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보는것만으로 무서워? 역사는 더 잔인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소개해 드렸는데 이번에는 바깥에 있는 건물을 둘러볼까 합니다. 형무소의 몇몇 동은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건물만으로도 상당한 위압감을 줍니다. 감옥이 아니었다면 기숙사 같은 빨간색 벽돌로 올라간 2층 건물은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감옥이라고 느끼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는데 내부를 살펴보니 "감옥은 감옥이다"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더군요.

특히 내부에 들어서면 벽돌 건물 특유의 서늘한 냄새가 납니다. 지하실도 아닌데 지하실 같은 느낌이랄까. 중앙을 기준으로 부채꼴로 펼쳐진 건물 내부는 영화에서 보는 것과는 다소 다르더군요. 보통 영화에서의 감옥이라고 하면 쭉쭉 뻗은 중앙 통로 양쪽으로 감방만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큰 중앙 복도를 관리하는 부채가 쫙 펴진 모양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크게 두 군데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에서는 전시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전시관을 나와서 건물 뒤로 가면 감방을 볼 수 있게끔 관람 방향이 그려져 있습니다. 천천히 둘러보면 한 시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최소한 두 명이 같이 관람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얘기 하면서 둘러보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본격적으로 관람을 하게되면 중간중간에 이런 마네킹을 볼 수 있습니다. 어째 생긴게 그냥 한대 쥐어박고 싶고 이단 옆차기로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마네킹을 자세히 보면 뒷통수에 있는 머리는 맞은 것 같이 털이 많이 빠져 있고, 엉덩이에는 신발자욱이 있는 걸로 봐서... 관람객들이 지나가면서 한두대씩 때리는가 봅니다.
바로 옆에 있는 인왕산. 그리고 그 옆으로 쭉쭉 솟아 있는 아파트들. 그 옛날 이런 풍경을 상상이나 했었을지 모르겠네요. 아마 작은 창으로, 또는 마당에서 살짝살짝 보이는 산에 핀 꽃으로 계절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죄수들이 수감되었던 지하감옥입니다. 여 죄수들을 가두고 고문하기 위해 1916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일반 죄수동과는 다르게 지하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1934년 옥사를 고치며 매립한 이후 한동안 모르고 있다가 1992년 공원으로 만들 당시 발굴되어 복원한 건물입니다.
유관순굴로 불리우는 지하감옥의 모습입니다. 1920년 10월12일 고문과 영양실조로 이곳에서 순국하셨다 합니다. 유리벽 안에 지하에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도 참 답답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형장, 그리고 통곡의 미루나무
통곡의 미루나무가 있는 곳 입니다. 이곳에 들어가기전에 이 미루나무를 잡고 통곡을 했다 합니다. 왼쪽에 있는 나무는 상당히 큰데 비해 그 안쪽에 있는 나무는 확연하게 말라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작은 문이 있는 곳은 살아서는 나갈 수 없는 그런 곳입니다. 당시 일제는 이곳을 통해 몰래 시신을 공동묘지로 옮겨 묻었다고 합니다. 이후 감추기 위해 이곳을 폐쇄하였다가 1992년 조사 당시 발굴되어 복원한 공간입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안 좋은 곳이거든요. 그런데도 굳이 촬영을 하시는 사진작가님들.... 꼭 찍지 말라는데 들어가서 사진 찍는건 뭔 이유인지 말입니다.
사진 찍지 말라면 제발 찍지 좀 맙시다. 어쨌거나 이곳은 일제 강점기 당시 400여명이 이슬로 사라져간 가슴 아픈 곳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98년 역사관으로 개장한 이후에 매년 57만명이 찾는 곳이라 합니다. 외국인의 비중은 6만명 정도이고. 그 중 3만명은 일본인이라고 하네요. 서대문형무소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면 강제병합이 있기 전에는 감옥이라고 해봐야 몇개 없고, 그 규모도 작던 것이 일제 강점기 이후로 총 28개가 생겨납니다.

1930년 전국 감옥에 수감됐었던 재소재가 609만명이라고 통계에 나오고 있는데 당시 조선의 인구가 1878만명이라고 본다면 그야말로 식구중 한둘은 감옥에 갔다왔다는 말이 맞을듯 합니다. 하긴 강점기 시절에 감옥 밖에 있다고 자유롭지 않았으니 온 나라가 감옥이었겠죠.

