안에서도 가장 정리가 덜 된 곳 같아 보였습니다. 즉, 이러한 볼거리 문화재가 있는 곳 주변에 있을 법한 안내, 상점, 음식점 등을 찾아 보기 힘들었습니다. 멋진 건축물과는 대조적으로 아직은 쌀쌀한 바람에 몸 편히 앉아 쉴 수 없는 곳이 동북각루 였습니다.

발품으로써는 최적의 자리
방화수류정
주변에 볼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즉 교통편은 다소 불편할지라고 바로 옆에 화홍문이 있고, 수원천을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수원화성 박물관을 볼 수 있습니다. 동북각루에서 400미터 정도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장안문이 나옵니다. 그 장안문에서 500미터 정도 내려가면 화성행궁이 나옵니다.

즉, 짧은 시간에 수원 화성을 알차게 보고 싶다 한다면 이런 코스를 권합니다. 장안문 -> 화홍문 -> 동북각루 -> 화성행궁 박물관 -> 화성행궁. 3~4시간 코스면 동북쪽과 화성행궁까지 관람이 가능합니다.

※ 교통편과 약도는 블로그 하단에 있습니다.
※ 참고문헌 - 다음백과 문화 원형 사전 -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마루에 올라가 보면 이런 모양입니다.
주변으로 보이는 경치도 멋진 모습이지만 마루의 구조 자체도 일반적인 구조와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왼쪽 저 멀리 산 정상에 서장대가 보입니다.
점점 저녁시간이 되어가지만 쉽사리 이곳을 떠나기 힘듭니다.
무언가 발걸음을 붙잡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 화홍문 방화수류정 가는 방법

바로 주변에서 내릴 수 있는 버스는 없습니다. 어느 곳에서 내리든 300m정도는 걸어야 가실 수 있습니다. 버스는 상당히 많습니다. 수원역에서 가는 버스는 대부분 장안문을 거쳐 갑니다.

버스정류장 이름 :
장안문. 장안중. 북수동
11, 11-3, 13, 112, 13-3, 16, 16-1, 16-2, 20, 24, 25, 25-1, 25-1, 26, 27, 3, 32, 32-1, 32-1, 32-5, 35, 36, 39, 4-1, 45, 46, 50-2, 50-3, 50-4, 50-5, 50-6, 58, 60, 62-1, 63, 63-1, 64, 65, 650, 66, 66-4, 660, 7,7-2, 700-2, 77-1, 83-1, 88, 98, 400(좌)

관람시간 : 없음

CNN 선정, 꼭 가봐야 할 한국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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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사 석실분
삼성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에 위치한 횡혈식 석실분으로 화강암을 장방향으로 북침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석실의 규모는 남북 340cm, 동서 150cm, 높이 150cm이다. 덮개돌은 분실되어 없으며 석실의 주변에는 호석이 둘러져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석실 내부의 동.서.북벽은 화강암으로 쌓았고, 남벽을 한장의 판석으로 축조하였다. 동벽의 하단부에는 연도의 흔적과 석실내의 충적토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청자편과 벼루조각이 수습되어 고려시대에 축조된 무덤으로 추정된다.
- 안내판 -


안양사 위쪽에서 찍으면 뭔가 새로운 경치를 볼 수 있을까 해서 올라갔던 길이었는데, 숲 속에서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건물이라니 무슨 건물일지 다소 흥분이 되더군요.

저기에 뭔가 있다. 는 그러한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흥분. 제대로 길도 안보이는 곳에 나무를 헤치며 위로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보니 돌무더기가 보이고, 처음 보는 낯선 공간입니다. 그 앞에 안내판을 읽기 전에는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도무지 분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위에 안내판 글을 보면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실분이라 합니다.

"안양사 석실분"과 "석수동 석실분"을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석수동 석실분"은 지금 보실 "안양사 석실분" 보다 더욱 깔끔하고 보존도 잘 되어 있으며 무덤의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안양사 석실분"은 무덤의 형태가 많이 사라져 있고 현재는 비지정 기념물 입니다.

오르다 보니 길도 제대로 없는 곳을 왜 가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얼마전에 온누리님께서 문화재 답사를 왜 힘들게 하는지 적어 주셨는데 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왜 사서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그래도 꼭 누구에게 이런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보다는 그냥 "이런 외진 곳에서 우리의 역사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에 기쁨이 더욱 큰 듯 합니다.

조만간 석수동 석실분과 비교해서 사진을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간단한 비석으로 안내가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서울대를 알리는 곳에는 전부 철책으로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삼악산과 관악산의 대부분이 서울대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땅을 관리하고 있죠. 어마어마하게 낡아버린 서울대 출입금지 표시 바로 뒷편에 건물이 보입니다.
안내판의 글이 너무 많이 지워져서 따로 적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 상태만 본다면 뭐가 석실분인지 잘 구분이 안됩니다.
만약 지붕과 울타리가 없는 상태에서 봤다면 그냥 돌무더기로 봤을지도 모릅니다.높이 150cm라고 하니 아무래도 낙옆 아래 더 공간이 있을 듯 합니다.

