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는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쓴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이다. 후한의 운세가 기울기 시작하던 189년부터 진나라의 사마염(司馬炎)이 천하를 통일하는 280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총 6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서(魏書) 30권(본기 4권, 열전 26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으로 구성돼 있다. (삼국지는 원래 위지, 촉지, 오지라는 표제로 구성되었는데, 송나라 이후 위서, 촉서, 오서라는 표제를 더 많이 사용해왔다.) 삼국지는 '사기(史記)', '한서(漢書)'의 체계를 따라 인물전기 위주로 짜여 졌으나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연표를 담은 표(表)나 당시의 경제·문화를 기록한 지(志 혹은 書)가 없다.
삼국지는 위나라(魏)를 정통 왕조로 보고 쓰여진 역사서이다. 진수는 황제들의 전기인 본기를 위나라의 황제들로 엮었으며 '촉'과 '오'의 황제는 열전에 편입시켰다. 제호를 붙인 것은 위나라뿐이며 촉의 유비와 유선은 각각 선주(先主)와 후주(後主)로 기술하였고, 오의 제왕들은 주(主)를 붙이거나 심지어 이름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이러한 체계는 진수가 벼슬을 하던 진나라가 위(魏)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를 비정통으로 본 데에 따른 것이다. 진수의 이러한 사관(史觀)은 훗날 습착치(習鑿齒)의 '한진춘추(漢晉春秋)'나 주희(朱憙)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촉을 정통으로 보면서 논쟁을 불러 오게 되었다.(조위/촉한정통론에 대해서는 정통론을 참조하라.) - 위키백과 사전 -
인천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삼국지 벽화거리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오른편은 인천화교중산학교의 뒷 담입니다. 삼국지의 내용을 타일에 총 80컷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날씨만 춥지 않다면 좀 꼼꼼하게 봤을텐데 날씨도 날씨지만 도로가.. 눈이 슬러시로 바뀌었고,그 슬러시는 추운 날씨 때문에 얼어 붙어 있어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염화칼슘 좀 뿌리고 슬러시로 된 눈을 길 양쪽으로 좀 치워 놓으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차이나타운 거리가 얼마나 넓다고 그냥 방치 해 놓는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학교 뒷마당 아닙니까. 주변 가게에서 한분씩만 나와서 정리하면 30분도 안걸릴텐데.. 어쨌든 슬러시화 된 언덕을 사람도 차도 오르기 힘든 곳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다시 삼국지 이야기를 해 본다면 예전에는 만화영화로 삼국지로 많이 했었고 철들어서도 삼국지에 대해서 많이 읽었지만 기억나는 인물이라고는 조조, 유비, 장비, 관우, 여포, 조자룡.. 이 정도만 생각이 나고 별다른 기억은 나지 않네요. 분명 고우영의 삼국지를 정말 열심히 읽고 또 읽었는데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이 분명한 듯 합니다.
삼국지 거리에서 삼국지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그냥 "이런 거리도 있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이 인도가 없는 일반 소방도로라서 양쪽에서 차가 지나갈 경우에 벽에 바짝 붙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습니다. 또한 벽에 그려진 그림 이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삼국지라는 내용을 좀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꼼꼼하게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이곳을 일방통행로로 바꾸고, 벽 양쪽으로 사람이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만들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총 6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서(魏書) 30권(본기 4권, 열전 26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으로 구성돼 있다. (삼국지는 원래 위지, 촉지, 오지라는 표제로 구성되었는데, 송나라 이후 위서, 촉서, 오서라는 표제를 더 많이 사용해왔다.) 삼국지는 '사기(史記)', '한서(漢書)'의 체계를 따라 인물전기 위주로 짜여 졌으나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연표를 담은 표(表)나 당시의 경제·문화를 기록한 지(志 혹은 書)가 없다.
삼국지는 위나라(魏)를 정통 왕조로 보고 쓰여진 역사서이다. 진수는 황제들의 전기인 본기를 위나라의 황제들로 엮었으며 '촉'과 '오'의 황제는 열전에 편입시켰다. 제호를 붙인 것은 위나라뿐이며 촉의 유비와 유선은 각각 선주(先主)와 후주(後主)로 기술하였고, 오의 제왕들은 주(主)를 붙이거나 심지어 이름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이러한 체계는 진수가 벼슬을 하던 진나라가 위(魏)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를 비정통으로 본 데에 따른 것이다. 진수의 이러한 사관(史觀)은 훗날 습착치(習鑿齒)의 '한진춘추(漢晉春秋)'나 주희(朱憙)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촉을 정통으로 보면서 논쟁을 불러 오게 되었다.(조위/촉한정통론에 대해서는 정통론을 참조하라.) - 위키백과 사전 -
인천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삼국지 벽화거리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오른편은 인천화교중산학교의 뒷 담입니다. 삼국지의 내용을 타일에 총 80컷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날씨만 춥지 않다면 좀 꼼꼼하게 봤을텐데 날씨도 날씨지만 도로가.. 눈이 슬러시로 바뀌었고,그 슬러시는 추운 날씨 때문에 얼어 붙어 있어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염화칼슘 좀 뿌리고 슬러시로 된 눈을 길 양쪽으로 좀 치워 놓으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차이나타운 거리가 얼마나 넓다고 그냥 방치 해 놓는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학교 뒷마당 아닙니까. 주변 가게에서 한분씩만 나와서 정리하면 30분도 안걸릴텐데.. 어쨌든 슬러시화 된 언덕을 사람도 차도 오르기 힘든 곳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다시 삼국지 이야기를 해 본다면 예전에는 만화영화로 삼국지로 많이 했었고 철들어서도 삼국지에 대해서 많이 읽었지만 기억나는 인물이라고는 조조, 유비, 장비, 관우, 여포, 조자룡.. 이 정도만 생각이 나고 별다른 기억은 나지 않네요. 분명 고우영의 삼국지를 정말 열심히 읽고 또 읽었는데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이 분명한 듯 합니다.
삼국지 거리에서 삼국지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그냥 "이런 거리도 있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이 인도가 없는 일반 소방도로라서 양쪽에서 차가 지나갈 경우에 벽에 바짝 붙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습니다. 또한 벽에 그려진 그림 이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삼국지라는 내용을 좀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꼼꼼하게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면 이곳을 일방통행로로 바꾸고, 벽 양쪽으로 사람이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만들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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