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야경까지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화성 돌아보고, 저녁 먹고, 커피 한잔 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깜깜해졌더군요. 그냥 가려다가 다시 한번 발길을 돌려 보았는데 정말 건물 하나하나, 성벽 하나하나가 보석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더군요. 성벽에 오르자 빛의 길이라는 문구가 딱 생각나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성벽은 빛의 길, 각 건물은 별..

손각대 촬영이라 칼 같은 선명함은 떨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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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분 한분의 추천이 큰 힘이 됩니다. ^^ ----------------
수원화성
지난번 포스팅에서 살짝 언급이 됐듯이 수원화성에서의 각 구조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지붕이 없으면서 외벽으로 돌출된 곳은 " 치"를 붙이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서쪽에 위치한 "치"로 "치"가 두개 이상 있으면 "서일치", "서이치"라고 이름을 외우면 쉽습니다. 포루는 포를 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건물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그 포루가 동쪽에 있으면 동포루, 서쪽에 있으면 "서포루"라고 부르면 됩니다.

보면 볼 수록 이렇게 포스팅을 하면 할 수록 수원 화성에 무한한 애정이 마구 솟아나네요. 서장대(화성장대)에서부터 눈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해서 더이상의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내리는 눈이 카메라에 수북히 쌓이면서 물이 들어갈까봐  연신 털어내야 했습니다. 비닐봉지라도 하나 들고 왔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카메라를 꺼냈다 집어 넣었다, 수건으로 연신 젖은 카메라를 닦아내야 했습니다.

원래는 수원 화성이 거리가 좀 되더라도 한바퀴 크게돌 생각을 했었는데말 그대로 폭설이 내려 화서문에서 끝마쳐야 했습니다. 가까운 시일안에 다시 한번 수원 화성의 못 본 동쪽 까지 싹~ 다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수원화성
서포루
서장대에서 서이치를 지나 쭉 내려오다 보니 포루가 보입니다. 눈을 좀 피할 수 있을까 했는데.. 문이 꼭꼭 잠겨 있고 처마가 상당히 좁아서 눈을 피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내부가 어떻게 생격는지도 몰랐는데 그냥 작은 구멍에 카메라 올려 놓고 셔터를 눌러 봤습니다. 남포루에서도 내부를 찍어 본다고 했었는데 자세가 영 안좋아서 잘 안나왔느데 이곳에서 찍은 내부 사진은 어느정도 잘 나온 듯 합니다.
서포루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네요. 아래에서 화살을 쏘던 뭘 하던 지붕이 있어서 이곳에서 포를 쏜다면 적은 정말 뚫어내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듯 합니다. 까치발에 한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문 위에다 올려 놓고 찍어야 해서 많이는 못 찍었는데 지금 보니 바닥도 찍었어야 했는데 살짝 아쉽습니다.
수원화성
포루는 2층?
서포루의 외관 모습입니다. 위에서 봤을 때는 그냥 바로 포루만 있는 것 같았는데 외부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포루의 정확한 내부 구조를 알 수는 없지만 2층에서는 포를 쏘고, 아래쪽에서도 적을 향해 공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포루의 내부 구조에 대한 것을 알 수가 없네요. 조만간 수원화성 박물관에 가서 확인을 한번 해 봐야겠습니다. 분명 2층인데 다른 출입구가 없으니 더욱 궁금증만 쌓여갑니다.
수원화성

수원화성 수원화성 수원화성

수원화성

수원화성
서북각루
성곽의 돌출된 요지중 비교적 높은 위치에 누각을 세워 성곽 주변을 감시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물로 화성에는 4개소가 있다. 서북각루는 팔달산의 북쪽 중턱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누각의 아래에는 온돌방을 만들어 군사가 숙식을 하며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 - 수원시 홈페이지 -

눈이 상당히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서북각루 계단에 잠깐 앉아서 카메라 손질도 하고 일정 점검도 해 봅니다. 딱히 답이 없습니다. 눈이 많이 올 때 방수포라도 준비 했어야 했는데 준비를 못했습니다.

수원화성
서북각루를 살펴보니 특이합니다. 위쪽은 개방형으로 생겼는데도 굴뚝이 있는 건물입니다. 즉 온돌건물이라는 것이죠. 각루 뒷편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아궁이도 보입니다. 옆에 있는 문을 통해서 내부에서 온돌방에서 쉴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1층 벽돌로 되어 있는 부부이 방 입니다. 전체적인 크기는 성인 한명이 서기에는 높이가 작고, 발 뻗고 누우려면 다리를 살짝 굽혀야 할 정도입니다.

