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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ravel

삼일독립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기념비 l 수원화성 #02

by 더공 2011. 1. 18.


우리 주변에는 정말 기념탑이 많습니다. 어지간한 유명한 곳이라면 다 하나씩 기념탑이 있네요. 물론 제가 사는 안양에도 "충혼탑",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등이 있습니다. 이번에 둘러본 수원화성에도 "삼일운동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갔는지 눈이 단단하게 보도블럭처럼 변해 있네요. 그런데 수원화성 관광 지도에도, 홈페이지에서도 "삼일 독립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군요.

기념비가 있는 이곳은 흙으로 되어 있었는데 2010년 보도블럭도 설치가 되고, 탑 뒷편으로 무궁화 나무도 심고 하면서 주변 정리가 되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팔달산 수원화성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냥 휙 휙 지나가시더군요. 그런데 이러한 기념비와 기념탑이 세워졌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니 꼼꼼하게 돌아봤습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는 팔달산 수원화성 서남암문에서 바라보면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뒤에는 안테나 탑이 있으니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
삼일 독립 기념탑은 단기 4302년(서기 1969년) 3월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의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광복후 중포산에 세운 적을 3.1 동지회가 1969년 10월15일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 놓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원래 중포산(中布山)에 세워진 3.1 독립 기념탑은 왜정 수원경찰서 사법계주임 노구찌(野口) 소위의 순국비를 허물은 자리에 세운 것이었다. 삼일동지회는 1969년 4월12일 창립총회 때 3.1 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3.1독립기념탑 건립과 동공원에 있는 대한독립기념비를 같은 자리에 이전하기로 결의 하였고, 수원시를 비롯한 각급 기관과 학교 및 학생들의 자율적이 협찬을 받아 건립하게 되었다.
- 안내판 내용 발췌 -


수원의 3.1 운동
일제 강점기 당시 수원면에서 처음 만세 운동이 일어난 것은 3월 1일 화홍문에 서였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정황이나 증거가 미약하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할 때, 3월 16일에 벌어진 만세 운동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날은 장날이었는데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와 창룡문쪽 연무대에서 각 각 수백 명이 만세를 부르며 종로를 향하여 행진을 했다.

그후 3월 23일에는 수원역 근처 서호에서 약 7백명이 시위를 벌였고, 3월 25일에도 25명의 청년학생들 과 노동자들이 시장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3월 25일에 있었던 시위 주동자의 검거에 대한 항의 표시로 3월 27일에는 인근 상인들이 상점 문을 닫는 철시(撤市) 투쟁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 때 약 40%에 달하는 상점이 문을 닫았 다고 한다.

3월 28일에도 3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불렀고, 3월 29일에는 수원 기생 조합의 기생 약 30명이 자혜 병원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날 밤에는 상인과 노동자들까지 합세하여 독립 만세를 불렀고, 일본인 상점에 돌을 던지는 등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 수원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홈페이지보러가기)-



대한독립기념비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단기 4281년(서기 1948년) 8월15일 수원 시민이 세운 기념비이다. 이 비는 수원시민과 학생일동이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원 동공원에 건립하였던 것인데, 1969년 수원 시민의 날인 10월15일 3.1 독립 기념탑과 함께 3.1 동지회가 이곳 수원시 팔달산 중턱으로 이전설치 하였다. 높이는 4m이다. - 안내판 내용 -





보통 기념비는 앞면에 비의 이름을 쓰고, 뒷면에는 내용을 쓰는데 이 기념비는 앞면과 뒷면 모두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옆면에는 단기 4281년 8월15일 이라는 건립 년도가 나옵니다.

위에 안내판의 내용을 보자면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가 1948년에 먼저 건립이 되었고, 그 이후에 "삼일 독립 기념탑"이 1969년에 세워졌습니다. 3.1운동 기념탑을 세우면서 수원 동공원(수원 팔달구 화서동)에 세워져 있던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도 같이 옮겨와서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된 것입니다.






노구찌(野口)는 1919년 3월19일 만세 운동중인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자 성난 군중들이 노구찌를 돌로 쳐 죽입니다. 이후 일제는 노구찌의 죽음에 "순국"이라는 이름으로 "순국비(기념비)"를 세웁니다.


이 기념비는 위의 내용에서도 있듯이 수원경찰서 사법계 "노구찌(野口)"의 순국비를 1945년 광복이 되자마자 수원 시민들이 몰려가서 허물어 버리고, 1948년 그 자리에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요즘에도 비석이나 기념비 하나 세우려면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힘들죠. 그 어렵던 시절에 수원 군내 학생과 읍민 일동, 유근홍, 이상훈 등이 주축이 되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다하니 일제에 의해 강점 당했던 그 시절의 분노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보이는 비석의 바로 아랫 기단은 노구찌 기념비를 세웠던 기단을 그대로 썼다고 합니다. 노구찌 기념비는 산산조각내 버리고 그 아랫 기단은 더 큰 기념비로 눌러버렸으니 "대한독립기념비"가 세워질 당시의 수원 시민들의 기쁨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안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동공원에 이 기념비가 세워졌던 곳이 궁금하더군요. 지도를 보면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습니다. 동공원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중포산으로 불리우는 작은 언덕이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 언덕에 공원을 만들고 중포산이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동공원"으로 불리워서 지금까지 이어졌다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동공원에도 한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그냥 우연히 스치듯 지나치는 작은 것들, 이러한 기념비 하나하나에도 커다란 역사가 숨어 있는 것을 알 때의 느낌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쁩니다. 전에 부산에서 민주공원을 둘러보며 "아.. 여기에서도 치열한 삶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한 느낌을 수원화성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양과는 가까운 곳이라 별다른 생각을 못했었는데 수원 또한 일제 강점기에 삼일운동을 했었고, 수원의 역사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원화성 운영재단에 연락해 본 결과 홍보 전단지는 2011년 이미 인쇄가 완료되어 수정이 어렵겠지만, 수원화성 홈페이지에는 조만간 기념비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올리겠다는 말씀을 하시네요. 잘 알지도 못하는 블로거가 건 한통의 전화로 홈페이지를 수정하시겠다는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 일부 자료에서의 통일된 문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은 "운동"과 "독립"이라는 말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탑의 이름이 "독립"으로 쓰이고 있으니 모든 홍보 안내문구는 "삼일독립기념탑"으로 바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자료 : 수원시청 홈페이지, 수원화성 홈페이지, 3.1운동 기념탑 안내판,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안내판, 수원화성 운영재단 관계자. 수원 박물관 한동민 학예팀장님 감사합니다.

- 내용중 틀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이나 방명록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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