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궁지
석모도에 갔다가 다시 강화도로 들어온 후에 시간이 남았다. 늦은 점심을 주변에서 먹고, 식당 주인에게 가까운 곳에 가볼만한 곳이 있냐고 묻자 <고려궁지>를 추천해 주십니다. 하시는 말씀은 "그래도 고려때 왕이 살았던 곳(?)이라는데 한번 가 보세요" 하신다.
강화시내버스 터미널과 가까운 곳에 있는 <강화고려궁지>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터미널과 거리는 약 1.4km정도 거리가 됩니다. 버스를 타기엔 애매하고, 걷자니 시간이 아깝지만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걸으면서 강화읍내도 둘러보면서 천천히 걷다보니 많은 등산복 차림의 여행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착해서 꼼꼼히 살펴 보니 이곳은 고려때 왕이 살았던 곳이라는 것 보다는 프랑스인들이 우리의 소중한 외규장각 도서를 빼앗아 간 곳으로 기억을 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현재는 대여 형식으로 조금씩 들어와 있지만 역시나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 외규장각을 돌려 받는 것이 시급할 것입니다.
문화재와 도시발전
강화는 문화재가 아주 많다. 조금만 걷다보면 유적지가 나온다. 유적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겠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강화도는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연계되어서 도시 인프라와 더불어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개발과 문화재 보호 사이에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문화관광을 위해서 연계되는 버스나 공공 시설이 너무나 없다는 것이겠다.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버스 노선도 없고, 제대로 된 안내 홍보물도 없다. <고려궁지> 또한 안내도에 조그맣게 <고려궁지>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스스로 찾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놀고 먹을 수 있는 해수욕장 주변 안내나, 특산품 안내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관광 인프라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강화도는 두가지를 모두 갖춘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발전의 균형이 다소 아쉽다.
강화고려궁지 (江華高麗宮址)
사적 제 133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정리 743-1.
고려시대 궁권이 있던 곳이다.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1232년 (고려 고종 19)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하여 환도(1270)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왕이 행차 시 머무는 행궁을 건립하였고,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정, 만녕전 등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1964년 이곳은 사적 제 133호 <고려궁지>로 지정되었고,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 강화동종 등만 남아 있다. - 안내판 참조 -
This place is site of the royal palace where the Goryeo people had resisted vigorously against Mongolian invasion for 39 years. On account of strong recommendation of generals, King Gojong moved his capital to Ganghwado with the advantage of natural and strategical point of view. Upon withdrawal of Mongolian forces, the capital was moved back to Gaeseong after the peace treaty with the Mongol concluded. Ganghwado castle was once conquered by the force of Ch'ing dynasty of China during Byeongja-Horan war in 1637.
In the Joseon dynasty, king's court constructed the consolidated palace including many subsidiaries such as Waegyujanggak national library, Haenggung king's family's residence and etc. on the very site of previously existed Goryeo palace. These building were burnt down by the French navy during Byeongin yangyo conflict in 1866. Nowadays, there remains only Dongheon Main office and Ibangcheong Administration office.
This place and building were restored to its origin and became Korean people's historical remembrance where people are reminded of the historical lessons in terms of resistance and patriotism against foreign aggression. - http://english.ganghwa.incheon.kr -
유형문화재 제 25호.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다. 1638년(인조 16) 유수 김신국이 수리하였고, 1769년 영조 45)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이라 하였다. 명위헌(明威觀) 이라는 현판은 영조 대 명필인 백하 윤순(尹淳)이 쓴 것이다.
건물 구조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익공계 팔작지붕 겹처마 단층집으로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 사업으로 정비되었다. 오늘날의 군청과 같은 관아 건물이다.
프랑스인들은 당시 191종 297권을 가져갔다고 현재 전해지고 있으나, 몇 권을 더 가져갔는지는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훔쳐간 것을 제외하고 외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던 1024종 6130권의 책과 부속 건물 등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1993년 고속철도 사업을 따내기 위해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 1권을 들고와서는 "돌려 줄 수도 있다"고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다. 결국 고속철도 사업은 프랑스에 넘어갔지만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서기가 반대한다는 이상한 이유를 들어 들고 왔던 외규장각 도서 이외에는 단 한권도 반환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프랑스에서 120년간이나 보관한 프랑스 국민의 재산이므로 돌려 줄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만 우리에게 "영구 임대" 할 수 없기 때문에 임대의 댓가로 이에 상응하는 문화재를 프랑스에 제공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것을 우리가 달라는데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바라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영국 같이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의 특징이 그 나라의 문화재를 가져다가 마치 자기들것인양 전시하고 자신들 것처럼 자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문화재 반환 요구를 계속해야 한다. 독일은 프랑스 침략시 약탈했던 문화재를 거의 다 돌려 주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우리가 훔쳐온 것은 맞지만 오랫동안 보관한 것이니까 우리것이다. 이걸 가지려면 다른걸 가져와라"라는 다소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문화재는 기어코 찾아 오면서 자신들이 약탈해온 물건은 돌려주지 않는 프랑스.