크기는 작지만 한겨울 추위를 피할 수는 있을 듯 합니다.특히 눈내리고 날씨가 출사 나갔던 날처럼 모질 때에는 따뜻한 온돌방에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서 쉬었을 것을 생각하니 참 효율적이다 싶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평균 키를 생각한다면 적당한 크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면 우측으로 보면 작은 문이 하나가 있습니다. 뒤쪽으로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작은 방은 뒤쪽까지 이어지지 않고 규모가 상당히 작습니다. 성인 세명 들어가서 누우면 딱 맞을 정도입니다.
수원화성

아궁이의 용도는?
작은 아궁이가 보입니다. 온돌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되는데 아궁이의 크기가 생각처럼 크질 않습니다. 일반적인 아궁이라면 구멍이 훨씬 커야 할텐데 구멍이 너무 작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보신 분이라면 아실텐데요.

저 상태에서 아궁이가 깊어지면 불이 잘 붙지 않고 쉽게 꺼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숯을 넣기에도 좁아 보이고... 그런데 곳곳에 남아 있는 그을음의 흔적을 봤을 때 분명 불을 땠던 것 같습니다. 수원 화성을 깊이 알고 싶은데 그럴 수록 점점 궁금한 것도 많아집니다.

※ 다시 알아보니 원래는 아궁이가 일반 아궁이처럼 상당히 큰데 화재위험 때문에 아랫쪽 구멍쪽을 막아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옆에 있는 그을음은?
그러나 그 옆의 그을음 흔적은 본래의 위치와는 다소 떨어진 곳에서 불을 피웠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요즘 문화재 방화사건이 많이 일어나는데 수원화성 또한 2006년에 서장대에 방화로 인해 2층 누각이 소실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수원 화성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많은 CCTV로 관리되고는 있지만 이렇게 사각지대. 건물 뒷편은 다소 부족한 듯 합니다.


수원 화성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면서 많이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이곳은 한번의 여행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수원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분과 같이 한번 둘러보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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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계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이상하게 수원 화성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단단해 보이는 성벽과 곳곳에서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건물과 성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러한 문화재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분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동네는 그냥 등산화 차림의 등산객들만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이런 곳에서 사진기 들고 왔다갔다 하는 여행객들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해 봅니다.

지난 번에 소개했던 서남암문과 대한독립 기념탑을 지나면서 시야가 뚫리는 것을 느낍니다. 점점 수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눈이 드문드문 치워진 수원 화성길을 걷는 것은 그 시절 겨울의 수원 화성에서 지냈을 사람들을 조금이나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수원화성을 둘러 보시려면 이곳에서 표를 구입해야 합니다. 사실 티켓을 구입하는지 모르고 올라갔다가 살짝 놀랐습니다. 비싼 가격은 아니어서 그냥 바로 구입(1천원) 했습니다. 수원 시민은 주민등록증 지참시에 무료라고 합니다. 이런거 보면 정말 수원 시민분들이 부럽더군요. 바로 옆에 있는 종각은 "효원의 종"으로 불리웁니다.
효원의 종
1,000원을 내면 3회 타종이 가능합니다. 1타는 부모의 건강, 2타는 가족의 건강, 3타는 나 자신을 위한 타종이라고 합니다. 누가 칠까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종을 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종 소리는 생각보다 은은하고 묵직합니다. 다음에 방문을 하게 되면 저도 종 한번 치고 와야겠습니다.
티켓을 구입하고 조금 걸어가다 보니 바로 앞에 제가 가장 보고 싶었던 서장대가 보입니다. 느낌은 남한산성에 있는 수어장대와 비슷합니다.
서암문
서장대로 가다가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길이 보입니다. 상당히 멋진 길입니다. 돌과 벽돌로 만들어진 이 통로는 내부에서 볼 때는 평범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 봤을 때는 상당히 구불구불 되어 있습니다. 즉 안에서는 나가기가 쉬워도 밖에서 들어오려면 정말 목숨 걸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서암문 아래 바깥쪽에서 바라본 수원화성 성곽의 모습입니다.
서남문 바깥쪽의 모습입니다. 위쪽 성벽을 따라 내려온다면 한번 꺽어 들어와야 하고, 성벽 아랫쪽에서 올라온다면 속도는 더딜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곳을 통해 쳐들어 들어갈 경우에는 정말 마음 단디하게 먹어야 했을거라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성벽 외곽으로 난 길 바로 뒤는 바로 팔달산의 경사가 그대로 있어서 상당히 공략하기 힘들었을거라 보여집니다.



