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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ravel

(경기) 안양 l 안양 8경 - 만안교(萬安橋)

by 더공 2010. 5. 22.
만안교 [萬安橋]

매일매일 이곳을 지나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곳이 있었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그냥 작은 마을버스 정류장쯤으로 생각하고, 전철을 타고 가다가는 그냥 평범한 다리로 생각했던 이곳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상당히 깊은 내력이 있는 것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다리와는 다르게 만든 현대식 다리인줄 알았죠. 그런데 실제로 본 만안교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거대한 돌들로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1795년에 만들어진 다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의 위치는 원래 위치보다 200여미터 아랫쪽에 다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위치는 간단하게 말하면 관악역에서 내려서 구도로쪽으로 나와서 안양역 방향으로 400여미터만 내려오면 바로 만안교가 나옵니다.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안양 8경중에 4경에 있는 만안교 입니다.
안양천을 따라 가다가 <관악역>쪽으로 살짝 빠져서 올라가면 만안교가 나옵니다. 관악역 바로 앞에 만안교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물이 없어서 개천 바닥까지 그냥 갈 수가 있었습니다. 기존 다리 색깔은 어둡고 새로 만들어 놓은 곳은 색깔이 다소 다릅니다. 밝은건 새로 만들어 넣은 겁니다.
물이 많아지면 이 자전거 도로는 폐쇠됩니다만 중앙 물길 보다는 낮기 때문에 가득가득 차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리 아래에서 보니 위에는 많은 물때와 이끼가 끼어 있네요. 위에서도 물이 흘렀던 모습이 보입니다. 음.. 저렇게 돌틈 사이로 물이 흘러 나오기도 하는건가요? 제가 오래된 다리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요.
민들레.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물이 흐르고 메마를 땐 젖은 흙 찾기 힘든 곳에 뿌리를 내리고 꽃까지 피었군요.
앞쪽의 모습은 이렇게 보입니다. 다리의 앞쪽을 받치는 다리 기둥은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물의 압박을 덜 받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바닥에 깔린 돌은 새로 해 놓은 것 같아 보입니다.
하천 아래에서 바라본 만안교의 모습입니다. 아치가 상당히 예쁩니다. 오래된 다리 중에 저렇게 아치형으로 남아 있는 다리가 많지 않죠. 현존까지도 사용되는 오래된 다리로 역사적인 건축물이라고 보여집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이 다리를 이용합니다. 
마을 버스를 타신다면 9-1번이나 9번을 타시면 만안교 앞에서 내리실 수 있습니다. 
만안교 기념비입니다. 만안교 보다 더 보호 받고 있는 기념비석입니다.^^
기념비에는 음각으로 빨간 색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만안교 모습입니다. 튼튼하게 오래 오래 남았으면 좋겠네요.
다리 위 양쪽으로는 이렇게 홈이 파여 있습니다. 예전에 난간이 설치 되었던 것 같아 보이는데 아마도 구한말 이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직경이 3cm정도니까 쇠말뚝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을 거라고 예상이 됩니다. 
만안교 [萬安橋]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교.
지정번호 : 경기유형문화재 제38호
지정연도 : 1973년 7월 10일
소재지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679(260)
시대 : 조선시대(1795)
크기 : 길이 약 30m, 폭 약 8m, 높이 약6m
분류 : 석교

1973년 7월 10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의 능인 융릉(현륭원)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1795년(정조 19)에 축조한 홍예(虹霓) 양식의 석교이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산, 노량진, 동작, 과천을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으나 중간에 교량이 많고 남태령 고개 때문에 행차로를 닦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상노(金尙魯)의 묘를 지나게 되므로 정조가 이를 불쾌히 여겨 시흥쪽으로 행로를 바꾸면서 이 다리를 축조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왕이 행차하는 길에는 임시로 나무다리를 가설했다가 끝난 뒤 바로 철거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행차 때마다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편히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정조의 명으로 영구적인 돌다리를 놓게 되었다.

길이 15장(약 30m), 폭 4장(약 8m), 높이 3장(약 6m)이고 7개의 홍예문(무지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예문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장대석(長臺石)을 이용해 아치모양으로 만들었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板石)과 장대석으로 상판을 깔았다. 전체적으로 축조 기법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다리 남단에 건립 당시에 세운 ‘萬安橋(만안교)‘라고 새겨진 교비가 서 있는데 뒷면에는 이 다리의 축조가 경기도관찰사와 병마수군절도사, 수원·개성·강화 등의 유수(留守)까지 동원된 대규모 공사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현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만안로 입구에 있었으나 국도 확장을 위해 1980년 8월 이곳으로 옮겨 복원되었다. 안양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만안교 다리밟기’가 매년 이곳에서 행해진다.
ⓒ 더공