우리꺼 내놔라 이놈들아!!
Oegyujanggak (Royal Library)
After a series ol wars. Korea recognized the need to safeguard its treasures, as well as valuable information about ils kingdoms and royal families. As a result. Oegyujanggak was built in 1782. the sixth year of King Jeongjo's reign. The rayal family used it to store records of major events. as well as precious items.
Unfortunately. Oegyujanggak and other buildings were destroyed during the French Disturbance of 1866. when France attacked Korea. Many valuable artifacts and records were stolen. and these remain in France's possession.
Following excavation work that lasted from 1995 to 2001. Oegyujanggak was finally restored in 2003. The Korean government continues to pressure France to return the stolen historicaI manuscripts.
강화유수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그 후 1711년(숙종 37) 유수 민진원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것이다. 높이 198cm 입지름 138cm로 조선후기 동종으로는 큰 규모이다. 몸퉁 중앙에는 굵은 줄이 둘러있고, 그 아래에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물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는데 사용되었다.
종각은 당시의 강화산성 남문 주변인 김상용 순절비 자리에 있었던 것을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 때 고려궁지로 이전되었다. 1999년 10월 종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타종하지 못하게 되자 강화동종을 복제하여 설치하고 원래의 종은 강화 역사관으로 옮겨 보관 전시하고 있다.
강화유수부의 행정 실무자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1654년 (효종5) 유수 정세규가 세웠고, 1783년 (정조7) 유수 김노진이 내부를 수리하였다. 1915년 이후 등기소로 사용되다가 1972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 으로 정비되었다. 구조는 <ㄷ>자형 단층 기와집으로 방이 8칸, 마루가 12칸. 부엌이 1칸으로 모두 21칸 규모이다.
Ganghwa Yusubu Ibangcheong (Old Government Building)
This building was for lower - ranking administrative officials in Ganghwa. Ganghwa governor Jeong se - gyu oversaw its construction in 1634. the th year of King Hyniong's reign and his successor Kim No-jin had the interior remodeled in 1783. the 7th year of King Jungjo's reign.
The single-story and tile- roofed building consists of a main room. a large reception area and a small kitchen. ·ln total. the building covers 21kan in width with the main room measuring s kan·the reception area l 2kan and the kitchen 1 kan. (A kan is a traditional unit of measurement that refers to the space between two columes.)
Ibangcheong Wrved as a registration office circa 1915. and in 1977 it was restored as one of he most important historic buildings in Ganghwa-gun. It was designated a Tan gible cultural property in 1972.
강화도 영문 홈페이지를 보면 한글 홈페이지만큼 상세하게 적혀있지 않다. 시설물이나 문화재에 대해서 찾아가 보기도 힘들다. 온통 플레시로 도배되어 있어서 제대로 읽기도 힘들다. 사용자 접근을 쉽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뭐 외국인이 얼마나 볼지는 몰라도 단 한명이 들어와서 보더라도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이곳은 참으로 난해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고려궁지는 39년간 왕과 그에 따른 신하들, 백성들이 살던 곳이었다. 지금의 담장 저 밖까지 모두 궁궐 터였던 것이다. 1270년 스스로 파괴할 때 까지 무려 39년간 사용된 곳이다. 그런 곳이 지금은 건물 몇 채 밖에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니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다시 시간이 흘러 조선시대에 행궁, 전각, 강화유수부, 규장각 등을 세웠지만 또다시 모두 허물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모두 알고 있는 외규장각 책은 이곳에서 프랑스인들이 수많은 조선인을 죽이고 약탈해간 것도 모자라 모두 불태워져버린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아직도 외규장각 반환을 하지 않고 있다. 약탈된 우리 역사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 것이다.
참고자료
- 강화고려궁지 안내판
- 백과사전
- 강화군 홈페이지 (영문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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