서장대쪽으로 올라오는 길 입니다. 저는 저쪽 계단으로 올라온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계단이 많네요. 운동 목적이라면 이 계단을 하루에 세번씩만 왕복한다면 튼튼한 허벅지를 가질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서장대(西將臺)







서장대에서는 수원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아래에는 화성행궁이 그대로 다 보입니다. 이곳에서 군사도 훈련시키고,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 확인을 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을 듯 합니다. 저 아래에서는 서장대의 외간이라는 깃발을 보고서 서장대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외간
외간이라는 깃발입니다. 팔달산 아래에서 서장대에서 어떤 행사를 하는지 이 깃발을 이용하여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어서 활짝 펴진 깃발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상당히 큰 깃발입니다.
서노대(西弩臺)

쇠뇌 - 한국브리태니커회사

"노대란 누각없이 전돌을 쌓아 높은 대를 만든 시설물로 적의 공격을 항상 감시해서 대와 성 전체에 오방색 기로 신호를 하며 적이 근접했을 때 쇠뇌를 쓸 수 있도록 만든 진지입니다. 서노대는 서장대 옆에 만들어져 있으며 성밖의 서쪽이 한눈에 들어와 적으로부터 군사지휘소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 수원 시청 홈페이지 -
 
쇠뇌란 활의 일종으로 일반적인 활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서 쇠뇌는 쇠로 만들어져 있어진 석궁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화승총이 나오기 까지 가장 큰 화력을 가진 무기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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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정말 기념탑이 많습니다. 어지간한 유명한 곳이라면 다 하나씩 기념탑이 있네요. 물론 제가 사는 안양에도 "충혼탑",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등이 있습니다. 이번에 둘러본 수원화성에도 "삼일운동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갔는지 눈이 단단하게 보도블럭처럼 변해 있네요. 그런데 수원화성 관광 지도에도, 홈페이지에서도 "삼일 독립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군요.

기념비가 있는 이곳은 흙으로 되어 있었는데 2010년 보도블럭도 설치가 되고, 탑 뒷편으로 무궁화 나무도 심고 하면서 주변 정리가 되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팔달산 수원화성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냥 휙 휙 지나가시더군요. 그런데 이러한 기념비와 기념탑이 세워졌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니 꼼꼼하게 돌아봤습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는 팔달산 수원화성 서남암문에서 바라보면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뒤에는 안테나 탑이 있으니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
삼일 독립 기념탑은 단기 4302년(서기 1969년) 3월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의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광복후 중포산에 세운 적을 3.1 동지회가 1969년 10월15일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 놓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원래 중포산(中布山)에 세워진 3.1 독립 기념탑은 왜정 수원경찰서 사법계주임 노구찌(野口) 소위의 순국비를 허물은 자리에 세운 것이었다. 삼일동지회는 1969년 4월12일 창립총회 때 3.1 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3.1독립기념탑 건립과 동공원에 있는 대한독립기념비를 같은 자리에 이전하기로 결의 하였고, 수원시를 비롯한 각급 기관과 학교 및 학생들의 자율적이 협찬을 받아 건립하게 되었다.
- 안내판 내용 발췌 -


수원의 3.1 운동
일제 강점기 당시 수원면에서 처음 만세 운동이 일어난 것은 3월 1일 화홍문에 서였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정황이나 증거가 미약하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할 때, 3월 16일에 벌어진 만세 운동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날은 장날이었는데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와 창룡문쪽 연무대에서 각 각 수백 명이 만세를 부르며 종로를 향하여 행진을 했다.

그후 3월 23일에는 수원역 근처 서호에서 약 7백명이 시위를 벌였고, 3월 25일에도 25명의 청년학생들 과 노동자들이 시장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3월 25일에 있었던 시위 주동자의 검거에 대한 항의 표시로 3월 27일에는 인근 상인들이 상점 문을 닫는 철시(撤市) 투쟁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 때 약 40%에 달하는 상점이 문을 닫았 다고 한다.