석실은 중간 평평한 큰 돌이 있는 곳부터 위까지가 석실입니다. 주변으로 나뒹구는 돌들은 발굴 하기 전에 훼손되어 있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쌓인 낙옆 때문에 아래쪽으로 공간이 어떻게 나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뻥 뚫린 시야를 기대하고 올라갔는데 안양사 뒷편의 시야는 그다지 좋은편이 아니네요.

안양사 석실분은 지정 문화재가 아니지만 삼성산을 등산 하시는 분들은 아주 옛날 우리의 선조였을지도 모를 한 사람의 무덤입니다. 오고 가시면서 돌을 옮겨 놓는 행위나, 석실 내부에 들어가시는 행위는 하지 마시고 눈으로만 구경하시면 좋겠습니다. 무덤이잖아요.


※ 문화 발행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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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분 한분의 추천이 큰 힘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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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l 안양 l 안양 예술공원 l 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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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락방 Elements House
사미 린탈라 (Sami Rintala)

사미 린탈라는 1969년 핀란드에서 출생하였으며 현재 노르웨이 ARCH./NTNU Trondheim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0년 하바나 비엔날레, 2001년 요코하마 비엔날레에는 건축가가 아닌 작가로서 참가하며 건축과 미술 분야를 모두 다루고 있다.

육면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번 작품에서는 물, 불, 바람, 흙 등 자연의 요소들을 상징하는 철학적이고 기하학적인 개념적 건물을 구현한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건물의 안정감을 벗어난 시각적으로 위태로운 구조물을 디자인 하였다. -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 -

안양예술공원 웜홀 주변에 있는 조형물이다. 등산로 옆길로 난 작은 길로 올라가면 <하늘 다락방>이 나타난다. 마치 <헤이리>에서나 봄직한 그런 건물이 산 속에 있었다. 육면체의 사각형이 이리저리 튀어 나오고 조합된 모습의 건물이다. <방>의 이름을 가진 곳은 전부 외부를 시원하게 볼 수 있는 통유리로 만들어져 있고, 나무로 된 벽면을 보여준다.

일반 외부 벽면은 특수 페인트로 녹이 슨 모습을 보여준다. 왜 하늘 다락방인지는 이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건물의 내부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지붕이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그냥 하늘이 보인다. 지금 보이는 다락방과 지하에 있는 방만이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지붕이 있다.

한 여름밤에 모기장 하나 가지고 저 다락방에 올라가 산 새 소리 들으며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문이 없어서 조금 두렵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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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차 다시 가보니 현재는 출입이 안되게 막아 놓았더군요. 건물 상태가 너무 안좋아졌네요. 나무로 마감을 해 놓은 곳은 나무가 뒤틀리고 붕 떠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보이더군요.

역시 이런 건물 같은 작품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비싸게 작품 구입해서 관리 소홀로 망가지는 것을 보니 조금 답답하네요. 다시 찾았을 때도 계속 같은 상황이라면 안양시에 공식적으로 물어봐야겠습니다.



KOREA l 안양 l 안양 예술공원 l 거울미로 l 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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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미로 Dimensional Mirror Labyrinth
에페하인 - Jeppe Hein

산속에 거울로 이루어진 미로를 만들어 주변 환경을 그대로 표면에 비춰지게 한다. 이 거울 효과는 오브제와 주변 환경 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동시에 거울기둥 자체의 물질감을 지워버리면서 착시현상을 만들어낸다. 이 거울 기둥은 불교의 상징적인 숫자인 108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는 이 지역의 풍부한 불교문화에 주목하여 108번뇌를 상징하는 기둥을 즐거운 관람 오브제로 변화시켰다.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

이건 정말 볼 때마다 신기하다, 신기하다, 를 외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감쪽같이 사라진다. 마치 거울이 아니라 뒷 배경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맑은 날이면 맑은 날대로 흐린날이면 흐린날대로 다르게 보인다.

사진을 찍어 놔도 보면서도 헷갈린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신기해 하고 들어가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면을 본다. 가만히 지켜 보면 거울에 비친 모습이 현실인지 아니며 뒷 배경인지, 아니면 거울인지... 참고로 여기서 사진 찍으면 거울이 있어서 그런지 어수선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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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l 안양 l 안양 예술공원 l 전망대 l MVRDV l 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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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엠브이알디브이(MVRDV)

엠브이알디브이(MVRDV)는 디자인, 건축, 조경, 도시개발전문 건축가 그룹으로1991년 위니 메스, 제이콥 반 리스, 나탈리아 반 바리에에 의해 네덜란드의 로텔담에서 설립되었다. 로텔담의 인구밀도에 대한 연구를 기초로 한 도시개발 프로젝트, VPRO의 본사 건물, WoZoCo의 사옥과 같은 초기 프로젝트는 MVRDV를 세계 건축계로부터 주목을 받게 하였다.

안양예술공원에 설치된 전망탑은 삼성산의 등고선 데이터를 연장하여 산의 높이를 확장시킨 것으로, 전시, 공연, 전망 장소 등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 -


예술 공원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주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일반 전망대인줄 알았는데 안내판에 있는 문구를 보고 예술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MVRDV그룹이 만든 것이라는데 약간은 불안정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편안한 느낌으로 타워를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서 정말 좋았다.
ⓒ 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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