전시물은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 다소 무서울 수도 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전시되어 있는 전시물 보다 역사는 더 잔인했다”라는 것이죠. 아이들과 같이 가셔서 얘기도 해 주시고, 뭔가 그 알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대문형무소 홈페이지 : http://www.sscmc.or.kr/newhistory/index_culture.asp
이용요금 및 관람 방법
이용요금 : 성인 : 1,500원 / 청소년, 군인 : 1,000원 / 어린이 500원
교통편 : 전철 3호선 독립문역 / 버스     간선버스(파랑) : 471, 701, 702, 703, 704, 720, 752 / 지선버스(초록) : 7019, 7021, 7023, 7025, 7712, 7737 /광역버스(빨강) : 9701, 9703, 9705, 9709, 9710, 9711, 9712 / 공항버스 : 6005(인천공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의주로 247 현저동 101번지 (우 120-080)
전화번호 : (02) 360-8590~1
1908년10월 21일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한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 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안고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과거의 아픔과 그 극복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자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자주 독립정신과 자우, 평화수호 정신을 기리는 교육의 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 서대문 형무소 -
그동안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곳입니다. 바로 주변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도, 종로구 여행을 할 때도, 주변으로 술한잔 하러 왔을 때도 일부러 찾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파출소라면 어렸을 때 삐라 줏어다 연필 바꾸러 몇 번 가봤던 것이 전부인지라 이런 감옥은 너무나 낯선 풍경입니다. 전시 공간으로 있어도 무거운 마음은 여전합니다.

찾았을 때는 외국인들도 꽤 많이 와서 구경을 하더군요. 단체 여행이 아니고 개별 여행객들 같았는데 상당히 놀라는 표정을 보이더군요. 전시물을 보면서 몇번이고 “oh..no..no....”를 연달아 내뱉더군요. 전시되어 있는 일제의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는가 봅니다. 분명 전시된 자료들은 혐오스럽거나 공포스럽지는 않지만 껄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 전시관, 박물관을 둘러 봤지만 가장 불편했던 "전쟁 기념관"과 더불어 이곳도 추가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무조건 한번은 와서 봤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경우는 그냥 뛰어다니며 기념사진 찍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다소 무겁더군요.

이곳을 관람하면서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나더군요.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 형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말초감각에 의해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습니다.”

감옥이라는 공간이 죄가 있던 없던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죄인으로써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분명 불편하고 껄끄러운 곳임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이곳을 꼭 봐야 하는 이유는... 이곳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호신용 지팡이 칼 : 열사들이 사용했던 비밀 칼 입니다. 지팡이처럼 들고 다니다가 위급할 때 뽑아서 사용했다 합니다.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지팡이처럼 보이는데 그 안에 저런 칼을 숨기고 다녔다니 놀라웠습니다. 위에 있는 칼은 곽한일 의병장이 사용하던 칼 이라고 합니다. 1906년 홍주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여러차례 감금과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1916년 일제에 의해 종신 집행 유예를 받고, 1936년 사망할 당시에도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합니다. 곽한일 의병장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희생된 사람들의 수많은 형무소 사진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가운데에 가까이 가면 영상이 상영 됩니다. "우리 이렇게 발전하고, 잘 살고 있으니 하늘에서 눈물 흘리지 말라"는 동영상이 나오는데 가슴 찡하더군요.


일제에 의해 강제 투옥되었던 수형자 기록이 벽에 빽빽하게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아들이었고, 딸이었을 수 많은 사람들의 사진.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일제에 의해 삶이 마감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지하(취조실)로 내려가는 계단 입니다. 그 옛날 이곳을 내려가던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이후엔 셀 수 없을 정도의 민주인사들이 걸었을 계단을 내려가 봅니다.


서늘한 지하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옛날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겠죠. 지금은 조명시설과 안내판등으로 무서움은 많이 사라진 듯 하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어쩔 수 없습니다.


입구 정면에 자리하고 있는 간수의 모습입니다. 이곳에는 이러한 인형들이 실제 있던 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인형으로 있는 것조차 보기 싫었는지 간수 폭행을 많이 하는가 봅니다. 마네킹 뒤편에 보면 곳곳에 사람들한테 한대씩 맞은 듯한 표시가 있더군요. 마음껏 때릴 수 있는 마네킨 하나 놓으면 어느정도 분이 풀릴텐데 말이죠.


다소 무거운 주제지만 저는 당당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곳은 꼭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제 바램은 해방 이후 군부독재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부르짖던 분들의 전시물을 추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방 이후 "민주" 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정치범이라는 죄명을 씌우고, 이곳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분들에 대해서는 근현대사 기억 상실증이 걸린 전시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제치하의 전시물로써 독립을 맞이 했지만 민주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곳을 여행이라는 것으로 소개하기에는 주제가 무거운 곳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가 알고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무조건 즐기는 곳만이 여행은 아니라는 것이죠. 혹자는 다 아는 곳을 소개하는 것은 추천도 누르기 싫다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옳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현재의 문제를 "왜?"라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되는 여러 일들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실 겁니다.
서대문형무소 홈페이지 : http://www.sscmc.or.kr/newhistory/index_culture.asp
이용요금 및 관람 방법
이용요금 : 성인 : 1,500원 / 청소년, 군인 : 1,000원 / 어린이 500원
교통편 : 전철 3호선 독립문역 / 버스     간선버스(파랑) : 471, 701, 702, 703, 704, 720, 752 / 지선버스(초록) : 7019, 7021, 7023, 7025, 7712, 7737 /광역버스(빨강) : 9701, 9703, 9705, 9709, 9710, 9711, 9712 / 공항버스 : 6005(인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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