3월 28일에도 3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불렀고, 3월 29일에는 수원 기생 조합의 기생 약 30명이 자혜 병원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날 밤에는 상인과 노동자들까지 합세하여 독립 만세를 불렀고, 일본인 상점에 돌을 던지는 등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 수원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홈페이지보러가기)-



대한독립기념비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단기 4281년(서기 1948년) 8월15일 수원 시민이 세운 기념비이다. 이 비는 수원시민과 학생일동이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원 동공원에 건립하였던 것인데, 1969년 수원 시민의 날인 10월15일 3.1 독립 기념탑과 함께 3.1 동지회가 이곳 수원시 팔달산 중턱으로 이전설치 하였다. 높이는 4m이다. - 안내판 내용 -





보통 기념비는 앞면에 비의 이름을 쓰고, 뒷면에는 내용을 쓰는데 이 기념비는 앞면과 뒷면 모두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옆면에는 단기 4281년 8월15일 이라는 건립 년도가 나옵니다.

위에 안내판의 내용을 보자면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가 1948년에 먼저 건립이 되었고, 그 이후에 "삼일 독립 기념탑"이 1969년에 세워졌습니다. 3.1운동 기념탑을 세우면서 수원 동공원(수원 팔달구 화서동)에 세워져 있던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도 같이 옮겨와서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된 것입니다.






노구찌(野口)는 1919년 3월19일 만세 운동중인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자 성난 군중들이 노구찌를 돌로 쳐 죽입니다. 이후 일제는 노구찌의 죽음에 "순국"이라는 이름으로 "순국비(기념비)"를 세웁니다.


이 기념비는 위의 내용에서도 있듯이 수원경찰서 사법계 "노구찌(野口)"의 순국비를 1945년 광복이 되자마자 수원 시민들이 몰려가서 허물어 버리고, 1948년 그 자리에 "대한민국 독립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요즘에도 비석이나 기념비 하나 세우려면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힘들죠. 그 어렵던 시절에 수원 군내 학생과 읍민 일동, 유근홍, 이상훈 등이 주축이 되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다하니 일제에 의해 강점 당했던 그 시절의 분노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보이는 비석의 바로 아랫 기단은 노구찌 기념비를 세웠던 기단을 그대로 썼다고 합니다. 노구찌 기념비는 산산조각내 버리고 그 아랫 기단은 더 큰 기념비로 눌러버렸으니 "대한독립기념비"가 세워질 당시의 수원 시민들의 기쁨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안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동공원에 이 기념비가 세워졌던 곳이 궁금하더군요. 지도를 보면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습니다. 동공원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중포산으로 불리우는 작은 언덕이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 언덕에 공원을 만들고 중포산이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동공원"으로 불리워서 지금까지 이어졌다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동공원에도 한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그냥 우연히 스치듯 지나치는 작은 것들, 이러한 기념비 하나하나에도 커다란 역사가 숨어 있는 것을 알 때의 느낌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쁩니다. 전에 부산에서 민주공원을 둘러보며 "아.. 여기에서도 치열한 삶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한 느낌을 수원화성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양과는 가까운 곳이라 별다른 생각을 못했었는데 수원 또한 일제 강점기에 삼일운동을 했었고, 수원의 역사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원화성 운영재단에 연락해 본 결과 홍보 전단지는 2011년 이미 인쇄가 완료되어 수정이 어렵겠지만, 수원화성 홈페이지에는 조만간 기념비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올리겠다는 말씀을 하시네요. 잘 알지도 못하는 블로거가 건 한통의 전화로 홈페이지를 수정하시겠다는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 일부 자료에서의 통일된 문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삼일 독립 기념탑"은 "운동"과 "독립"이라는 말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탑의 이름이 "독립"으로 쓰이고 있으니 모든 홍보 안내문구는 "삼일독립기념탑"으로 바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자료 : 수원시청 홈페이지, 수원화성 홈페이지, 3.1운동 기념탑 안내판,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안내판, 수원화성 운영재단 관계자. 수원 박물관 한동민 학예팀장님 감사합니다.

