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의 화가 오도자가 그린 초상
공자 이름 : 공구(孔丘) / 출생 : 기원전 551년 / 중국 노나라 곡부 창평향(昌平鄕) 추읍(郰邑) / 사망 기원전 479년 / 중국 노나라 곡부 시대 : 춘추 시대 / 지역 : 동양 철학 / 학파 : 유교의 창시자 / 연구 분야 : 윤리학, 정치학, 사회철학 / 주요 업적: 유교 / 영향을 준 분야·인물 : 증자, 자사, 맹자, 순자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는 유가철학의 비조,유교의 시조(始祖)로 떠받들어지는 고대 중국의 정치가, 사상가이다. 노나라의 무관 숙랑흘의 둘째 아들이자 서자로 태어났다.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공자의 자(子)는 경칭으로 '선생'이라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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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삼국지 벽화 거리를 지나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사거리에서 인천 바다쪽으로 내려다 보면 공자상이 있는 "청일조계지와 공자상"이 있는 곳이 나옵니다. 전에 들렀을 때는 인천자유공원에서 바로 차이나타운 페루쪽으로 내려가서 이곳을 건너 뛰었는데 이번에는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지도에 있는 대로 따라 움직이다 보니 바로 나옵니다.
실제 공자의 초상화는 다르게 조각상은 미남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얼추 비슷해 보입니다. 강인한 얼굴형과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모습은 초상화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얼마전에 개봉했던 "공자"라는 영화에서의 주윤발의 분장한 모습과 왠지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공자와 유교는?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면서 어떻게 보면 가장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 "공자"라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 없이 봐 왔고, 그리고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많이 듣고, 공부하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그게 뭐냐" 라고 물어보면 마땅히 대답하기가 힘든 인물이 공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막상 "공자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유교"라는 대답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교는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요? 막상 떠오르는 대답이 없네요. 어려워요~ 제게도 평천하(平天下)라는 두꺼운 책이 있지만 아직 1/3도 읽지 못한체 책꽂이에 있습니다. 그나마 기억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더 이상 이갸기를 썼다간 제 얕은 지식의 끝을 보이게 될 것 같아 그만 써야 겠습니다.정말 열심히 읽고 봤는데 막상 풀어 쓰려니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럴줄 알았으면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EBS 강의라도 한번 더 볼껄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아이들과 같이 갔을 때 공자상을 보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옛날 중국 사람이고, 유교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라고 대답을 해 줘야할지.. 정말 공부좀 해야겠네요.
우리 땅에 세워진 청일조계지
이곳은 "청일조계지"로 나라가 어렵고 힘이 없을 때, 그들끼리 우리땅에서 선 긋고 땅따먹기 하던 곳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바로 앞에 항구가 있는 전략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아주 좋은 위치였습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왼편은 일본이, 오른편은 청국이 관리를 하던 곳입니다.
1883년 일본이 먼저 이 일대를 조차지(租借地)로 설정하자 청국도 바로 그 옆에 선을 긋습니다. 그로 인해 겹치는 부분에 대해서 서로가 구분을 하기 위해 조계지를 형성합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때에는 많은 수탈이 이뤄졌던 창구이기도 했던 곳이죠. 가볍게 관광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힘이 없었던 우리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조차지(租借地, Leased territory)는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일시적으로 빌린 영토의 일부를 가리킨다.
※ 조계(租界)는 청나라(이후의 중화민국)에 있었던 외국인이 행정자치권이나 치외법권을 가지고 거주한 조차지를 말한다.
유교는 시조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교(孔敎)라고도 하는데, 그 내용은 신분의 존비와 가까운 데보다 먼 곳에 미치는 인애(仁愛)를 근본으로 하면서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길을 가르치는 일종의 정치학·윤리학이다. 따라서 유학이라고도 한다. 공자는 자기의 교학(敎學)이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성덕(聖德)을 갖춘 옛 성왕(聖王, 선왕)의 도(道)에 합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 위키백과 유교에 대해 더 알아보기 ▶ -
"청일조계지"의 모습입니다. 실제로 현재 자리에서 왼쪽으로는 일본식 건물이 많고, 오른편으로는 중국풍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부터는 우리 구역이니까 조심해라"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왼편골목으로 들어가면 "일본 제1은행" 건물을 볼 수 있고 오른편으로 가면 "중산학교"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오른편의 중국식 석등의 모습과 왼쪽의 일본식 석등의 모습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공간 안에 두 세력이 각각 나눠서 조계지를 형성한 것은 특이한 모습이지만 우리의 땅 안에서 서로 나눠서 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던 것을 기억 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역사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오른편의 중국식 석등의 모습과 왼쪽의 일본식 석등의 모습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공간 안에 두 세력이 각각 나눠서 조계지를 형성한 것은 특이한 모습이지만 우리의 땅 안에서 서로 나눠서 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던 것을 기억 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역사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1883년 일본이 현 중구청 일대를 중심으로 7천 평을 조차지로 설정하자 다음해 청국도 일본조계지를 경계로 하여 현 차이나타운 일대를 조계지로 설정한다. 지금 한중문화관 옆길에서 자유공원으로 100여 미터를 오르다 보면 중간에 돌계단이 시작되는데 이곳이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다. 길 양쪽으로 설치된 석등도 중국식과 일본식으로 구별되고 중국 청도시 정부에서 기증한 공자상은 계단 중앙을 기준으로 중국 측에 세워져 있다.
- 차이나 타운 홈페이지 발췌 -
- 차이나 타운 홈페이지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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