- 내용중 틀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이나 방명록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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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Prolog]
수원화성. 가까운 안양에 살면서도 처음으로 가본곳. 사실 많은 분들의 블로그 소개를 볼 때마다 꼭 한번 가보겠노라고 생각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몇번이나 수원을 들락거리면서도 쉽게 가보질 못한 곳이었는데 어느 아주 많이 추운 겨울날 가보게 되었네요. 우선 수원역에서 팔달문 가는 버스를 타고 수원 팔달문에서 내립니다.

수원 팔달문에서 내려 길은 건너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바로 이런 장면이 펼쳐집니다. 계단을 보면서 순간 "헉" 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긴 계단이 저기 꼭대기까지 이어집니다. 그동안 수원화성을 봐 오면서도 이런 계단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길더라고요.

저기 보이는 곳 까지 눈이 치워져 있고 그 위에는 눈이 덜 치워져서 사진 찍다가 눈 위에서 한바탕 굴러야 했습니다. 나중에 이곳에 가셔서 낯선 수컷의 향기가 나는 것 같으면 제 향기인줄 아시면 됩니다.

바로 전 포스팅에서도 밝혔듯이 이런 계단쯤은 숨 한번에 오를 정도의 체력이 필요합니다.


     코스 선정에 주의
수원화성에 대한 느낌은 첫번째로 상당히 많이 걸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접한 수원화성에 대한 느낌 보다 직접 가서 봤을 때 그 넓이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넓었습니다. 처음 계단을 올라갈 때만해도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열차나 시티투어 버스를 타지 않으신다면 잠깐 동안의 방문으로 전부 다 보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성곽 둘레만 5.7km에 달하며 사진까지 찍으면서 둘러 보신다면 반나절은 훌쩍 지나갑니다. 거기다가 화성행궁까지 보신다면 더욱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팔달문을 시작으로 계단위의 서남각루(화양루)를 시작으로 효원의문 - 서장대 - 화서문 까지 가서 화성행궁까지 보는 것도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하루에 다 보시려면 엄청난 허벅다리 힘으로 성곽을 돌며 사진을 찍고, 화성행궁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화령전을 보시고 나와서 화홍문의 야경까지 찍어야 합니다. 힘들죠.


     안내 데스크를 적극 이용
수원역 앞의 안내소에 들어가서 물어보시거나 곳곳에 위치한 안내소에 들어가서 "오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고, 어디어디를 보고 싶다"고 말씀을 하시면 코스를 잡아 주실 겁니다. 초행길이라면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도 헷갈릴텐데 그런한 것까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국말이 서투신 분이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입장 요금도 있습니다
이것도 처음 알게된 사실입니다. 수원 화성은 입장요금이 있습니다. 팔달문에서 서남각루(화양대)까지 올라가는 것은 요금을 받지 않지만 서포루 앞 효원의 종 부터 서장대까지 가시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수원화성(성곽)만 둘러보는 비용은 성인 1천원입니다. 통합권을 사시게 되면 화성행궁과 박물관등을 보실 수 있는 비용이 조금 절약 되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일정이 잘 짜여지지 않았다면 통합권 사시고 박물관은 못보고 오실 수 있습니다.

수원 시민(주민등록증 지참)은 무료라고 하네요. 얼마나 부럽던지..



서남각루(화양루) 계단을 오르기 전에 요금 안내표가 있습니다. 서남각루까지는 그냥 올라가셔도 됩니다. 이곳에서는 수원화성에 대한 간략한 안내지도와 설명을 듣고 올라가시면 좋습니다.


수원 팔달문 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전봇대에 살짝 가려진 곳이 팔달문입니다. 현재는 보수 공사중으로 차양막이 쳐져 있어서 지붕만 살짝 보이는 상태입니다.


계단의 중간쯤 올라가면 화성열차 타는 곳이 어느쪽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날씨가 흐린날이나 기상 상태가 안 좋은날은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운행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안내데스크에서 물어보시면 편합니다. 저는 튼튼한 허벅지만 믿고 올라갑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눈이 녹기도 전에 내리고 추워지고..


이곳부터는 눈이 잘 안치워져 있습니다. 우측의 계단을 통해서 계속 올라가야 됩니다.


홍난파 노래비
고향의 봄을 남긴 홍난파의 노래비가 있네요. 홍난파는 당시 경기도 화성군 수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노래비가 세워진 듯 합니다. 홍난파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링크를 따라가 확인하세요.


이제는 성곽을 따라서 올라갑니다. 잠깐 동안 올라온 것 같은데 어느새 수원 시내가 점점 발 아래로 보입니다.


남포루
왼쪽에 왠 지붕이 보입니다. 성곽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남포루입니다.
수원 화성에는 총 다섯개의 포루가 있으며 지대 위에 대포 발사를 위해 뚫어 놓은 혈석이 있습니다. 직접 봤을 때는 거의 틈이 없는 건물로써 적의 화살이나 조총 같은 것으로도 공략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포루의 성곽쪽 모습입니다. 벽돌로 지붕까지 쌓아 올렸으며 안에서 포를 쏘기에 적당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특히 보시면 알겠지만 벽의 두께가 상당히 뚜꺼워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함을 보여줍니다.


굳게 닫혀 있는 문.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기에 발걸음을 돌립니다.






드디어 서남암문에 왔습니다. 이런 계단쯤이야 너무 쉽죠. 튼튼한 허벅지만 있으면 됩니다.








올라온 계단을 보니.. 끝이 안보이는군요. 하루에 두번씩 왕복 한다면 상당한 운동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곳이 바로 옆에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서장대"쪽으로 바라본 풍경입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얼마나 멀지 알 수 없습니다. 나무에 가려져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서남암문(西南暗門)
서남암문입니다. 입구의 폭은 작지만 상당히 견고해 보입니다. 성곽 안쪽의 모습이며 밖으로 통하는 길은 외부의 길이 아니라 성곽의 윗부분입니다. 암문이라 하여 수컷 암컷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암(暗)의 한자어를 볼 때 숨기는 기능의 뜻으로 쓰입니다.

서남암문(西南暗門)은 서남각루(화양루)로 이어지는 용도가 시작되는 곳으로, 암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때문에 다른 곳과는 달리 위에 누각이 있다.

암문은 바깥으로 난 비밀통로로 성곽의 굽은 부분이나 후미진 곳, 수목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곳 등에 설치하였다. 이곳으로 적에게 보이지 않고 사람이 드나들고, 가축, 양식, 무기 등을 공급하였다. 문의 크기도 겨우 말 한 필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고 문 위는 보통 성곽과 같게 축조하였다.

전쟁시에는 주변에 쌓아둔 돌과 흙으로 암문을 메워 적군이 들어 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암문에는 일반적으로 위에 건물을 세우지 않지만 서남암문에는 포사를 세웠다. 포사는 공격 시설이 없고, 적을 감시하고 신호를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이곳은 팔달산 서남쪽의 높은 곳이어서 서남방향으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적을 감시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한 것이다. 서남암문 위에 지어지 일종의 경비초소라 할 수 있다.

- 안내 팜플렛 발췌-



서남암문 천장에 그려진 그림. 컬러가 상당히 돋보이는 그림입니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용도(甬道)
처음에는 길 인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성곽의 윗부분으로써 "서남각루"로 가는 성곽길 입니다.
눈으로 바닥이 단단하게 굳어 있어서 걷기에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용도는 양쪽에 담을 쌓은 길이란 뜻으로, 팔단산 남쪽 능선에 성벽에서 대롱처럼 길게 나와 있다. 팔달산 남쪽 능선에 오르면 팔달문을 비롯하여 창룡문과 화홍문 일대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만약 적군이 이곳을 점령하면 화성 안의 동정을 환히 알게 된다. 때문에 팔달산 남쪽 능선까지 성곽을 연장하여 용도를 만들어 방어력을 높인 것이다. - 안내 팜플렛 발췌 -



뒤돌아 바라본 "서남암문"의 모습입니다. 각루를 넘어 온다 하더라도 적이 이곳을 통과하기란 목숨을 내 놓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의 위용입니다. 성벽 위의 성벽입니다. 저 엄청나게 큰 바윗돌로 벽을 쌓고 그 위에 다시 단단한 벽돌로 쌓아 올린 건축물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이어 터뜨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왕의 남자를 촬영한 곳이기도 한 곳입니다.


이제 계단 하나 올라왔을 뿐인데... 미끄러운 길을 무거운 어안랜즈 장착한 상태로 넘어지지 않으려 올라와서 그런지 팔에 힘줄이 불끈불끈 솟아나네요. 분명 넓은 화각인데 사진이 작아서 그런지 별로 효과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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